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자들이 유가족보다 앞에 있습니까. 기자들이 뭔데. 왜.”
2024년 12월30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가족을 잃은 한 중년 남성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날은 179명이 목숨을 잃은 제주항공 참사 발생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이랬습니다. 정부 관계자와 유가족대표단은 희생자 주검 수습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종일 잦은 간격으로 브리핑했습니다. 문제는 이때 동원된 스피커였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참사였기에 초반엔 행사장에서 흔히 쓰이는 앰프 스피커가 브리핑에 사용됐는데, 이 스피커는 넓은 공항 대합실에서 쓰이기엔 성능이 부족했습니다. 뒤쪽에 자리한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브리핑 소리까지 잘 들리지 않아 답답한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를 비롯한 기자들이 브리핑 공간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내용을 받아치고 있으니, 공항 뒤쪽에 자리한 유가족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기자들은 취재(제1546호 표지이야기)를 위해 ‘정확하게 받아쳐야 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누가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가’란 기준이 현장에서 고려되지 못한 건 분명했습니다.
또 다른 비슷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참사 직후 ‘사랑하는 가족이 왜,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 됐는지’ 가장 절실하게 궁금한 건 유가족일 겁니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의 참사 원인 관련 브리핑 및 질의응답은,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이 아니라 옆 건물인 관리동 기자실에서 따로 진행됐습니다. 유가족 가운데 누군가 마이크를 들고 ‘왜 사고 원인 조사 등 관련 브리핑을 해주지 않느냐’는 취지의 비판을 제기하고 나서야, 유가족들에게 주검 수습 관련 외 상세한 내용들도 브리핑과 질의응답이 진행됐습니다.
국토부는 참사 다음날인 12월30일 열린 브리핑에서 방위각 제공시설(로컬라이저)을 지탱하는 콘크리트 둔덕이 종단안전구역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자들이 아닌 유가족들 앞에서 관련 브리핑이 진행됐더라도, 이 같은 단편적 규정에 얽매인 발표를 성급히 할 수 있었을까요.
4일간 머물렀던 현장에서 ‘기자는 기자의 일’을, ‘정부는 정부의 일’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미숙함으로 유가족에게 상처를 준 순간이 많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참사 현장에 가게 된 사람들을 위한 ‘재난피해자 권리 안내서’가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해,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펴냈습니다. 안내서는 피해자 편, 조력자 편, 법률가 편, 심리상담사 편, 언론인 편, 이주민 편, 공무원 편 등으로 구성(1661-2014.org/manual)돼 있습니다.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더 나은 현장을 대비하는 것도 남은 사람들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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