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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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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월호 시대를 인양하다

문학·철학·사회과학부터 망각에 저항한 시민 기록까지… 책으로 나온 세월호
등록 2017-04-19 19:03 수정 2020-05-03 04:28
우리 사회에 ‘세월호 참사’가 주는 의미는 경계가 없다. 4월2일 목포 신항만에서 광주·전남·전북 지역 시민단체들이 노란 우산을 펴고 ‘세월호 미수습자 조기 수습’을 기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 사회에 ‘세월호 참사’가 주는 의미는 경계가 없다. 4월2일 목포 신항만에서 광주·전남·전북 지역 시민단체들이 노란 우산을 펴고 ‘세월호 미수습자 조기 수습’을 기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참혹한 시대에 문학은 그리고 글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작가 성석제는 2014년 6월 장편소설 을 내놓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 들어왔다. 아니, 그 둑이 그렇게 낮고 허술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이라고 했다. 참담한 상황 속에 남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작가의 고뇌가 절절히 묻어난다.

이듬해 ‘세월호 시대의 문학’을 주제로 세교연구소가 주최한 포럼에서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문학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관계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타자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관계는 사라졌다. 문학이 만져야 할 삶이 사라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이들의 말을 듣고 받아적어야 하는 시간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그래도 ‘세월호 시대’에 문학이 할 일이 남았다고 말한다. “‘4·16세월호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 참여했던 작가 김순천씨가 부모님들의 고통을 숨죽여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에 대해 들려주었다. 침묵은 기록할 수 없는 것이었다. 터져나온 것은 울부짖음이었고, 그 또한 기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처음에 차라리 짐승의 말, 괴물의 말처럼 들렸다고 했다. (…) ‘세월호 시대 문학의 자리’는 여기에 있었다. 지금은 그이들의 말을 듣고 받아적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문학의 능력을 과장할 이유야 전혀 없는 것이지만, ‘증언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아포리아’는 언제든 문학의 시련이자 도전이다.”

세월호가 3년의 시간을 거쳐 뭍으로 올라왔다. 문학도 다시 힘을 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소속 시인 61명은 (푸른사상 펴냄, 2017)에서 그날의 처절했던 아픔, 그리고 3년의 기다림, 다시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책에서 시인들은 “2014년 4월16일부터 불렀다/ 304명을/ 7시간을/팽목항을/ 안산 단원고를/ 아픈 봄을/ 아픈 몸을/ 그리하여 아픈 희망을 노래한다 (…) 가만히 있지 마라/사월 꽃들아 눈 부릅떠라/ 명찰을 떼지 않은 꽃아, 나비야/ 광장에 오라/ 이제 부활하라/ 꽃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상처투성이 현실 속에서 마침내 세월호가 떠올랐다. 진실은 여전히 바다 밑에 가라앉은 채다. 미수습자는 한 명도 찾지 못했다. 봄은 찾아오지 않았다. 시인 김이 하는 ‘그들이 돌아와야 봄이다’라고 선언했고, 양원은 ‘꽃으로 돌아오라’고 부탁한다. 김지희는 ‘2014년 4월16일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말했다.

지식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영국 심리학자 제임스리즌은 “인적, 기술적, 조직적 요소가 결합하여 야기되는 조직사고는 (총체적인 진상과 원인을) 다 알지 못하고, 어쩌면 끝까지 알 수 없다. 대형 조직사고마다 경악스러운 것을 새롭게 토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이하 가넷)가 지난해 (한울아카데미 펴냄, 2016)에서 분석한 세월호 참사의 실체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가넷은 세월호 참사를 국가 권력이 총체적 부실덩어리가 되는 과정에서 토해낸 경악스런 조직사고로 파악했다. 이들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기본적 공공성의 시대 책무를 저버리고 퇴행해 탐욕스러운 대기업과 공범자가 된 탈공공 국가의 소산”이라고 지적했다. 또 세월호 시대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국가는 없다’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6명(이재열·홍찬숙·이현정·강원택·박종희·신혜란)이 낸 (오름 펴냄, m2017) 역시 지난해 가넷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세월호라는 전례 없는 대형 참사가 사람들의 가슴을 짓누른 통증, 공포, 분노, 불안의 실체를 분석했다. 이들은 “그동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검고 질척한 물체를 직면하고 있다”며 그 실체를 “바로 한국 사회”로 규정했다.

(위고 펴냄, 2017)는 세월호 참사를 철학의 눈으로 바라봤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백상현 교수는 “철학은 무엇 때문에 모두가 외면하던 진리 사건의 소외된 장소로 찾아가는 위험을 감수하는가? (…) 그것은 ‘철학이 슬퍼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지탱하는 정동(情動)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슬픔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세월호 피해자를 수습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을 개별적 피해 가족에 의한 ‘작은 싸움’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진리의 시작에 촛불의 고독이 있다

백 교수는 “모든 역사의 시작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손에 들었던 것 같은 작고 위태로웠던 촛불이 있지 않았는가? 모든 진리 여정의 시작에는 그처럼 미약한 촛불의 고독이 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흐느끼듯 흔들리는 촛불의 이미지는 진리가 시작되는 장소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또 다른 침몰선’을 우리 사회가 부여잡게 됐다고 설명한다. “매년 자살을 선택하는 4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자라는 굴레의 어둠 속에서 불법 인간 취급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노동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성적 취향의 소수성으로 인해 배제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주 여성들의 소외된 삶이 있으며 그들의 자녀가 겪어야 하는 차별과 배제의 현실이 있다. (…)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호가 매일, 매시간 소리 없이 침몰해가고 있는가?”

중단편소설집 (김탁환 지음, 돌베개 펴냄, 2017)는 ‘세월호 이야기의 소설화’를 시도한 거의 유일한 사례다. 소설 8편 안에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때론 슬프게, 때론 아름답게 그려진다. 세월호 당일 목숨을 살린 구조자와 살아난 피구조자가 눈동자를 바라본 기억만으로 서로를 기억해내거나(‘눈동자’), 학생들이 자신들을 위해 생명을 던진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제주도에서 온 편지’),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했던 세월호 잠수사가 또 다른 사람을 살리러 나선다(‘할’)는 이야기들이다. 장편 역사소설을 주로 써온 작가 김탁환은 “끔찍한 불행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참사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찾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와 작은 희망들을 문장으로 옮기고 싶었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이 책에 대해 “그날에 대한 기억과 애도, 반성과 자책, 그리고 고통받는 자들끼리의 연대감 회복이라는 깊은 생체험과 만나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혹으로 남은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는 것도 글이 감당해야 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은 (서해문집 펴냄, 2017)를 내놨다. ‘세월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 기록한 것으로 2015년 , 이듬해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첫 육성 기록집 (이상 창비 펴냄, 2016)에 이은 세 번째 작가기록단의 책이다. 남영호 침몰, 경기도 화성 씨랜드 수련원 화재, 대구지하철 화재처럼 국가가 눈감은 곳에서 발생한 참사들을 되돌아봤다. ‘우리는 왜 익숙한 슬픔을 반복할까’ ‘참사가 반복되고 변주되는 피해는 왜 빚어질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 문화연구자 정원옥은 “재난을 기억한다는 것이 단지 사건을 잊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이들의 희생에 값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실천이라고 할 때 한국 사회는 재난을 기억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는 ‘재난 희생자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사라진 이들의 ‘웅성임’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라진 이들의 입장에서 잘못이 바로잡히고 자신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안전한 사회, 억울한 죽음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인정”돼야 한다고 답한다.

권영빈 변호사가 쓴 (펼침 펴냄, 2017)은 기록으로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권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의 조직적 방해로 미완 상태에서 강제 해산되다시피 끝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행한 진상 규명 과정을 책으로 처음 기록했다. 그는 세월호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2017년 4월 현재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유가족 추천 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책에는 세월호 참사 뒤 범국민 서명운동과 특별법 제정 과정, 추모시(詩)도 없이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한 절박한 상황,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려던 정부의 속셈을 드러낸 문건 파장, 100만 개 해경 주파수공용통신(TRS) 녹음파일을 발견한 일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그는 “누군가 기록을 남겨야 한다. (…) 이를 통해 인양된 세월호 선체에서 하루빨리 미수습자 9명을 수습하고, 철저한 후속 조사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헌신해온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차곡차곡 역사로 남아야 한다

사람들은 ‘세월호 304명’에 대한 기억과 슬픔, 애도를 글로 남기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기획, 한유미 지음, 한티재 펴냄, 2017)은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진실을 밝혀 새 나라를 만들 때까지 행동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온 사람들의 10가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에는 교육청의 ‘세월호 수업 탄압’에 꿋꿋이 맞선 교사, ‘세월호 친구’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든 고교생, 매일 아침 지하철역에서 세월호 팻말을 드는 부부 등의 사연이 담겼다. 앞서 박재동 화백이 세월호 피해 안산 단원고 학생 114명과 선생님 2명의 얼굴을 그리고, 김기성·김일우 기자가 이들과 얽힌 사연을 글로 적은 (한겨레출판 펴냄, 2015) 같은 작업이 이뤄진 바 있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책에 대해 “세월호 활동을 해온 많은 지역,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차곡차곡 역사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교훈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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