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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죽이면 문화도 죽는다

<다이빙벨>로 정권에 표적 탄압당한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
등록 2017-02-10 17:30 수정 2020-05-03 04:28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고 김영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에 등장하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은 2014년 10월2일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활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하며 그 사례로 을 든다. 그 투쟁적 대응은 10월23일 ‘시네마달 내사(內査)’라는 메모로 이어진다. 일개(!)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가 일약 국가 사정 권력의 한 정점인 청와대 민정수석의 ‘관심 사안’에 오른 셈이다.

털어야 털릴 것도 없는 회사지만 이후 시네마달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직원들은 통신 사찰을 당했고, 세무조사까지 겪었다.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김세훈, 이하 영진위) 직원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앞으로 조심하라”고 말했다.

무엇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시네마달은 이후 모든 영진위 지원 사업에서 탈락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압도적 자격을 갖췄음에도 심사 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못했다.

2000년 프로듀서로 데뷔해, 2008년 시네마달을 창립한 뒤 소리 없이 강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지속적으로 배급해온 김일권 대표의 필모그래피는 을 기점으로 완전히 꺾였다. 자신이 붙잡고 있어 ‘모멘텀’이 안 만들어지는 것 같아 “회사를 떠나려고 했다”는 그는, 그러나 다시 붙잡혔다. 오랜 세월 그가 해온 실천을 갚겠다며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시네마달을 살리기 위한 스토리펀딩(2억원 목표)도 곧 열린다.

“이런 인터뷰 난감하다”는 김일권 대표를 지난 2월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독립영화계의 오랜 실천가로 불리지만 그런 평이 무색하게 실제 만나보면 굉장히 샤이(shy)한, 소년 같은 사람이다. 알고 지낸 지 15년이 넘고, 함께 새벽녘까지 술을 마신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막상 만나면 늘 새로운(!) 사람이었는데 조금 지쳐 보였다.

영진위 직원이 ‘조심하라’ 전화

정부 차원에서 압력이 있다는 걸 언제 처음 알았나.

개봉 직전에 알고 지내던 영진위 직원이 조심하라고 전화가 왔다. 앞으로도 영진위 지원 사업은 다 안 될 거니까 까지만 하고 회사 이름을 바꾸고 대표도 다른 사람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무렵, 문화체육관광부가 시네마달의 최근 5년을 정리하는 감사 보고서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조심했나.

아니, (웃음) 어차피 각오를 했다. 영진위 지원 사업은 어느 정도 그러려니 했는데 부산영화제 문제는 좀 컸다. 워낙 큰일이었으니까. 부산영화제 이용관 위원장이 직접 ‘을 틀지 마라,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프로그램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부터 압력이 있었는데, 상영 바로 전까지도 상영 말라는 얘기가 계속 들어왔다.

문제적 작품을 많이 해왔는데, 그런 상황은 이 처음이었나.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자잘한 문제는 계속 있었다. 제주 강정마을 문제를 다룬 이란 작품을 할 때도 영진위 직영 극장인 인디플러스에선 못 튼다는 말이 있었다. 조성봉 감독의 도 부산영화제에서 틀 때 논란이 많았고, 삼성 문제를 다룬 도 압력이 있었다.

압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오나.

딱 찍어서 그 작품은 안 된다, 이러면 앞으로 지원 못한다, 그런 작품을 어떻게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공간에서 틀 수 있느냐, 뭐 이런 얘기다. 사실 영진위 직원들과 다 안면 트고 지내고 양심적인 분도 많다. 영진위라는 기관의 특성상 전문성을 갖춘 분도 많고. 재밌는 것은 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한 압력이 있었을 텐데 그나마 슬기롭게 대처하고 어느 정도 외압을 소화시켰던 분들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이거나 실무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준으로 전락했단 점이다. 예컨대, 은 표를 다 사서 상영을 무의미하게 하고 악평을 달았는데 그걸 누가 했겠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그렇게까지 지시를 내렸겠나. 그 메커니즘을 잘 아는 행정적으로 유능한 사람이 했겠지.

왜 이 타깃이 됐다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세월호 7시간’ 얘기만 나오면 왜 저러는지도 솔직히. 세월호 문제에 대해선 유독 세게 막았다. 그러면서 점점 더 세월호 사고가 박근혜 정부에 치명적 사건이 되고 탄핵에 주요한 사안으로까지 등장한 게 아닌가. 그나마 독립영화 안에서 보장되던 자율성, 독립성, 표현의 자유가 전혀 보장이 안 되는 이슈가 세월호 문제였고, 근본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걸러내려 했던 것 같다.

세월호 문제, 유독 세게 막아

시네마달 쪽에서 보면 은 좀 생소한 작품이 아닌지 생각했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작품성 논란도 있었다.

세월호가 워낙 큰 사건이었으니까, 너무 아팠고 책임감이 생겼다. 은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가장 이른 시간에 나온 다큐였다. 배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작품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나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고, 좌절하던 세월호 가족들의 문제도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을 본 뒤, 다른 논란보다는 극장을 광장으로 바꾸고 그 안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렇게 다큐의 의미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계속 고민해나가는 것이 시네마달의 정체성이다.

‘시네마달을 살리자’는 논의가 범시민사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직접적 피해자로서 어떤 과제가 시급하다고 생각하나.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탄압과 배제에 대해서는 낱낱이 조사해 밝혀야 한다. 책임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구속되거나 물러나야 한다. 책임 영역에 있는 이들은 물론 관리자들도 문책받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이 좌천되고 부서 이동을 했거나 사퇴 압력으로 퇴진했다. 이 사람들도 복권돼야 다시 뭔가를 얘기할 수 있다고 본다.

거슬러 올라가면 영화 쪽은 세 축이 있지 않았나 싶다. 시작은 이명박 정부의 ‘잃어버린 10년’이었다. 문화계 좌파들, 특히 판 자체가 편향됐다는 영화계를 정리해야 한다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진위, 부산영화제에 개입했다. 교수들이 좌파라며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정리했다. 영진위는 낙하산 위원장을 뿌리고 위탁사업 주체를 뉴라이트로 바꿨다. 부산영화제는 워낙 명성이 있으니 어쩌지 못하다가 로 완전히 타격을 주려 했던 것 같다.

‘블랙리스트’ 사건 발본색원해야

시네마달이 배급해온 영화 목록을 보면 이 회사를 살려두는 것은 한국 영화의 종 다양성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시네마달 제공

시네마달이 배급해온 영화 목록을 보면 이 회사를 살려두는 것은 한국 영화의 종 다양성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시네마달 제공

그 문제들이 해결돼도 독립영화 진영의 어려움은 계속 남지 않을까.

우리가 해온 독립 다큐멘터리 배급이란 게 기본적으로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다. 독립영화판 전체의 상황이기도 하다. 이 누적된 상황을 타개할 자구책이나 자생적 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런 문제는 있다. 독립영화는 외부 상황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일도 많고 힘들어진다. 예컨대, 극장 수가 줄면 사람을 모으기 어렵고, 홍보는 더 해야 한다. 극장에서 대규모 상영하면 한두 달에 끝날 일을, 공동체 상영을 조직하고 다른 상영 공간을 찾으면서 극장 상영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끌고 가야 한다. 한 작품으로 일하는 시간과 노력은 늘어나지만 수익은 그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이건 곧 인력 재생산이 안 되는 문제로 귀결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가장 시급한 건 무엇인가.

극장을 열어야 한다. 현재 스크린이 2천 개가 넘는데 이 중 5%만 사회적 의미나 공공적 가치가 있는 영화에 열면 100개다. 지금은 정부의 우편향과 자본의 수직계열화로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20~30개에 불과하다. 펀딩해서 개봉하고 몇천 명, 많으면 몇만 명 봐야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독립영화가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볼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우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어떻게든 순환한다.

영화산업을 완전히 수직계열화한 CJ도 좌파라고 하는 정부였다.

그래도 CJ는 ‘좌파’라고 공격받으면 같은 영화를 바로 만들 수 있는 자본이 있지 않나. 당연히 수직계열화는 깨버리고 투자, 배급, 제작을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문화정책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수익 중심으로, 한류라는 성과 추출 방식의 문화적 진흥도 분명 의미가 있다. 그 산업적 진흥을 그대로 가져가되, 문화적 측면을 분리해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의 문화향유권이나 표현의 자유를 넓히기 위해 문제제기하는 창작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그런 작품들이 경쟁하는 민주적 영역이 있어야 한다. 창작자의 시대 인식이 없는 문화는 곧 죽는다. 홍콩 영화가 망한 게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은가.

시네마달의 새 활로 고민

향후 계획은 뭔가.

이후, 시네마달 이름으로 공적 지원 사업을 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낸 게 2015년 예술영화 제작 지원인데, 최근 그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보도됐다.

이송희일 감독이 떨어진 건데, 이송희일 감독은 그 전에 도 있었고 베를린영화제에도 초정됐다. 예술영화 지원 심사 기준에서 주요한 것이 해외 영화제 초정작이면 가산점을 주는 점이다. 파악한 바로는 점수가 제일 높았는데 당시 안 됐다. 그때 영진위 직원이 “안 된다고 했는데 왜 내느냐”고도 했는데, 기사로 보니 박찬경 감독과 함께 아예 배제를 했다. 심사해서 탈락시킨 게 아니라 아예 심사조차 안 했다. 이 부분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제작이나 배급 관련 계획은 있나.

솔직히 하던 일만 끝내고 상반기 중에 회사를 떠나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회사는 회사이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을 했지만 자생력을 결국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그 일은) 다른 사람의 몫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을 잘 아는 감독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시네마달은 개인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담보한 것이고 독립영화 영역에서 역할을 해온 것인데 그만두는 건 안 된다고…. (웃음) 무슨 말인지 잘 알고 너무 감사한 일인지만 여기저기 어려운 데가 많은데 도와달라고 할 명분이 없었다. 근데 자꾸 ‘가만있어라, 알아서 할 테니까’ 해서…. 함께 시네마달의 새로운 활로를 고민하고 있다. 죄송하고 난감하고 그렇다.

지금까지 시네마달이 직간접적으로 배급과 상영에 관련된 국내외 작품은 250편이 넘는다. 시네마달의 필모그래피는 그 자체로 한국 퀴어영화의 역사이고 대추리·용산·강정·세월호로 이어지는 사회적 현안의 연대기이고, 영화라는 장르에 가장 불타는 열정을 가진 이들의 서사이기도 하다. 이 배급사를 살려두는 건 단순히 작은 영화 관련 회사 하나를 존속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 영화가 갖춰야 할 종다양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이냐의 문제다.

김일권 대표가 정권 차원의 탄압을 받고도 지금까지 버텨온 건 일상적인 탄압과 구속을 겪으며 성장해온 독립영화 운동의 ‘맷집’이 있어 가능했다. 더 이상 누군가들의 맷집에 기대어 사회를 끌고 가지 말고 합리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정부 이후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지금, 여기, 우리 시네마달에서 시작할 수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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