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의 진상이 분명해졌다. 수세에 몰린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군경을 동원해 벌인 친위 쿠데타다. 권력이 없는 자가 벌이는 쿠데타의 목적은 권력 찬탈이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의 집권으로 이어진 1979년 12월12일의 쿠데타가 그렇다. 권력을 가진 자가 벌이는 쿠데타의 목적은 영구 집권이다. 박정희의 유신 독재로 이어진 1972년 10월17일의 쿠데타가 그렇다. 1972년과 1979년 쿠데타 모두 미국은 사전에 알았다. 12·3은 모르고 있었다. 미국은 발끈했다. 대통령 윤석열이 ‘복원했다’던 한-미 동맹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1972년, 1979년 쿠데타 미국은 알았지만…“미국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에 비판적 입장인가?” 2024년 12월3일 오후 1시14분(한국시각 12월4일 새벽 3시14분)께 열린 미국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가 물었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대통령 윤석열이 계엄 해제 발표를 하기 전 시점이었다. 베단트 파텔 부대변인은 “작금의 한국 상황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모든 단위를 동원해 소통하고 있다. 한국에서 법치에 기반해 정치적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온통 한국 관련 질문으로 채워졌다.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며 ‘법치’를 강조했다. 미국은 윤 대통령이 법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보나?” 기자의 질문에 파텔 부대변인은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매우 우려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정도의 말만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치 원칙에 따라 한국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했다. 미국은 계엄이 해제돼야 한다고 보나?”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파텔 부대변인은 “모든 국가에 자체 법률과 규칙, 절차가 있다. 나는 한국 법 전문가도 아니고, 한국 국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특정 국가의 법과 규칙이 해당 국가에서 잘 준수되기를 희망하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전에도 지금과 같은 사태(계엄 선포)에 대한 우려 표시가 있었나? 아니면 전혀 뜻밖의 상황인가?” 기자의 질문에 파텔 부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처럼 가까운 동맹이라면 비상계엄 선포에 앞서 사전 통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보느냐”는 후속 질문엔 “지금으로선 사전 통보는 없었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시점까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한국 쪽 상대방(외교장관·국방장관)과 직접 소통하지 못한 상태였다.
“윤 대통령이 심각한 오판을 했다. 과거에 겪었던 비상계엄 사태 경험이 한국에서 심각하게 부정적 파장을 부르고 있다. 정당화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12월4일(현지시각) 애스펀 전략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칫 ‘내정 간섭’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수위의 발언이다. 같은 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행사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활력이 넘치고 복원력이 강하다. 미국은 한국 민주주의의 활력과 복원력이 지속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한편 한국 정부와 비공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가 그랬듯, 미국도 텔레비전 발표를 보고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12월5일 국무부 브리핑에선 미국 쪽 입장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파텔 부대변인은 “어렵고 불확실한 시기에 보여준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에 고무됐다.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승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자가 물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고 이후 해제를 선언했다. 한국 국회에선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국은 윤 대통령과 계엄 선포 이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나?” 파텔 부대변인은 이렇게 답했다. “탄핵은 한국 내부 절차다. 한국 헌법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본다. 한국의 법과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그것이 우리 동맹의 근본적 기둥이다. 한-미 관계, 한-미 동맹은 양국의 특정 대통령이나 정부를 초월한다. 미국에서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상관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양국 관계는 공유된 가치에 기반한다.”
대통령 윤석열은 2023년 3월 워싱턴에서 국빈 만찬에 초대됐다. 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 의제인 ‘민주주의 정상회의’(2024년 3월)도 주재했다. 한-미가 ‘공유한 가치’는 무엇이었나? 기자가 물었다. “민주주의란 가치의 공유 없이 윤 대통령과 이전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파텔 부대변인은 이렇게 답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일련의 의문이 있다. 이에 대해 가능한 한 빠른 답변이 필요하다. 계엄 선포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는 문제는 대단히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한국 국회의 의결에 따라 계엄이 해제된 것은 불확실한 시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우리 동맹의 근간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계엄 선포 직후 블링컨 국무장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장관의 통화가 연결된 것은 12월6일이다. 외교부 쪽은 보도자료를 내어 “블링컨 장관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복원력을 높이 평가하고, 향후 모든 정치적 이견이 평화롭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되기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밝혔다. 반면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미국 쪽 자료 내용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국무부는 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으며, 한국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를 의결한 것을 환영했다. 블링컨 장관은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으며, 한국에서 민주적 절차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 동맹에 대한 어떤 도발이나 위협이 있을 때, 미국 국민은 한국 국민과 어깨를 겯고 함께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윤석열이 벌인 쿠데타는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던 한-미 동맹을 훌쩍 과거로 회귀시켰다. 계엄 선포에 대해 미국 쪽이 불편한 감정을 ‘내정 간섭성’ 발언으로 여과 없이 표출하는 게 상황을 잘 말해준다. 블링컨 장관이 연대를 표시한 ‘한국’은 더는 ‘윤석열의 한국’이 아니다. 초년 외교관 시절 전두환 일당의 5·17 비상계엄 확대(1980년)를 경험했던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주러시아 대사)은 미국 쪽 반응에 대해 이렇게 짚었다.
“미국으로서도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본다. 쿠데타 시도는 안 된다고 보는 거다. 자유, 민주, 인권이란 ‘공통의 가치’를 저버린 것이고, 믿었던 동맹 파트너가 미국이 싫어하는 권위주의로 나아간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군사동맹이고 가장 가까운 우방인데, 일방적으로 군을 동원하는 건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동맹으로서 신의를 저버린 행위다. 계엄 선포 이후 미국 쪽이 접촉을 시도했지만, 각 부처 장관이 모두 통화를 피했다. 블링컨 장관이 조태열 장관과 한 통화 내용을 보면, 거의 야단치듯 격앙된 모습이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불안정을 초래했고, 미국 입장에선 이를 공들여 구축한 지역 구도를 흔드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볼 것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2024년 7월11일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 핵억제 핵작전 지침’을 공동으로 승인했다. 그는 귀국 뒤 연 첫 국무회의(7월16일)에서 “한-미 동맹은 명실상부한 핵 기반 동맹으로 확고하게 격상됐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미국이 한 첫 번째 조처는 12월4~5일 워싱턴디시에서 열기로 한 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1차 핵협의그룹 도상연습(TTX) 연기였다.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한국 쪽 대표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미 미국에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팻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12월5일 정례 브리핑에서 회의와 연습 취소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발생한 사태를 고려할 때 취소하는 게 신중한 조치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윤석열이 ‘복원했다’던 한-미 동맹의 현주소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동시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주한미군(유엔사)은 기본적으로 남침과 북침을 모두 막는 ‘이중봉쇄’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계엄 선포를 앞두고 평양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등 국지전을 유도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오물풍선을 빌미로 ‘원점 타격’을 지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지전이 벌어지면 미국도 말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으로선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무척 괘씸했을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윤석열과 그의 내각은 사태 직후 최소한의 수습책도 내놓지 않았고, 동맹 간 소통까지 피했다. ‘이런 자를 백악관에 국빈으로 초대해 만찬을 베풀고, 노래(‘아메리칸 파이’) 부를 때 박수까지 쳤다니….’ 미국으로선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수도 있겠다 싶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헌법학자들 “국힘, 사태 오판…한덕수가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
미 국무부, ‘한동훈 사살 계획’ 출처 질문에 “인지 못 하고 있다”
‘윤 캠프’ 건진법사 폰 나왔다…공천 ‘기도비’ 1억 받은 혐의
미군 “우크라서 북한군 수백명 사상”…백악관 “수십명” 첫 공식 확인
유승민 “‘탄핵 반대 중진’ 비대위원장? 국힘 골로 간다”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국힘·윤석열의 탄핵심판 방해 ‘침대 축구’
‘윤석열 탄핵소추안’ 분량 줄이다…넘치는 죄과에 16쪽 늘어난 사연
[단독] 계엄 선포 순간, 국힘 텔레방에서만 ‘본회의장으로’ 외쳤다
1호 헌법연구관 “윤석열 만장일치 탄핵…박근혜보다 사유 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