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창고에 대해 말해도 될까. 염전에서 운반해온 소금을 출고할 때까지 보관하는 곳. 그중에서도 특히 폐염전에 남아 있는 소금창고에 대해서. 실제로 본 적은 없네. 그러나 사진으로 본 그것은, 사람이 아닌 것들에는 마음 흔들리는 일 별로 없는 이 무정한 사내까지를, 쓸쓸하게 했지. 물론 이런 시들이 아니었으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소금창고’ 전문)
이문재의 네 번째 시집 <제국호텔>(문학동네·2005)에 수록된 아름다운 시. 한때 소금창고가 있었던 곳에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처럼 서서 시인은 제 나이를 되새기네. ‘마흔 살’은 어쩌면, 뭔지도 모를 어떤 것들을 떠나보낸 뒤, 문득 홀로 남아 버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나이일까. 그래서 지금 그는 떠나보낸 옛날들의 자욱한 역류를 보고 있는 것일까.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런 구절을 일러 ‘적중했다’고 하는 것이지. 제자리에 정확히 꽂혀 진동하는 아포리즘. 이 시를 다시 떠올리게 된 이유가 있네.
“돈 떼먹고 도망간 여자를 찾아/ 물어물어 여기 소금창고까지 왔네/ 소금창고는 아무도 없네/ 이미 오래전부터 소금이 들어오지 않아/ 소금창고는 텅 비어 있었네// 나는 이미 짐작한 바가 있어,/ 얼굴 흰 소금 신부를 맞으러/ 서쪽으로 가는 바람같이/ 무슨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온 건 아니지만,// 나는 또, 사슴 같은 바다를 보러 온 젊은 날같이/ 연애 창고인 줄만 알고/ 손을 잡고 뛰어드는 젊은 날같이/ 함부로 이 소금창고를 찾아온 것도 아니지만,”(‘소금창고’ 전반부)
송찬호의 새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2009)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시. 이 시인 역시 이제는 “얼굴 흰 소금 신부”나 “사슴 같은 바다”에 마음 달뜨는 젊은이가 아니네. 아니지만, 아니기 때문에, 소금창고에 대한 소회가 없을 리 없는 것이지. 왜 어떤 소중한 것들은 나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인가. 그러다 이 시인도 앞사람처럼 그만 울고 마네. “여자의 머릿결 적시던 술”이나 “세상 어딘가에 소금같이 뿌려진 여자”가 생각나기라도 한 것인가.
“가까이 보이는 바다로 쉬지 않고 술들의 배가 지나갔네/ 나는 그토록 다짐했던 금주의 맹세가 생각나/ 또, 여자의 머릿결 적시던 술이 생각나/ 바닷가에 쭈그리고 앉아 오랫동안 울었네// 소금창고는 아무도 없네/ 그리고 짜디짠 이 세상 어디엔가/ 소금같이 뿌려진 여자가 있네// 나는 또,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지만/ 사랑에 기대는 법 없이/ 저 혼자 저렇게 낡아갈 수 있는 건/ 오직 여기 소금창고뿐이네”(‘소금창고’ 후반부) 소금창고에 대해서 쓰면 다 좋은 시가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는 듯 이 시도 앞의 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아름답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소금창고에 대해 말한 것은 이런 아름다움들 때문이지만, 언젠가부터 이 지면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마음 불편해졌지.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후손들에게’에서) 이를테면 브레히트의 이런 구절이 가시처럼 아프기 때문. 과연 그런 시대이기 때문.
그러니 우리가, 반년 동안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거리에서 울부짖고 있는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무슨 소금창고 같은 것에 대해 말한다면, 이것은 범죄가 되는 것일까. 쉽게 부인해버리는 것이야말로 범죄가 될 테니 일단은 그렇다고 해야겠네. 그러나 끝내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도 해야지. 좋은 시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할 때, 그것은 지금 이 세계가 충분히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계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므로.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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