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도 하루이틀이고 좋은 말도 삼세번이라고, 아무리 도움 되는 이야기도 계속 듣다보면 질리는 게 당연하다. 다만 아무리 해도 여전히 듣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 ‘뒷담화’다.
남에 대한 가십이나 험담은 이야기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대체로 지겨워하는 법이 없다. 지루한 일상에서 일종의 흥분제 역할을 한다고 할까, 아마 그래서 뒷담화에 더 열중하는지도 모른다. 실제 그런 실험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뒷담화에 열 올리는 순간 우리 몸속 아드레날린도 다소 폭주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우린 대체로 남에게 진짜 상처가 되지 않는 선에서 뒷담화를 멈출 줄 안다.
경청, 본성을 거스르는 능력나를 칭찬해주는 이야기도 말 그대로 경청하기 쉽다. 나보고 잘하고 있다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뭐, 듣기에 약간 낯간지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칭찬을 거부하는 건 열등감의 표출 이상은 아니다. 게다가 아부가 아닌 진짜 칭찬은 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다 기분 좋은 일이다. 그거야말로 칭찬의 또 다른 효용가치인 셈이다.
젊은 남편들 사이에서 부부 싸움을 쉽게 끝내는 비결로 통하는 말이 있다. 물론 소소한 싸움일 때 적용되는 것이지만. 아무튼 싸움이 커질 듯한 생각이 들면 적절한 시점에 아내한테 딱 한마디만 하면 된다고. “당신, 뭐, 예쁘면 다 되는 줄 알아?”
뒷담화나 칭찬과 달리 내가 틀렸다고 비난하거나 나와 다른 의견을 상대방이 고집할 때 그것을 끝까지 들어주기는 정말 어렵다. 일단 화가 난다. 일차적으로 ‘감히 나한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 심리인 나르시시즘과 관계 있다. 그 심리가 나에게 반박하거나 조언하거나 충고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사회생활 하다보면 저라고 잘못하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그걸 지적하면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그냥 깨끗하게 승복하면 쉽게 끝날 일인데도 끝까지 가는 겁니다. 고집부리고 변명하고 화내면서 일을 점점 크게 만드는 거죠. 어느 시점에서 사과할 기회를 놓치면 그때부터는 더 걷잡을 수 없게 되고요. 저도 물론 아차 싶지만 돌이키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경험을 한두 번쯤 해보지 않은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것은 역시 우리의 자기중심성과 관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청은 마치 연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능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게 그처럼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앞서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어딜 가나 경청하고 또 경청하라는 말을 되풀이해 듣는 것은 아닐는지.
인간의 본성이 악한가 선한가 하는 성악설, 성선설은 인간이 생겨난 이래 지속되는 논제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인간이 지닌 나르시시즘의 깊이를 매번 느끼면서 (물론 나 자신도 포함해서) 어떤 때는 절망한다. 인간이 얼마나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지 싶어서다. 물론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자기중심적이다. 살아 있는 이상 자기 보호, 자기 번식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그런 면에서 자기중심성도 확고하다.
하지 않는 복수, 수동공격성그것을 알고 다스려 나가는 게 결국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세상이 올수록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기적 본성을 억제하고 자기를 잘 다스려 나와 더불어 남도 잘 살게 만들어나가는 능력이라고 한다. 즉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배려, 경청, 공감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다. 따라서 그 자유를 억압하면 청개구리처럼 반항하게 된다. 언젠가 자식이 아무것도 안 하고 무위도식한다는 문제로 부모가 찾아왔다. 그들 말로는 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요구사항만 많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녀의 이야기는 달랐다. 부모가 하나하나 다 지시하고 간섭하고 조언하고 참견하니 그럴수록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나는 부모와 자녀에게 그런 심리를 ‘수동공격성’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 경우, 자녀가 차라리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부모는 최소한 그 분노의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있다. 물론 부모가 자신의 태도를 고칠지 어떨지는 다른 문제지만. 자녀 역시 자기가 무엇 때문에 화나는지 이야기해봤자 부모가 들어주지 않을 거라고 미리 판단했던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부모가 원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부모에게 일종의 복수(?)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수동공격성의 심리다.
그런 심리가 작동하면 그야말로 나도 모르고 상대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가정이나 조직, 기업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결국 경청, 그중에서도 나와 다른 의견을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 역시 경청하라고 말하는 사람 중 하나에 속하게 되었으니 ‘경청’에 필요한 자세를 몇 가지 알아보자.
첫째,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게 쉬운 일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뇌는 상대방의 이야기든, 다른 일이든 집중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상대방의 이야기가 내 관심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경우 그것을 참고 들어주기 매우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나르시시즘이 그렇게 하도록 놓아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이 또 가지를 치다보면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내 편에서 단지 머릿속으로만 그러는데도 어느 때는 상대방도 그걸 눈치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는 맥이 풀리고 상대방은 자신도 모르게 나한테 약간의 앙심마저 품는 일이 생겨나고 만다. 그리고 그가 어딘가에서 내 뒷담화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따라서 상대방이 설령 그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끌어간다고 해도 일단 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 역시 자신의 본성에 충실한 것뿐이라고 여기면서. 이 경우 결과도 대체로 좋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는 없기 때문에.
집중, 관심, 적극성둘째,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주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나와 별 상관이 없거나 내 의견과 다를지라도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들어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즉, 단순히 수동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듣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이 능력을 갖추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는 걸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셋째, 때로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이는 꼭 경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대화에 필요한 일반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적극적인 태도는 마치 양념 같은 역할을 해서 대화를 더 맛있게 만들어간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내가 한 업적 중에서 나와 다른 의견이 다 표출되도록 한 데는 나도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리더가 많아지기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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