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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18년 마감 벨로주 인터뷰 “5만 석 아레나보다 천 석 공연장을”

대중음악 다양성 지켜온 기획자의 솔직한 속내
등록 2026-02-26 21:58 수정 2026-02-28 15:31
2009년 4월26일 햇볕이 잘 드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후미진 골목 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시즌1의 벨로주에서 국카스텐이 어쿠스틱 공연을 열었다. 박정용 제공

2009년 4월26일 햇볕이 잘 드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후미진 골목 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시즌1의 벨로주에서 국카스텐이 어쿠스틱 공연을 열었다. 박정용 제공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 늘어난 라이브 클럽·카페, 공연장은 이른바 ‘홍대 앞’을 인디음악의 터전으로 변화시켰다. 그중 벨로주는 마포구 서교동에서 2008년 비교적 뒤늦게 문을 열었다. 시작은 전문 공연장이 아니었다. 주중에는 카페로 영업하다 일요일에만 공연을 열었는데, 2층이라 시끄러운 공연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벨로주는 햇볕이 들어오는 2층 공간에서 어쿠스틱 공연을 기획하는 방식으로 단숨에 차별성을 만들어냈다.

벨로주 운영자 박정용은 소문난 음악광답게 특정 장르에 매이지 않고 좋은 음악을 내놓는 인디음악가를 두루 아우르며 공연을 기획했다. 음악가들이 마음 편히 공연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조율했을 뿐 아니라, 공연 영상을 남겨 음악을 알리는 역할까지 했다. 후발 주자였던 벨로주가 대중음악계에서 입소문이 난 까닭이자 한겨레문화센터와 네이버 등에서 일하며 트렌드를 읽은 그의 감각이 빛나는 부분이었다.

18년 동안 벨로주를 운영해온 음악 기획자 박정용씨. 박정용 제공

18년 동안 벨로주를 운영해온 음악 기획자 박정용씨. 박정용 제공


시대와 대중을 존중하는 다정한 기획자

2011년 11월 지하로 옮긴 시즌2에서는 록밴드의 공연을 비롯해 더 다양한 기획공연을 선보였다. 폭넓은 음악가들이 벨로주 무대에 섰고 팬들을 만나며 이름을 알렸다. 그만큼 홍대 앞의 무대가 다양해졌고, 벨로주에서 기획하는 공연이라면 믿고 가도 되겠다는 신뢰가 생겼다. 하지만 월세를 내는 운영자에게는 ‘공연장을 원하는 대로 유지할’ 자유가 없었다. 2014년 시즌3를 연 이유다.

시즌3는 마포구 서교동(벨로주 홍대)과 망원동(벨로주 망원), 두 곳에서 두 개의 벨로주를 운영했다. 벨로주 홍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기획공연과 대관공연을 했고, 벨로주 망원에서는 어쿠스틱한 공연과 음악감상회를 진행했다. 박정용은 그동안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일했을 뿐 아니라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처음 기획하고 제작을 맡아 프로그램을 안착시켰다. 티켓 한 장으로 홍대 앞 여러 공연장을 오가며 자유롭게 공연을 보는 라이브클럽데이를 기획했고, 디엠제트(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과 아시안팝페스티벌이 등장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홍대 앞이 인디음악의 터전으로 남아 있게 지키려 고심하는 기획자다. 또한 자신을 앞세우거나 고집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고, 원칙을 가지면서도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욕망을 존중하는 다정한 기획자이기도 하다.

2026년 1월28일 박정용이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벨로주 홍대 운영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많은 이가 아쉬워한 이유다. 여러 건의 인터뷰 요청을 고사한 박정용과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이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왜 문을 닫는지, 지금 홍대 앞 인디신(Scene)은 어떤 상황인지 들어봤다.

 

―18년 동안 운영한 벨로주가 문을 닫습니다.

“벨로주 운영이 경영적으로 어려워서 그만두는 건 아닙니다. 최근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다만 18년간 원치 않은 이전 등을 거치면서 그만둘 때라고 생각하는 그때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좀 우습죠. 하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벨로주가 문을 닫으면서 홍대 앞에 라이브 클럽·공연장이 거의 남지 않은 게 아니냐고 우려하거나 오해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게요. 벨로주는 잘 운영되고 있었고, 이후에도 새로운 주체가 (다른 이름의) 공연장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홍대 앞 라이브 신은 팬데믹 시기 어려움을 견딘 뒤 조금은 단단해진 상태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매일 기획공연이 열리는 라이브 클럽은 없어지고 대관을 주로 하는 공연장이 늘어난 점은 아쉽지만요.”

“유명 아티스트와 신인 밴드가 함께 공연하는 곳”
2013년 6월7일 지하로 옮긴 시즌2의 벨로주에서 뮤지션 이루리가 단독공연을 열었다. 시즌2의 공간은 박정용이 기획한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촬영 무대가 됐다. 유튜브 갈무리

2013년 6월7일 지하로 옮긴 시즌2의 벨로주에서 뮤지션 이루리가 단독공연을 열었다. 시즌2의 공간은 박정용이 기획한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촬영 무대가 됐다. 유튜브 갈무리


 

―벨로주는 많은 음악가와 음악 팬이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벨로주가 피하고 싶었던 단어는 코워크, 시너지, 네트워크, 낭만, 아지트… 벨로주는 놀이터가 아닌 일터, 예술인들의 사교장이 아닌 관객들이 선호하는 공간. 그래서 가능했던 10년.’ 벨로주 10주년 때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인데요. 벨로주는 대안적인 장소를 지향했다기보다 시장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을 지향했다는 뜻입니다. 공연장은 관객이 공연을 볼 때 만족감을 느껴야 하고 음악가들이 공연하기 수월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관객이 편하게 느끼는 온도, 연주자들을 향한 모니터 사운드 이런 것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카페는 커피가 맛있어야 하고, 좋은 호프집이 되려면 생맥주 관을 매일 청소하면 됩니다. 단순하지만 불변의 원칙입니다. 인디 공연장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2025년 12월20일 세 번째 벨로주 홍대 공연장에서 아티스트 전진희가 공연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2025년 12월20일 세 번째 벨로주 홍대 공연장에서 아티스트 전진희가 공연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홍대 앞이라는 지역과 한국 대중음악 신에서 벨로주는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려 했나요.

“100여 석의 작은 공연장인 벨로주라는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십센치, 선우정아 같은 유명 아티스트의 장기 공연과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밴드나 신인 싱어송라이터들의 첫 앨범 발매 콘서트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 특이했죠. 인기가 많든 적든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음악가가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는 게 자연스러워져야 대중도 다양한 음악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벨로주는 그런 공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난 18년간 안정적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실용음악이나 취미 밴드를 대상으로 하는 대관을 받지 않았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어요. 이곳이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인디 음악가들이 자기 공연을 실현하는 공간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길 기대한 거죠. 결국 그게 벨로주라는 공간의 브랜딩에도 도움이 되었고요.”

―그럼에도 18년 동안 두 번이나 위치를 옮기고, 많은 월세를 내면서 공연장을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 실패했다고 자평하셨지요.

“공연장 운영을 사명처럼 생각하는 분들 앞에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에게 공연장 운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디 공연장을 운영한다는 건 수익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속 가능해지려면 일 자체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돼야 하는데, 공연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 자체에 지쳐 있었습니다.”

 

2014년 11월9일 벨로주 세번째 시즌에서 2집 발매 공연을 하고 있는 로로스. 벨로주 제공

2014년 11월9일 벨로주 세번째 시즌에서 2집 발매 공연을 하고 있는 로로스. 벨로주 제공


“홍대 앞은 문화적 다양성의 보루 같은 곳”

―사람들은 주로 높은 임대료, 건물주의 이익 추구, 관광지로서의 정체성 변화 같은 요인이 홍대가 변한 이유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이런 변화가 홍대를 기반으로 한 인디신과 공연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큰 영향을 미쳤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낯선 단어를 많은 대중이 아는 건 특이한 현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홍대 인디신의 한계 이유로 보는 건 게으른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홍대 앞이라는 지역에서 인디신이 전문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관광지 이야기를 하셨는데 폭발적으로 늘어난 홍대 앞 외국인 관광객 중 많은 수가 단체 관광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기대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일본 도쿄에 가서 다양한 서브컬처를 즐기는 것처럼요. 홍대 앞이 관광지가 된 걸 비판할 일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솔루션을 찾는 게 필요한 역할이었죠.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지 못한 측면에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2017년 6월11일 벨로주 망원에서 공연하고 있는 나희경. 벨로주 제공

2017년 6월11일 벨로주 망원에서 공연하고 있는 나희경. 벨로주 제공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홍대라는 지역이 가진 의미와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지금 문화적으로 가장 핫한 동네는 성수동이라고 하지만, 홍대라는 지역만큼 창작자들이 중심이 된 생태계는 서울에 없습니다. 홍대 앞은 예술이 도시를 만들지만, 성수동은 도시가 예술을 소비하는 성향이 강하죠. 특히 다양성이라는 생태계 관점에서 (홍대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지역입니다. 홍대라는 단어 대신 인디음악을 넣어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요. 홍대 앞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계속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관객을 만나고 선택받으며 성장합니다. 예전에는 이 생태계가 홍대로만 쏠리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전 같지는 않죠. 그래서 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입니다.”

―문화예술 행정에 제안하거나 요청하고 싶은 이야기가 적지 않으실 테지요.

“밤을 새울 만큼 많지만, 대중음악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미디어나 대중의 쏠림보다 행정의 쏠림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5만 석 대형 무대(아레나)만 이야기하는데요. 오백, 천, 만 석 공연장이 더 긴급합니다. 다양한 생태계를 위해선 공연기반시설(인프라)도 다양해야 합니다. 대중음악에서 ‘다양성’은 보호와 지원의 차원이 아니라 시장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최근 급격하게 바뀐 영화 시장을 봐도 좋습니다. 천만 영화 세 개가 백만 영화 스무 개보다 매출은 높지만, 생태계 관점에선 약점이 큽니다. 무엇보다 천만 영화만 봐서는 취향이 생기지 않습니다. 스타 밴드가 나와야 밴드 붐이 생기고 신이 커진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그 많던 천만 영화도 사라지지 않았나요.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지 않는 문화 생태계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필요한 건 동료의 존재”

―마지막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홍대 앞에서 좋은 음악을 만들고 호흡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테지요.

“지난 18년 벨로주라는 공간에 보내준 과분한 사랑과 응원에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생기는 부담감과 커지는 막막함을 음악가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저도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맙시다. 그럴 때 동료가 필요합니다. 모든 음악을 혼자 만들 수 있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홍대 앞이 의미가 있다면 동료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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