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정식 국회의장이 2026년 7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9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을 통해 출범한 이 체제는 권위주의를 종식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한계도 분명해졌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승자독식 선거 구조, 이에 기댄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그것이다. 이 정치 구조는 갈수록 심화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다만 개헌은 사회의 기본 질서를 재설계하는 작업인 만큼 그 절차가 엄격할 수밖에 없다. 개헌안은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 과반의 발의와 국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거치고 국민투표까지 통과해야 한다. 개헌은 특정 정치세력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당 간 합의와 시민적 동의가 동시에 확보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연임을 위한 개헌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선택의 문제”라고 한 조정식 국회의장의 발언은, 사실상 개헌을 하지 말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 불가’를 명문화한 헌법을 전면 부정하는 취지로 읽힐 수 있기에, 개헌 논의의 신뢰 기반을 훼손한 것이다.
조 의장은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조 의장이 삼부요인으로서 특정 정당보다 국회 전체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해온 이전 국회의장들과 달리, 의장 선출에 관여한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말을 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친이재명계로 꼽히는 조 의장은 의장 후보 시절부터 국회 전체보다는 민주당을 위한 의장 역할에 더 충실했다.(이번호 이슈)
문제는 조 의장의 이번 발언이 결과적으로 1987년 체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게 됐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연임 개헌 반대’를 외치며 모든 정치개혁 시도를 거부할 명분을 얻게 됐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국민의힘이 ‘반이재명’에만 몰두할 경우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상대적 우위를 계속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조 의장의 발언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최근 발언과도 성격이 겹친다. 유 전 이사장이 최근 이 대통령을 연이어 공격한 배경에는 민주당 내 특정 진영을 대표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이 대통령이 정계 개편을 통해 거대양당제 정치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불안감 역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2025년 대선 출마 전 ‘민주당은 중도보수’라고 선언하며 한국 정치의 구조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유 전 이사장은 2024년 쓴 책 ‘그의 운영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에서 양당제를 두고 “그것은 국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내린 여러 차례의 정치적 선택이 만든 결과”라며 “(오늘 시점에서) 국힘당과 민주당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라고 말했다. 정치의 구조 변화보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발언이다.
정치는 사회 변화의 열망을 대의하고, 그 열망을 제도와 정책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체제와 현상을 유지하는 정치를 원하는 이들이 진보를 말할 수는 없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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