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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호텔에서 그를 만난다면?

10년차 베테랑 호텔리어 제이콥 톰스키의

<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
등록 2017-10-19 16:35 수정 2020-05-03 04:28

호텔 무료 숙박권을 거절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실제 호텔에서 묵어본 적은 서너 번에 불과하다. 낯선 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조명과 양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의 미소를 떠올리면 괜스레 부담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아직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도 있고, 경험치가 부족한 이유도 컸다. 모르는 사람에게 과한 대접을 받는 느낌도 떨치기 어렵다. 정당한 거래로 합법적 서비스인데도 그렇다. 내심 비싸다고 생각하며 이왕이면 전망 좋은 방을 원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무인 모텔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충분히 이해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얼토당토않은 서비스 요구하는 손님</font></font>

우리는 대개 누군가의 서비스를 받는 일을 불편해한다. 서비스란 결국 타인이 내게 베푼 호의다. 호의엔 호의로 응대하기, 그 단순한 거래의 룰을 지키자니 어쩐지 손해 보는 듯해 표정 관리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종종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뒤져 값싸게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낼 순 없을까, 궁리한다.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뉴스를 시청하다 잠드는 여느 밤과 분명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새 비누로 샤워하고 새 수건으로 몸을 닦은 뒤, 깨끗한 목욕가운을 걸치고 사각거리는 이불이 깔린 호텔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어서다. 상쾌하다 못해 이국적인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다.

그 시간은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일탈적 행위이기보다 낯선 장소를 탐험하는 행위에 훨씬 가깝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알면서도 나는 호텔에서 쓰면 좋을 팁을 알려준다는 말에 솔깃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은 호텔 직원과 옥신각신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얻는 방법, 좀더 다정하고 배려 넘치는 접대를 받는 방법을 소개한다. 적어도 호텔 직원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피해 내 캐리어에 발길질하는 불상사를 피하는 데도 아주 요긴하다.

의 저자, 제이콥 톰스키는 10년차 베테랑 호텔리어다. 철학 전공자인 그가 호텔리어가 된 연유는 이렇다.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면 당장 취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철학 전공 이력은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에겐 머뭇거릴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떠돌이 생활에 가까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해군인 어머니와 해병대 출신인 아버지는 2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제이콥은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기도 어려웠다. 항상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호텔 로비에서의 일은 세상의 중심이 자신인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다.

“손님을 제대로 객실에 투숙시키는 법을 알고 그 방을 완벽히 깨끗하게 만드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끝난 거야.”

총지배인은 프런트 데스크의 업무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문제는 럭셔리 호텔의 서비스는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거였다. ‘창조적 서비스’라는 말은 제이콥을 설레게 했다.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 말은 ‘손님이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니즈’를 알아내는 일에 가까웠다. 그에게 서비스란, 부정적 부분을 최소화하고 완벽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 ‘거짓 미소’ 같은 단어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가 능숙해진 탓도 있지만 손님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납득하기도 어려웠다. 유료 영화를 보고 나선 실수였으니 청구서에서 빼달라는 요구, 얼토당토않은 서비스를 요구하며 직원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노려보는 경우, 대놓고 호텔 직원을 하인이라고 부르는 어린 손님, 나체로 룸메이드가 청소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변태. 어디 그뿐인가. 경영진의 요구와 손님의 요구를 동시에 들어주기도 불가능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0년의 배움, 화를 누그러뜨리는 법</font></font>

미국 뉴올리언스 작은 호텔의 주차요원에서 뉴욕 맨해튼의 특급호텔 지배인으로 승진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그가 제대로 배운 것은 화를 누그러뜨리는 법이었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 환하게 미소짓는 법을 말이다. 제이콥은 말한다.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싶다면, 호텔 직원에게 그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에 대해 물어보라고. 물론 그는 호텔에서 유용한 팁도 잊지 않고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주차요원에게 차를 맡길 때, 차를 살펴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그보다 안전하게 차를 맡기고 싶다면? 주차요원에게 미리 팁을 주면 된다.

미니바의 음식을 먹고 돈을 내고 싶지 않다면? 직원이 훔쳤다고 우기면 된다. 이유 없이 방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면? 직원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의 이름을 외우면 된다. 그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직원의 태도는 달라질 테니까. 그 이상의 협박은 없다. 제이콥 톰스키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주는 팁이니 믿어도 될 만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제이콥 톰스키는 결국 분노조절장애를 얻었다. 과장하자면 손님 500명 중 단 2명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한 게 발단이었고, 유니폼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쪽지를 던진 게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무료 조식권을 달라는 손님과 없는 방을 달라는 손님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를 분노조절장애라고 단정한 호텔 경영진의 책상 위에 말이다. 어쨌든 (경영진 평가에 따르면) 그는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그의 손엔 호텔의 모든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마스터키가 쥐어져 있다. 여행 중 우연히 호텔 로비에서 그를 만난다면?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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