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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노예? 저항의 유예!

‘죽은 노동’ 내몰린 MBC 기자 22명 심층 분석한 논문 쓴 임명현 기자
등록 2017-02-15 18:22 수정 2020-05-03 04:28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여, MBC라예? 방송국? MBC 개쓰레기 아이가 이것들.” 한 시민이 작심한 듯 터뜨린 말이다. 신년 벽두 대구 MBC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이 말은 MBC 구성원은 물론 시청자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지금의 MBC가 어느 정도로 망가졌는지 상징하는 발화이기 때문이다.

지난 4년, MBC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MBC 노조)는 2012년 1월30일 총파업에 들어갔다. 당시 김재철 사장을 불공정 방송의 주체로 지목했다. 앞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MBC 보도·시사 프로그램은 갈수록 정권에 종속되는 경향을 보였다. 4대강 사업, 서울 내곡동 사저 의혹, 민간인 불법 사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첨예한 사안들에서 축소·누락 보도를 해온 것으로 MBC기자협회는 분석했다. 4대강 사업을 다룬 'PD수첩' 방송이 연기 또는 취소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MBC 노조의 파업은 170일간 이어졌다. 그러나 파업의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 곧바로 징계 바람이 불었다. 해고 6명, 정직 38명. 파업 중 대기발령 조처 직원은 69명에 이르렀다. 징계자와 대기발령자, 업무 복귀자 등 96명은 그해 하순부터 3~8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일부 직무 관련 내용이 있었지만 요가 연습이나 브런치 만들기 등도 포함됐다. 부적절함을 넘어 인권침해 논란까지 일었다. “당시 교육 대상자들은 MBC아카데미가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것을 빗대 ‘신천교육대’라고 자조적으로 일컬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삼청교육대를 끌어온 말이다.

170일 파업 뒤 징계 바람

파업 이후 징계, 대기발령, 교육발령, 무관 부서 전보 등을 겪은 노조원은 165명, 이 가운데 91명(기자 50여 명, PD 20~30명, 아나운서 10여 명)은 여전히 현업에서 배제돼 있다( 제211호). 노조 자료를 보면, 경영진은 파업 뒤 4년간 경력직 229명을 채용했다. 대체 인력이 기존 인력을 밀어낸 셈이다. 2012년 이후 MBC는 성역 없는 비판 언론의 경로에서 ‘탈선’했다.

최근 성공회대에서 의미 있는 학위논문이 나왔다.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MBC 사례를 중심으로’. 논문 지도를 맡은 김창남 교수(신문방송학)는 기자에게 논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저널리즘의 변화에서 그 안에 몸담은 저널리스트들의 경험과 사고의 전환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논문이다. 문화 연구에서 부족한 것이 실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생산자에 대한 연구인데, 이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현 단계에서 한국 저널리즘의 왜곡 등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학술적 성과다.”

논문 저자는 임명현(38)씨. 2003년 MBC에 입사해 보도국 사회부와 보도제작국 등에서 근무한 현직 기자다. 그는 조심스럽게 기자에게 말했다. “구성원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MBC 기자가 아니라 연구자 자격으로 수행한 것이다. 조직원으로서 내 경험을 최대한 보류하려고 애썼다.” 그의 말은 학문 연구자로서 객관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실제 논문 곳곳에서 그가 고심한 흔적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임씨는 MBC 기자 22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 방식의 심층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내용은 녹취록 450여 쪽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비인격적 인사관리’ 개념에 비추어 MBC 기자들이 파업 이후 어떤 상황에 놓였고 어떤 내면의 변화를 겪었는지 분석했다. 비인격적 인사관리는 “관리자의 적대적인 언어적·비언어적 행위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이를 근로자들이 과하다 싶게 인식하는 경우”로 정의된다.

분석 결과, 파업 이후 기자들은 경영진에 의해 버려지거나(잉여적 주체) 이용되는(도구적 주체) 현실에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잉여로 호명된 기자들은 ‘뉴스 외부’로 격리되었다. 뉴스 생산 조직 외부에서 대기발령, 교육, 낯선 업무에 맞닥뜨린 이들이 느낀 것은 모멸감과 공포였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던 노동수단을 빼앗긴 상황은 기자들 개개인에게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남겼다. 분노를 삭이면서 순응하는 심리에 이르기도 했다. 도구로 호명된 기자들 또한 녹록지 않았다. “경영진이 주문하는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수치심과 무력감을 피할 수 없었다. 자기검열은 물론, ‘납품업자’ 같은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했다.

모멸감·수치심 안긴 인사관리
2012년 8월 서울 여의도 본사 앞에서 MBC 기자들이 파업 복귀 뒤 경영진의 인사 보복에 항의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2012년 8월 서울 여의도 본사 앞에서 MBC 기자들이 파업 복귀 뒤 경영진의 인사 보복에 항의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잉여 또는 도구로 조직 내 ‘좌표’가 급변한 기자 조직에 원자화·파편화 경향이 가팔라지는 것 또한 불가피했다. 논문에 인용된 인터뷰들은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내 이름 걸고 나가는 기사”라는 말로 상징되는 자부심(전문직주의)이 스러지고, 어찌됐든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 내몰려 ‘죽은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기자들의 심리다.

“당시 악몽이 인사 나는 꿈이었어요. ‘거기래.’ 이런 식의. 어딘지는 모르는데 이상한 창고로 갔더니 책상이 없어. 근데 나만 그런 건 아니고 비슷한 처지의 다른 후배들도 그런 꿈을 꾼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을 안 만나게 됐어요. 왜냐면 난 괜찮지 않거든. 괜찮을 수가 없지. 괜찮지 않은데 사람을 만나면 괜찮은 척해야 되잖아. 사실 그때 젤 힘들었던 건 괜찮은 척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심지어 가족한테조차.”

“보신주의적으로 바뀌었어. 일단 자기가 지금 상태에서 어느 정도 잘 지내고 있는 걸 깨고 싶지 않은 거지. 낯선 데로 날아가면 힘들잖아. 새로운 일을 또 해야 되고, 기자 일 아닌 것을 해야 할 수도 있는 거고.”

임씨는 경영진의 비인격적 인사관리에 속절없이 휘둘린 기자들의 개인 경험을 관통하는 본질적 구조를 ‘취약성’에서 찾았다. 취약성이란 신자유주의적 삶의 조건 아래 “자신의 삶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고 외부의 힘에 취약해졌다는 의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 정규직이라는 안정된 고용조건, 상대적으로 강한 노동조합의 보호, 독립성과 자율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가치 등을 누려온” MBC 기자들이 이전과 완전히 단절되는 ‘새로운 경험’에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취약성은 MBC 기자들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관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논문의 보편성은 여기서 발견된다. MBC 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다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와 저성장의 심화, 노동 유연화의 확대 및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의 증가, 청년실업, 만성화된 테러와 전쟁의 위협 등 사람들의 삶의 전반에 걸쳐 위험과 불확실성, 유동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렇게 ‘생존’과 직결된 취약성을 공략당하게 되면 행위 주체는 그만큼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개인이 맞닥뜨린 삶의 취약성

임씨는 기자에게 논문에 인용된 한 인터뷰 내용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민주주의가 가동되지만, 민주주의가 가동되어야만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고 했다.

“‘개개인의 기자가 정말 중요하다. 기자란 직업이 되게 숭고한 직업이다’라고 생각을 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까 아니야. 두 개의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하면 JTBC 뉴스는 정말 ○○ 같은 뉴스였어. 근데 보도 부문 사장이 한 명 왔더니 이게 완전 투사가 되었어, 세월호 국면에서. 이번에 어버이연합 같은 것도. 이거 되게 어려운 기사거든. 반대로 MBC는 사장 하나 갈리니까 바로…. (침묵) 지금 나는 숭고한 기자정신, 이렇게 생각 안 해. 왜냐면 갑자기 만들어지잖아, JTBC 같은 경우에. 또 MBC 같은 경우는 완전히 없어지잖아. (중략) 저널리즘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왜냐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민주주의 방식이, 사람들의 생각과 민도(民度)라는 것이 어찌 보면 저널리즘을 있게 하는 동력이고, 저널리즘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얹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 빙산에 얹혀 있는 빙 조각에 불과하다, 이 큰 구조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을 했지.”

결과적으로 MBC 기자들이 선택한 것은 ‘체제’ 안에서 적응과 순응을 시도하면서도 저항을 ‘유예’하는 길이었다. “한편으로는 노조원 신분을 유지하면서, ‘죽은 노동’ 속에서도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방송의 독립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도덕감을 유지하면서, 그래도 언젠가 세상이 바뀔지 모른다고 불투명하게나마 희망하면서.” 임씨는 이러한 태도를 “무대 뒤편에서 ‘이를 갈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으로 보았다.

나아가 임씨는 경영진이 구축한 ‘뉴스 재생산’ 체제가 안정적·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라고 분석했다. 슬라보이 지제크의 개념을 빌려 그는 경영진이 기자들을 완벽한 방식으로 장악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장악 과정에서 “나머지 또는 잔여물”을 남겼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데올로기가 호명한 주체와 구분되는 진정한 주체이며,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나중에 주체가 저항하고 반역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저항을 유예하고 ‘죽은 노동’을 수행하고 있지만, ‘저항의 싹’은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민주주의 있어야 언론도 제 역할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MBC 또한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여러 축소판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실망을 준 부분이 많았다. 그것에 대해 변명, 항변하려고 논문을 쓴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을 인터뷰하면서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펼 수는 있지만 예전 같은 종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구겨졌다는 것, MBC 보도로 볼 수도 있고 기자들의 마음으로 볼 수도 있다. 분명히 구겨졌다. 2012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최대한 펼 수는 있겠지만 구겨진 흔적은 남을 수밖에 없다. 그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펴는 작업’이 오히려 원활해지지 않을까.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민주주의가 가동되지만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시민들의 민주주의가 가동돼야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MBC에 이런 내부 상황이 있었다는 것이 대중에게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기회가 되면 지금 MBC 뉴스룸의 주역들(파업 불참자, 간부, 시용·경력 기자)도 연구해보고 싶다고 했다.

착잡한 MBC, 더 착잡한 언론 현실. 그러나 유예할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진실의 목격자’로 남으려는 저널리스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존과 안정을 향한 욕망에 흔들리면서도 ‘고뇌하는 힘’을 부여잡고 있다면 말이다. 임명현씨의 논문 또한 그런 맥락과 닿아 있다. 그와 그의 MBC 동료들. 그리고 자기모순의 예각에 찔려 고통하면서도 ‘그 길’을 향해 걸어가려는 저널리스트들과 이 문장을 나누고 싶다.

“‘인간적인’ 고민을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강상중)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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