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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시위는 과도한 걸까 “급진적 운동이 사회를 바꾼다”

과거에서 미래의 문제 풀 실마리 찾아내는 ‘내일을 위한 역사’
등록 2025-11-20 22:18 수정 2025-11-25 20:31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서울 동대문역에서 회기역까지 1호선 바닥에 스티커를 붙여가며 쉴 새 없이 승객을 향해 외친다. 정택용 사진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서울 동대문역에서 회기역까지 1호선 바닥에 스티커를 붙여가며 쉴 새 없이 승객을 향해 외친다. 정택용 사진가


수천 명의 시위대가 도로 위에 드러누워 교통을 방해한다. 영국 런던 기반 국제 기후행동 단체 ‘멸종반란’ 시위대다. 빈센트 반 고흐 작품에 토마토수프를 던지고 모나리자 진열장을 부순다. 영국 환경운동단체 ‘저스트스톱오일’ 활동가들이다. 이런 급진파의 기후행동은 영국 주류 미디어들로부터 눈엣가시 취급을 받는다. ‘얼간이’ ‘테러분자’로 낙인찍히고 수천 명이 구속됐다.

미술관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는 페인트를 뿌리는 방식으로 기후운동을 벌이는 단체 ‘저스트스톱오일’이 2022년 7월 영국의 맨체스터 미술관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제공

미술관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는 페인트를 뿌리는 방식으로 기후운동을 벌이는 단체 ‘저스트스톱오일’이 2022년 7월 영국의 맨체스터 미술관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제공


장애인 이동권을 얻기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출근 투쟁에 대해 ‘시민들이 불편해한다’며 한국 다수 미디어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과 유사하다. 유럽 기후행동 단체 시위에 비할 바가 아닌 ‘합법 시위’지만, 한국에선 전장연의 시위도 불법 딱지와 비판적 시선에 늘 매여 있다.

내일을 위한 역사 책 표지

내일을 위한 역사 책 표지


이런 저항운동은 과도한 걸까. 사회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은 ‘내일을 위한 역사’(조민호 옮김, 더퀘스트 펴냄)에서 “성공적 시위운동은 급진적인 조직이나 세력이 주도할 때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급진파 효과’를 말한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이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이어서 승리한 것으로 흔히 알려졌지만, 실은 맬컴 엑스는 물론 이슬람 국가, 흑표범단 같은 과격 단체의 급진적 운동이 병행됐다. 마틴 루서 킹의 흑인 민권운동만 말하는 것은 “살균된 역사인식”이라는 것이다. 여성참정권운동도 처음에는 평화적이었지만 결국 진전 없음에 좌절한 에멀라인 팽크허스트의 급진적 운동에 힘입어 성공의 역사를 썼고, 영국 노예제 폐지 역시 자메이카 식민지 노예 반란이라는 격렬한 저항이 있었기에 급격히 찾아왔다.

저자는 이런 ‘급진의 역사’에서 미래의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낸다. 오늘의 기후위기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기업과 그에 얽매인 정부의 비타협적이고 느려터진 점진주의로 말미암아” 변화가 없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 뒤 세계 연평균 탄소배출량은 줄기는커녕 매년 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도 극히 일부다. 저자는 “신속한 기후변화를 위한” 티핑포인트를 급진적 기후운동이 건드릴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을 던진다.

이 밖에도 무자비한 소비주의를 잠재우기 위해 에도시대 일본의 ‘재생순환경제’를 복기하고, 이민자에 대한 전세계적 혐오와 공포를 완화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11세기 에스파냐 남부에서 번성한 이슬람왕국 알안달루스의 공존 정책을 살피러 떠난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탐색하는 ‘응용역사’를 도구 삼아 제안하는 상상력이 ‘위기의 현실’에 희망을 던진다. 376쪽, 2만1천원.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정치의 발명

조홍식 지음, 글항아리 펴냄, 3만3천원

‘문명의 그물’에서 12개 키워드로 유럽 문명을 거시적으로 훑은 지은이가 유럽 정치 문법을 여섯 가지 역사적 ‘타입’(유형)을 통해 소개하고 분석한다. ‘타입’은 다층적인 현실과 단순하게 환원한 이상 사이 중간 지점이다. 타입을 통해 아테네 폴리스∼유럽연합까지 꿰뚫으며 이론에 역사적 경험을 덧대 현대 정치를 분석하는 통찰을 준다.

 


 

전방 100미터에 캥거루족이 등장했습니다

나목 지음, 싱긋 펴냄, 1만5천원

33살 여성이며 프리랜서를 희망하는 무직의 미독립 개체. 저자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는 애초에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독립할 생각이 없으니까. 부모는 20대엔 “정말 안 나가나?”, 30살엔 “진짜 안 나가네?” 했다가 지금은 “안 나가는 게 낫다!”로 변했다. 캥거루족의 글맛이 웃음을 자아낸다.


입양으로 아기를 잃은 50만 명의 여성들

데이비드 하우 등 지음, 권희정 등 옮김, 안토니아스 펴냄, 1만6천원

한국에선 2024년 보호출산제 도입 이후 더 많은 위기 임산부가 아기를 포기하고 있다. 이 방식은 여성에게 최선일까? 영국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제 입양 시대’를 건너온 여성들을 만나 ‘상실의 트라우마’를 추적했다. 입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사회의 믿음에 물음을 던진다.

 

 


매운맛의 중국사: 고추의 문화인류학

차오위 지음, 윤지산 옮김, 마르코폴로 펴냄, 2만2천원

고추가 담은 사회와 계급의 변화, 인간 욕망을 추적한다. ‘통각'의 일종인 고추의 매운맛은 긴장과 억압을 완화한다. 신체 통증을 유발해 뇌로 하여금 위험으로 착각해 엔도르핀을 분비하게 한다. 마조히즘 작동 원리와 같다. 한국은 고추를 많이 먹는 나라다. 저자는 묻는다. 사회 격차와 경쟁 압박이 고추를 찾게 하는 요인 중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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