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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용 복제인간의 ‘집’


죽음을 지연시키며 살아가는 복제인간들을 그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등록 2010-01-28 06:35 수정 2022-12-15 06:53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

삶은 여행에 비유된다. 집을 떠나왔다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가장 안전한 집인 엄마 뱃속에서 끄집어내지는 순간, 험난한 삶의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귓속을 아프게 울린다. 삶의 여행길에서 모르는 타인들을 만나고, 물건과 말을 주고받고, 타인으로부터 어떤 존재인지 확인받는 것이 산 자의 숙명이다. 고달픈 여행은 많은 것을 상실케 한다. 여행은 집을 염두에 둔 단어이다. 떠나온 자는 언제나 돌아갈 집을 생각하면서 걷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김남주 옮김·민음사 펴냄)는 떠나온 집, 헤일셤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헤일셤이란 기숙학교를 졸업한 뒤 간병사로 12년간 일해온 캐시의 회상기다. 헤일셤은 캐시와 캐시의 단짝 친구인 루시, 사랑하는 토미가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보금자리다. 헤일셤은 영국의 깊은 분지에 자리해 있다. 열여섯 살이 되는 졸업 전까지 학생들은 헤일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그들에게 졸업이란 장기를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장기이식을 위해 복제된 클론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공상과학소설(SF)의 외관을 띠고 있다. 하지만 다른 SF처럼 장기이식을 위한 클론에 대한 최신 복제 기술을 세세하게 알려주지도 않고, 이들 스스로가 복제인간이라는 걸 깨닫고 괴로워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인간이 될 수 없어 나올 법한 탄식도 없다.

학생들은 장기이식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상태로 성장한다. 이 ‘어렴풋이’가 이 소설의 모든 것이라 해도 좋다. ‘어렴풋이’가 주는 긴장 속에서, 불투명한 슬픔 속에서 소설이 천천히 나아간다. 어렴풋이 안다는 건 ‘안다’와 ‘모른다’ 사이의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헤일셤 안에서만은 자신들이 결국 장기이식이란 단일한 목적을 위해 중년이 되기 전 죽음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잊은 듯 지낼 수 있다. 상급 학년이 돼가면서 아주 서서히 최소한의 충격을 받도록 스스로 조절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 순간이란 몇 번의 장기이식 뒤 맞게 되는 죽음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헤일셤의 학생들은 서글픈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의 순간을 지연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바친다. 그 노력의 에피소드들로 이 소설이 채워진다. 그 노력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들은 창의적 그림을 그리는 존재로, 영혼을 가진 훼손되지 않은 인간으로 헤일셤 안에 살아 있다.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예술과 사랑의 환상들로 헤일셤의 시간들, 햇빛 찬란한 고향이 보존된다. 헤일셤에서 학생들은 뛰놀고 싸우고 화해하고 자기만의 시를 쓰고 창의적 조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선생님을 흠모하고, 친구들에게 우정과 사랑을 느낀다. 조금 더 자라서는 마음에 드는 상대와 성교한다.

헤일셤 출신 복제인간들은 졸업 이후 간병사를 잠깐 거친 뒤 장기이식을 시작한다. 하지만 캐시는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여행하듯 옮기는 피로와 고독을 참으며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간병사 역할을 훌륭히 해내 11년 동안이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캐시는 장기 기증 환자로 센터에 입원한 루시와 토미를 간병사로서 만나고, 그들을 돌본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본다. 캐시는 루시와 토미와 다시 만나기까지 간병사로 11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캐시는 기다리며 11년간 ‘더 살 수’ 있었다. 책 속에서 캐시는 헤일셤을 기억의 이야기로 복원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캐시에게 헤일셤은 곧 루시와 토미다. 집을 생각하면 고된 여행길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도착하게 될 집이 폐기돼버렸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여행길을 걸어갈 힘을 얻기 위해서는, 집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모든 여행의 결국의 목적지는 그러고 보면 집인 듯하다. 여행의 끝이 집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라 해도. 헤일셤을 나온 순간 누구에게나 ‘나를 보내는’ 여정이 시작된다. 죽음을 지연시키며 살아가는 복제인간들의 이야기는 제한된 시간을 사는 모든 인간 삶에 대한 비유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마치 불투명한 거울을 보여주듯 이야기를 뿌옇게 드러냄으로써 책 읽을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천천히 나아가는 독서는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어둠을 그렇게 지연시켜준다.

채윤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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