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장관님께. 날이 더워졌군요. 많이 바쁘시죠? 지난 7월1일에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펼쳐진 학생들의 공연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한예종 감사 철회와 자율성 보장을 촉구하는 학생 문화제’ 말입니다. 한예종 감사 결과가 발표되고 황지우 전 총장이 사퇴한 지 한 달 반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한심한 녀석들이라고 혀를 차지는 않으셨는지요. 사실을 말씀드리면 지금 문화체육관광부가 한심하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파 정권에서는 우파 총장이 나오는 게 옳다고 신재민 차관이 말했더군요. 그 말 덕분에 많은 게 투명해졌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우파 정권이다, 황지우 전 총장은 좌파다, 그러므로 그는 물러나야 한다. 세상만사가 이렇게 단순명쾌하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장관님도 아시겠지만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좌우’를 말하는 것은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한 일입니다. 그래서 정치논리를 예술교육에 기계적으로 들이대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예술의 행정을 담당하시는 분들의 분별력이 극우집단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면 이것은 재앙입니다.
장관님께서 ‘좌파’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존재하는 것을 긍정하기보다는 존재해야 할 것을 추구하는 게 좌파라면, 그래서 늘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인권, 더 많은 민주를 요구하는 게 좌파라면,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은 본질적으로 좌파이고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은 깊은 곳에서 좌파적입니다. 실제로 그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창작이라는 것은 본래 왼쪽에서 뛰는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입니다. 예술의 영역에서 고답적인 좌우 논리는 별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촌스러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전문)
30년 전 시가 여전한 울림을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놓은 탓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 작품이 ‘왼쪽에서 뛰는 심장이 쓴’ 시여서 시간의 흐름을 견뎌냈기 때문일 겁니다. 예컨대 이런 시를 놓고 좌우를 따지는 건 얼마나 허망한 짓입니까. 특정 예술학교를 두고 ‘좌파의 온상’ 운운하는 일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촌스럽고 투박한 논법이어서 예술가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한예종 관련 정책을 재고해주시고 내친김에 문화행정의 틀을 다시 짜주십시오. 예술가들은 ‘주저앉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추신. 언젠가 출근길에 직장 앞에서 한 학생을 만나신 적이 있죠? 1인 시위를 하던 학생 말입니다. 그때 장관님은 생면부지의 학생에게 대뜸 ‘너’ 운운하며 반말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날이 더워졌구나. 많이 바쁘지?”로 시작하려다 말았습니다. 어떻게 일국의 장관에게 반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반대도 똑같이 진실입니다. 어떻게 일국의 장관이 처음 보는 시민에게 함부로 반말을 합니까. 그것도 문화를 담당한다는 장관이 말입니다. 이런 한심한 권위주의만큼 반문화적인 것이 또 없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의 수준이 그날 그 순간에 적나라했습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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