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읽는 책이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깊은 감동을 받아 몰입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느낌과 감정으로 읽는 책 말이다. 그런 놀라운 작품이 우리 곁에 있다. 그것도 8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 전부터.
베네수엘라 작가 메네나 코틴과 로사나 파리아는 현대인의 삶이 지나치게 시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치열한 경쟁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기업은 물론 문화계에서조차 세상의 주목을 끌기 위해 가장 자극적이고 전달 속도가 빠른 시각 중심의 매체를 남발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설탕의 달콤함에 매료되는 것처럼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길들여졌다. 그 결과는 겉모습만 중시하는 피상적인 인간형의 범람이다.
중년의 두 여성 작가는 세상의 참다운 모습을 이해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가진 풍부한 감각을 되살려주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둘은 기존 ‘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작업에 착수했다.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고래이야기 펴냄)은 읽고 머리로 생각하는 작품이 아니다. 표지를 넘기면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지는데, 어둠 속에는 얕은 부조로 돌출된 부드러운 그림이 희미하게 빛을 반사한다. 이 책은 상황을 설명하는 왼쪽의 짧은 텍스트를 읽고 그 그림을 촉감으로 ‘느끼는’ 특별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당신이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색상이 떠오르고, 가장 신선한 향기가 종이 냄새를 덮을 것이다. 독자 스스로가 그려야 하기에 그 어떤 책보다 내밀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둠의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책장을 넘길 무렵이면 유일하게 밝은 색상인 흰색 글자가 거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텍스트 위에는 점자도 표기돼 있어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세상을 느끼고 관계 맺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언어와 생각을 뛰어넘어 책을 통해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한 ‘색다른 경험’이나 ‘유희거리’ 정도로 치부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책이 오감을 이용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첫발자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단한 노력 없이는 그 어려운 방법을 결코 깨우칠 수 없다. 아이가 글자를 배우듯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책장을 넘기며 조금은 무뎌진 우리의 오감을 키우자.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가만히 느껴보자.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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