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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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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이의 생을 만지다

사진 통해 고인의 감정을 만나는 교감의 시간
등록 2017-03-25 04:54 수정 2020-05-02 19:28
고 배정현 연합뉴스 기자

고 배정현 연합뉴스 기자

생을 멈춘 이의 지난 삶을 살펴본다.

육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나 숨이 있던 시절 그이의 삶의 모습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가 바라본 곳을 같이 보거나 무엇을 하려 했는지 천천히, 아주 깊은 감정이입으로 살펴본다. 특히 누군가를 향한 감정의 결이 어땠는지 최대한 그 느낌에 공감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살아 숨쉬던 때 그가 사랑하고 아꼈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그의 존재성을 더불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몰입의 시간을 치르고 나면 그가 어떤 밀도의 감정으로 누군가를 살펴보았는지, 어느 정도의 열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순간을 채워냈는지 조금은 가늠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이승에서 삶을 마감한 그를 여전히 소중하게 기억하기 위함이자 망각의 저편으로 소멸되는 것에 대한 소박한 저항이기도 하다. 미련을 두어 떠난 그를 붙들어 매려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별로 매김하기 위한 작은 추모 의식이자 환송식인 것이다.

과정과 경험의 수단으로서 사진

이 모든 과정은 그의 사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의 얼굴이 나온 사진보다는 그가 찍어 세상에 남긴 사진을 더 우선한다. 찍힌 사진보다는 당사자가 찍은 사진 속에서 그가 남긴 많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누구든 이와 비슷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다. 생을 멈춘 이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만지고 바라본다. 손에 잡히는 건 한 장의 사진이지만 어루만지고 바라보는 마음은 고인의 육신이자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존재증명의 수단인 사진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를 귀하게 기억하려는 욕망을 대체한다. 단순히 기념과 기록의 도구를 넘어 사진과 사진을 찍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기대와 욕구를 풀어내는 기제로서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 있다. 약간의 발상 전환만으로 이를 이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귀결된 결정체로서 미학적 이미지를 우선하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과정과 경험의 수단이자 행위 자체에 더 의미를 두는 것으로 사진에 의미를 새로이 부여하는 것이다. 사진을 보되 이미지에 담긴 감정의 결을 느끼려 하거나 어떻게 이렇게 찍을 수 있었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시도해볼 수 있다.

최근 추모사진전 하나를 준비하고 기획했다.

과거 사진기자 시절 동료인 고 임정현 기자를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한 전시다. 2년 전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그와의 인연은 가볍지 않았다. 함께 숨을 쉬고 현장을 누비기도 했으며 나눈 술자리도 여럿 되었다. 같은 대학원에서 수학했던 그는 기자직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가는 내게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염려와 덕담을 같이 건네기도 했다.

고맙게도 이 전시의 기획을 일임받은 뒤 나는 생전 그가 남긴 모든 사진 이미지를 오래도록 살펴볼 수 있었다. 20년의 기자생활 동안 남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사진들을 여러 차례 살펴보면서 이전에 알고 있던 그의 인상에 더해 또 다른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다. 몸담은 신문 지면에 자신의 이름으로 실린 제한된 사진들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사진들을 통해서도 그가 얼마나 다양한 시선과 관점으로 세상을 읽고 전하려 했는지, 또한 국경을 넘나들며 얼마나 따뜻한 감성으로 존엄한 삶들을 기록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사진들
고 임정현 <문화일보> 사진기자의 추모전을 준비하면서 발견한 사진. 그는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사진을 남겼는데 절반이 딸 채원이 사진이었다. 고 임정현 문화일보 기자

고 임정현 <문화일보> 사진기자의 추모전을 준비하면서 발견한 사진. 그는 헤아릴 수 없는 방대한 사진을 남겼는데 절반이 딸 채원이 사진이었다. 고 임정현 문화일보 기자

무엇보다 늦은 나이에 얻은 자신의 어린 딸을 향해 무한하게 펼쳐낸 사랑의 감정을 확인한 것은 큰 감동 그 자체였다.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 초등학생으로 성장해가는 딸의 일상들이 날짜별로 꼼꼼하게 담겼고, 아이는 아빠 앞에서 한없이 웃고 있었다. 둘 사이의 교감은 여느 ‘딸바보’ 아빠의 그것과 차이 없이 아름답고 순수했다. 그렇게 그의 사진들이 생전의 익숙했던 음성으로 변해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가슴에 파고드는 사진들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가 남긴 감정이자 고인만의 감성으로 풀어낸 세상 이야기였고 정겨운 사랑타령이었다.

사진의 작품성을 논하는 게 아니었기에 전시 구성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고인의 감성을 토대로 머문 자리, 사람과 사람, 사소한 풍경, 채원이 등 네 주제로 구분했다. 먼저 ‘머문 자리’는 그가 20년간 두루 오고 갔던 세계 곳곳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중 일부를 골라 구성했다. 척박하다는 아프리카 지역의 땅을 아름답게 보려 했거나 종군기자로 2003년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이라크를 취재했던 것에서부터 미국, 중국, 러시아, 이탈리아, 라오스 등 그가 머무른 곳들의 사진을 통해 고인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최대한 드러낼 수 있도록 애썼다.

‘사람과 사람’은 늘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고인 특유의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들을 택했다. 한 구족화가의 환한 미소를 담은 사진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두루 담아낸 사진들 속의 사람들은 마치 고인과 꽤 깊은 인연이라도 있는 듯 자연스럽게 웃고 있다. 넉살 좋던 고인이 어떻게 그들과 교감했는지, 가난하거나 비루한 외양을 지녔어도 그들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 전하려 했던 고인의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사소한 풍경’은 평소 낙천적 성격이던 그가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찍고 보관해온 사진들이다. 신문 지면에 반영하기 위한 취재용 사진이 아니라 일상성 속에서 자기만의 감성으로 건져올린 ‘사소’하지만 애정을 두어 담은 사진들이다. 추모사진전의 제목을 ‘사소한 풍경에 끌리다’로 정했는데 이는 그가 직접 표기해놓은 외장하드의 파일명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주제인 ‘채원이’는 고인의 외동딸 이름이다. 외장하드에 담긴 사진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딸 사진이 아주 많았다. 사진을 고르는 내내 딸 사랑이 남달랐던 고인의 숨결이 진하게 느껴졌기에 오롯이 사랑 그대로인 모습으로 일종의 성장일기 형식으로 구성했다. 나 역시 어린 딸을 키우는 처지인지라 고인의 마음을 헤아리던 중 여러 번 울컥했다. 고인이 찍어 남긴 사진들과 함께하면서 나는 다시금 그와의 인연 두께가 한결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을 마친 그가 다시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었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다시 전해주는 역할로서 그를 위로했다.

오랜 숙제인 후배의 사진전

그보다 전인 2015년 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배정현 사진기자 추모사진전을 처음 맡아 꾸려본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때도 고인의 모든 사진을 두루 살폈다. 기간 통신사의 사진기자로 무척이나 바쁘게 현장을 누볐던 그의 사진들을 깨알같이 살펴보면서 문득 그가 하늘을 무척이나 사랑했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취재용이 아닌 별도의 사진묶음들 속 그의 본성에서 나온 시선의 대상인 하늘과 구름을 마주하면서 든 생각이었다. 울림이 작지 않았던 경험이다. 사실 대화를 나눠본 기억은 없는, 안면만 있는 정도의 사이였지만 그가 남긴 사진과 시선의 깊이를 체감하면서 가볍지 않은 신뢰감이 싹트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떠난 그가 나를, 남은 내가 그를 살피는 시간이었다.

아직 다하지 못한 숙제가 있다. 2003년 여름,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멈추었지만 ‘민들레’라는 예명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한 후배 사진기자를 다시 기억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에 깊은 연민의 눈을 들이며 늘 노동자의 인권 신장을 주된 취재 이유로 삼아 현장을 누비던 용감한 기자였고 불의한 상황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는 강인한 여성이기도 했다. 고인의 이름은 ‘이화정’이다. 그녀와 취재 현장을 누볐던 이들은 아직도 아쉬움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옛 동료들은 그녀가 손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한 상황에서도 쉴 줄 모를 만큼 책임감이 강했고 부당한 공권력에는 현장 노동자 못지않은 투쟁으로 대처했던 언론 노동자로 기억한다. 그 이면에 그녀는 선후배들 사이에 밝은 기운을 전파하는 환한 미소의 소유자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진기자로서 아주 멋진 동료이기도 했다. 지금도 술 한잔 하자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15년이면 부채감 이겨낼까

세상을 떠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그녀의 추모사진전을 준비하고 싶다. 그녀가 남긴 모든 사진을 보관한 시간도 그 세월만큼 되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의 자리를 만들겠다고 큰소리치고는 가족에게서 받아놓은 필름과 사진들이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마음의 큰 짐이 된 지 오래다. 당시에는 그녀의 사진을 보는 것이 아팠고 볼 때마다 오래 시선을 둘 수 없었다. 사진에 담긴 그녀의 감성과 생각을 읽기보다는 그녀 자체의 부재감이 주는 상처가 큰 탓이기도 했다.

이제 다시 그녀가 남긴 필름과 온갖 사진들을 열어볼 때가 된 듯싶다. 아련하지만 고인의 생을 대신 전한다는 마음으로 필름 파일을 열어볼 것이다. 아마 15주기가 되는 내년 여름쯤이 적기이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이 세상에 남은 동료와 지인이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녀가 무엇을 세상에 전하려 했는지 대신 전해주는 사람으로서 다시 그녀와 교감할 시간을 뭉클하게 가지고 싶다.

먼지 쌓인 필름북과 사진들을 펼치는 순간 그녀가 다시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선배! 술 한잔 해야지!”

임종진 사진심리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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