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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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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인간

장소 상실의 시대,

그나마 다수에게 열린 ‘틈/장소’ 된 편의점
등록 2017-01-17 18:21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지난해 7월19일,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의 155번째 수상작으로 무라타 사야카가 쓴 이 선정됐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이 작품은 한국어로 발매돼 몇 달 동안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서른 중반의 여주인공은 대학 졸업 뒤 기업에 취업하는 대신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소설은 편의점 안에서 이뤄지는 주인공의 일상을 기본 배경으로 상황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

이 소설의 문학상 수상 발표 당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작가 또한 소설 속 주인공처럼 20년 가까이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점이었다. 수상 당일에도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편의점에서 일하다 왔다’고 밝혔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글쓰기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상의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편의점이라는 소설의 배경이고, 다른 하나는 ‘편의점인간’이라는 현대적 인간형에 대한 주목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문학·방송·사회학의 장소</font></font>

이 아쿠타가와상에 선정된 이유에는 문체나 묘사력 이외에 ‘편의점이라는 현대적인 장소를 무대로 삼’은 부분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실제 2016년을 기준으로 일본에선 5만5천여 개 점포가, 한국에선 3만여 개 점포가 운영되는 가운데 양국에서 편의점 증가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편의점은 양적 팽창뿐 아니라, 세부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모양새로 확장되고 있다. 일례로 일본 편의점은 수년 전부터 고령인구 증가에 발맞춰 노인요양 서비스 창구를 운영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가구에 배달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삼아 과일이나 채소 등 신선식품 매대를 증설하거나 저렴한 편의점 안주와 함께 술 한잔 곁들일 수 있는 카페형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국 편의점도 기존의 슈퍼마켓, 약국, 드러그스토어, 식당, 카페, 우체국 등이 해오던 기능을 결합해 현대생활에서 필수적인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같이 한국과 일본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편의점의 위상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에 대한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편의점을 현대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낸 작가의 통찰력에 문학적 권위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뒷받침한다.

이 발표되기 이전, 한국 문화계와 학계에서도 편의점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있어왔다. 1989년 서울 방이동에 한국 최초의 편의점이 등장한 이후 편의점 문화가 일상화된 2000년대 접어들면서 편의점은 일상의 근거리에서 시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떠올랐다.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바 있는 김애란의 단편 에서 우리는 편의점을 맴도는 무명의 얼굴들을 마주했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편의점 음식 리뷰가 올라오는 블로그 ‘다인의 편의점 이것저것’을 통해 새삼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이 편의점에 빚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연재된 웹툰 에선 편의점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온갖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고, 2014년 발표된 은 소비주의, 근대 합리주의, 글로컬리제이션 등 사회학자의 관점으로 편의점을 분석했다. 올해 1월 첫 방송을 한 (tvN) 또한 ‘마크정식’(아이돌 그룹 멤버 이름을 딴 것으로 편의점에서 파는 떡볶이, 스파게티, 소시지, 치즈 등을 조합해 만든 음식)과 같이 편의점 음식을 창의적으로 조합하려는 ‘모디슈머’(Modisumer·modify와 consumer의 합성어로 제품을 제조사가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변형하는 소비자) 트렌드를 전면에 내세운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주’와 ‘유동’이 교차하는</font></font>

끊임없이 변화하는 편의점의 모습과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문화의 시각은 편의점이 존재하는 의미를 ‘편의 제공 장소’라는 협소한 정의 안에 가두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전의 편의는 생필품 등 물건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서비스라는 경험의 영역을 포섭하고,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상품을 제공하던 관계에서 소비자와 직간접적으로 교류하는 쌍방향적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일본 편의점의 변화 양상처럼 고령인구를 대상으로 한 의료·배달·행정 서비스 등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도 머잖아 편의점과 소비자의 쌍방향적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편의점은 ‘정주’와 ‘유동’이 교차하는 영역으로 우리가 현대라는 시공간의 끈을 가까스로 잡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장소’라는 단어는 (…) 무언가가 속해 있거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자리를 가리키기도 하고, 누군가가 점유할 수 있는 위치(position)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장소’를 갖지 못한 사람들, 즉 자신들이 속한 곳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또는 그들이 머물러도 좋은 자리, 점유할 수 있는 위치를 이 세계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장소 상실(placelessness)은 한때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에서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를 잃어버린 상태임을 지적한다. 잠시 머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찾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마땅히 주어진 몫의 장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소 상실의 시대’에 편의점은 불완전하지만 그나마 다수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틈/장소’가 된다.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도는 삶일지언정 편의점에서 잠시 머무르는 시간만큼은 이 시대와 이 사회의 일원이 된 듯한 안정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편의점을 나서는 순간 신기루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거라도 말이다.

다시 소설 으로 돌아가 ‘편의점인간’이 어떤 인간을 지칭하는지 살펴보자. 작가는 제목으로 ‘편의점의 인간’도 ‘편의점형 인간’도 아닌 ‘편의점인간’을 선택함으로써 ‘편의점’과 ‘인간’ 모두에 동등한 의미를 부여한 합성어를 만들어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편의점이 자신에게 성스러운 공간이며, 자신이 인간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작가는 편의점이라는 특정한 공간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 군상에게도 동일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자기부정의 ‘편의’로 인간이 되다</font></font>

“편의점에 계속 있으려면 ‘점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간단한 일이에요. 제복을 입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돼요. 세상이 조몬(繩文·BC 1만3000년께부터 BC300년까지 해당하는 일본의 선사시대)이라면, 조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사람이라는 거죽을 쓰고 그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무리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방해자로 취급당하지도 않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 저 편의점에서 모두 ‘점원’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소설 속 주인공은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곤 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성인이 된 주인공이 세상을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택한 방식은 자신을 말살시키는 동시에 ‘보통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모습들을 학습한 뒤 그대로 연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사회에서 문제적이라고 비칠 수 있는 본래의 자신을 되도록 불투명하게, 눈에 띄지 않게 만들면서 표준화된 인간으로 거듭난다.

정상적이라고 인정받은 뒤에야 비로소 편의점은 주인공에게 장소를 내주고, 그는 그 안에서 당당히 숨 쉴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결국 ‘편의점인간’은 시스템 속에 존재의 목소리를 탈취당한 인간이라기보다 본래 목소리를 숨김으로써 시스템에 기대려는 인간의 자기부정에 대해 ‘편의’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는 것인지 모른다.

1958년 발표된 손창섭의 단편 은 사회에 이득이 될 수 있는지로 필요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판단했다. 당시의 시대감각으로 보면 사회에 이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태도이자 가치관이었다. 여기서 손창섭은 ‘잉여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는 주인공의 두 친구와 주인공의 모습을 대조함으로써 존재의 쓸모 있음을 가르는 사회적 기준을 제시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잉여인간’ ‘편의점인간’ 사이의 변화</font></font>

그로부터 59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의 주인공과 달리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인의 눈은 사회적 대의나 기여를 향하지 않는다. 현대의 개인은 그보다 훨씬 소소한 수준에서 ‘사회의 이물질’이 되지 않기 위해 자아의 키를 낮춰 포복 자세를 취할 뿐이다. 즉, 개인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대항하기보다 편의점의 창문처럼 투명한 일부가 되기를 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편의점이라는 사회의 일부가 될 때, 우리는 자신을 따로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한편으로 보면 서글프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편의적 운명이 아닐 수 없다.

강보라 영상학 박사·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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