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이 요르단 수도 암만에 도착한 건 2003년 3월19일 오전이었습니다. 서둘러 숙소에 짐을 풀고 비자(입국사증) 신청을 위해 이라크대사관을 찾았습니다. 전쟁이 터지기 전 이라크에 가려는 사람이 차고 넘쳐났습니다. 간신히 신청서를 접수하고 돌아섰습니다.
“지금 이 시각 미군과 연합군 병력이 이라크를 무장해제하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고, 세계를 심각한 위험에서 방어하기 위한 군사작전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제 명령에 따라 연합군은 사담 후세인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하려 선별된 주요 군사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으며….”
이튿날 새벽 주변이 떠들썩해 눈떴을 때, 미국 시엔엔(CNN) 방송에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급히 택시를 불러 타고 요르단~이라크 국경마을 루웨이셰드로 내달렸습니다. 국경은 이미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현장’이 막혔습니다. 고심 끝에 중동 갈등의 핵심 고리인 팔레스타인을 취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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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이스라엘 국경의 적막한 ‘광야’를 느릿한 버스를 타고 건넙니다. 돌아보면 육로로 국경을 넘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기이했습니다. 곧 이스라엘 쪽 알렌비 국경검문소에 도착했습니다. 삼엄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와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와이엠시에이(YMCA)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우리 남도 밥상에 젓갈이 여럿 나오듯, 아랍식 밥상엔 각종 요구르트가 즐비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로 향했습니다. 이스라엘 쪽 에레츠 검문소에 도착해 여권을 내밀었더니, 앳된 군인이 ‘코파 델 문도’(월드컵)를 외치며 친한 체했습니다. 입경 허가 스탬프를 찍어주면서는,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근데, 저길 꼭 가야 해? 안전은 보장 못한다!” 그때 쓴 기사(제453호)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검문소를 통과한 뒤 가자지구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황톳빛 먼지로 뒤덮인 도로 위를 달리는 노새가 끄는 수레였다. 불과 몇㎞ 밖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눈이 부시도록 푸른 초지를 끼고 펼쳐진 탁 트인 도로 위를 유럽산 승용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낡은 트럭의 앞을 막고 느릿하게 걸어가는 노새는 가자지구의 현주소를 실감케 했다.”
2003년 3월 가자지구는 제2차 인티파다(아랍어로 ‘저항’이란 뜻, 2000년 9월28일~2005년 2월8일)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도 가자는 봉쇄됐고, 주민 가운데 110만 명이 유엔 구호식량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인구의 84.6%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했고, 외부와 차단된 가자의 실업률은 70%에 육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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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의 기습 테러로 촉발된 ‘가자 전쟁’의 현장을 중계하는 <알자지라> 생방송에서 다시 노새를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군당국의 대피 경고에 가자지구 남쪽으로 내려가는 피란민의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노새가 끌고 있었습니다.
다시, 가자의 참상에 대한 기사를 씁니다. 상황은 20년 전과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앗살람 알라이쿰.’ 가자의 친구들이 오늘, 지금, 당장, 평화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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