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싱젠의 <영혼의 산>(북폴리오 펴냄·2005)은, 아마도 한마디로 서술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에 속할지 모른다. 처음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이 책이 무척이나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쓰인, 어느 정도는 도식적인 틀을 유지하는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거의 정반대로 바뀌었고, 자신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일 것이 너무도 확실한- 소설가인 주인공에 대해 호의와 반감, 인간적 동조와 동시에 자기변명의 진술 강도가 너무나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당황스러움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의문에도 <영혼의 산>은 나에게 지울 수 없이 커다란 인상으로 다가온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은 직후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생애 처음으로 중국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한 망명자의 영혼.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책의 두꺼운 부피나 복잡한 감상과는 달리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어느 날 암을 선고받았다가 오진으로 밝혀지는 경험을 한 작가인 주인공은 중국 남부를 정처 없이 가로지르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기차에서 만난 한 남자로부터 ‘영혼의 산’에 관해 듣게 되고, 그는 그 산을 찾기로 한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까지 주인공이 영혼의 산에 도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산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산인지도 불확실하다. 대신 책의 대부분은 주인공이 길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 황량한 변방지대, 안개에 뒤덮인 산, 불현듯 어두운 뒷마당 저편에서 맨발로 튀어나오는 어린 시절의 인상들, 수많은 마을마다 묻혀 있는 슬픔의 전설과 역사, 낯선 마을의 젊은 여인, 마음의 정처 없음에 관한 기나긴 서술, 사랑의 시작과 필연적 종말, 그리고 죽음에 관한 예술적 두려움과 환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의 큰 특징은 단편적으로 병행해 등장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한 명의 인물을 1인칭과 2인칭, 간혹은 3인칭으로 번갈아가며 묘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장과 묘사 자체는 간략하고 단순하므로 이러한 실험적 구조가 결코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단순한 매혹. 분명 이 책은 이러한 뛰어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중국 문학이라는 이름에서 연상하게 되는 모든 선입견을 피해가는 동시에, 또한 거기서 기대하게 되는 독특한 아름다움은 잃지 않는다. 매우 중국적인 소재와 디테일을 유럽적 필체로 묘사하고 있으며 리얼리티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세련된 형식을 취한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자면, 중국 역사의 사연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 두꺼운 책에서 작가 자신이 문화혁명 당시 농촌으로 강제 이주당해 정신교육이란 명목으로 노역에 종사했던 경험 등은- 독자의 일반적 기대와 달리- 거의 무시되거나 간접적으로 희미하게 언급될 뿐이다. 또한 이 책에서 표현되는 중국은- 공자나 유교가 아닌- 노자의 꿈과 같은 나라다.
가오싱젠의 노벨상 수상에는 의혹이 아주 없지 않았고, 더구나 중국 내에서는 그를 중국 작가가 아닌 외국 작가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우리의 영어 통역을 맡았던 중국 학생 첵에게 이 책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는데, 영문학을 전공한다는 그는 가오싱젠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물론 학교에서도 배운 바가 없노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중국 인터넷을 검색해본 그는 말하기를, 가오싱젠은 1987년 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한 입장이기 때문에, 그래서 노벨상 수상 당시 이미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었으므로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혼의 산>을 통해 비로소 중국이란 나라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가 찾아헤맨 영혼인가 아니면 단지 망명자의 서류일 뿐인가.
배수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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