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쓰는 마지막 칼럼이다. ‘2009년의 시인’으로 고 신현정 시인을 선정한다. 고인은 지난 10월16일 새벽 1시에 향년 61살의 나이로 작고했다. 고인이 살아 계실 때 만나뵌 일이 없고 그의 시를 많이 읽지도 못했다. 살아생전에 기획됐으나 출간되기 전에 시인이 작고한 탓에 졸지에 추모시집이 돼버린 시선집 <난쟁이와 저녁 식사를>(북인 펴냄)을 뒤늦게 읽으며 고인을 만났다. 시만 봐도 환하게 알겠다. 천진하고 무구한 분이었을 것이다. 영악한 자들은 잘도 살아가는데, 바보 같은 분들만 바보처럼 돌아가신다. 전직 대통령과 추기경의 죽음 옆에 한 시인의 죽음도 나란히 놓아두고 싶다.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냉큼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껍데기를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 안고 그냥 왔다.”(‘빨간 우체통 앞에서’ 전문)
신현정 시인의 시가 대개 이렇다. 대개는 한 문장이 한 행이고 그게 또 한 연이다. ‘편지=새’라는 단순한 은유를 숨기지도 비틀지도 않고 편안하게 깔아두었다. 그대에게 날아갈 테니 편지는 새가 맞다. 혹은 우체통에 넣어야 비로소 새가 될 테니 아직은 알이라고 해도 좋다. 시인은 편지를 새처럼 혹은 알처럼 품고 우체통에 갔다. 애타는 마음은 빨간 우체통처럼 달아올라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냥 돌아선다. 현실화된 욕망만 가치 있는 것인가. 시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무욕(無慾)이랄까, 혹은 무애(無碍)랄까. 반복되면서 시를 부드럽게 조이는 “그냥 왔다”의 여운이 넓다.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시가 있다.
“세상은 온통 나비떼// 초인종은 세 번을 눌렀다// 검은 나비는 문 밑으로 들여보내든가 문틈에다 꽂아놓았다// 간혹 요금이 수취인 부담인 것도 있었다// 수취인 불명은 반드시 원래의 제자리로 돌려보내지 않았던가// 마감일까지 소인이 찍힌 것은 유효했다// 요즘 와서는 거의가 빠른 우편이었다// 민들레 피고// 나는 어깨에 멘 행낭을 내리고 지퍼를 활짝 열어젖혔다// 세상은 온통 나비떼// 나비떼// 정작 나는 행방불명이 되고 싶었다// 민들레 옆에 자전거를 모로 눕히고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운다// 아, 나는 선량했다.”(‘길 위의 우체부’ 전문)
이번에는 ‘편지=나비’의 세계 안에서 시인은 우체부가 되었다. ‘빠른 우편’의 세계를 나 몰라라 하며 이 우체부는 유유자적이다. 행낭을 활짝 열어 세상을 온통 나비떼로 만들고 자신은 행방불명되고 싶어한다. 이상하게 사람을 울리는 마지막 구절을 어떡하면 좋을까. “아, 나는 선량했다.” 자화자찬의 감탄이 아니다. 이 문장 뒤에는 ‘선량했다, 선량했는데, 그런데 왜…’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선량한 것만으로는 안 되는가, 자전거를 눕히고 담배를 피우는 이 선량한 우체부만으로는 안 되는가. 나는, 저 우체부는 선량했으므로 결국 불행해졌을 것이다, 라고 읽고 마는 내 자신이 난감하다.
고인이 병상에서 쓴 마지막 작품은 짧다.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이 거칠고 난폭한 세계에서 선량한 우체부처럼 아름다움을 배달하다 퇴직한 시인의 유언시답다. 이 나라는 2010년에도 피 흘리게 될까. 세상의 시인들에게 내년에도 수혈을 부탁할 수밖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추신. 그동안 ‘시 읽어주는 남자’를 아껴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4월에, 새로운 꼭지로 돌아오겠습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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