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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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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2009년 거대한 치욕의 해, 두 명의 어부를 잃은 텅 빈 마음이 텅텅 울리다
등록 2009-09-04 18:38 수정 2020-05-03 04:25

신문기사를 건성으로 읽었고 영결식 방송도 보다 말았다.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적이 없으니 존경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이가 대통령이 되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적이 없으니 민주주의의 숭고함을 알 길이 없는 자들이 권력을 나눠가진 지 1년 반 만에,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두 생(生)이 쓰러졌다. 생각이 불길한 쪽으로 뻗어가려 했다. 말하자면 저 두 죽음과 더불어, 희생과 헌신 앞에 머리 숙일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이들은 그들의 ‘잃어버린 10년’을 결국 되찾은 것인가, 그로써 우리는 저 10년을 영영 잃어버리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2009년은 거대한 치욕의 해인가. 이런 생각을 밀어내느라 움츠렸다.

근조 리본으로 뒤덮힌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근조 리본으로 뒤덮힌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덕분인지 석 달 전의 죽음 앞에서만큼 휘청거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치명적인 몇 개의 이미지들이 와서 박히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근래 다시 들여다보게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몸의 반쪽’이 부서지는 아픔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 군사정권의 고문 탓에 파킨슨병을 얻은 김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가 휠체어를 끌고서라도 선친의 마지막 길에 동행하겠노라 고집을 부리는 장면, 마크 셀던 교수가 고인의 영정 앞에서 기꺼이 무릎을 꿇고 한국식 큰절을 올리는 장면… 수십 줄의 시로도 감당해내기 어려운 복잡하게 아픈 이 장면들 때문에, 지난 몇 달간 여러 번 되풀이 읽었던 시 한 편을 다시 꺼냈다.

“내 영혼이/ 내 어부에게 말했다// 물고기/ 바다/ 저녁놀// 내 영혼이 내 어부에게 말했다// 처음/ 본/ 순간// 내 영혼이 내 어부에게 말했다// 없어/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늙은 내 영혼이 더 늙은 내 어부에게 말했다// 가/ 그냥 가/ 가// 내 영혼이 내 어부의 그물에 매달리며 말했다// 노을진/ 바닷가에/ 나를 남기고// 두 개의 영혼/ 어린 내 영혼이 한참이나 더 어린 내 어부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가/ 그냥 가.”(박상순, ‘영혼이 어부에게 말했다’ 전문, 2009년 여름호)

지면이 부족해 가로로 눕혀놓았지만 이 시만큼은 원래 형태 그대로 다시 배열해서 세로로 읽어야 한다. 좋은 시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행간의 백지조차도 말을 건넨다. 이 시가 그렇다.

5월20일께 출간된 잡지에 실려 있으니 5월23일의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시이지만, 5월23일 이후에 이 시를 읽은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 무렵에 발표된 어떤 추모시보다도 더 깊숙이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내 영혼이 내 어부의 그물에 매달리며 말했다.” 결함과 과오가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존경할 만한 드문 지도자들이었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잃었다. 익사 직전의 사회를 건져올릴 어부를 잃었다. 이 시인의 다른 좋은 시들이 대개 그렇듯, 맥락도 설명도 없이 흘러나오는 “없어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나 “가, 그냥 가, 가”와 같은 문장들이 텅 빈 마음속에서 텅텅 울린다. 그 메아리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럴 수는 없다.’ 아마도 오독(誤讀)이겠지만 내게 이 오독은 불가피하다.

그러다 또 한 편의 뜨거운 시(詩)를 읽었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장 제목이라던가.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잠시 몸이 뜨거워졌다. 물론 평범한 문장이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저 문장을 매달리듯 읽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인생이었고 그토록 절망적인 역사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생의 말기에 도달한 저와 같은 긍정은 아득할 뿐이다. 지금 나에게는 이 대구(對句)가 어떤 시보다도 위대하다. 게다가 지금은, 인생은 아름답지 않고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라고 말해야 어울릴 만한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고인은 쓰러져가면서 저런 문장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러니 저것은 평서문이거나 감탄문이 아닐 것이다. 청유문이고 기원문이며 끝내는 명령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옮겨 적는다. 인생은 아름다워야 하고 역사는 발전해야 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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