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브란스 노조 파괴 10년, 청소노동자들에겐 아직 3명의 조합원이 있다

노조 탄압의 기억을 새로 쓰는 ‘변순애들’의 분투… 사내 괴롭힘 함께 싸우고 학생 연대로 버티고
등록 2026-03-12 20:25 수정 2026-03-18 11:18
변순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장이 2026년 3월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병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변순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장이 2026년 3월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병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점심시간이 되자 병원 로비가 북적인다. 휠체어에 앉은 환자와 어디론가 전화하는 보호자, 손에 커피를 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삐 걷는다. 그들을 마주 보고 두 사람이 우뚝 섰다. “시민 여러분, 이곳 세브란스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들어주십시오.”

매주 정기 피케팅을 하는 수요일이면 청소 노동자의 존재감이 한껏 드러난다. 변순애 민주노총 세브란스분회장과 이류한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이 피켓을 들고 소리쳤다. “세브란스가 만든 문제, 세브란스가 해결하라! 노조 파괴 태가비엠 지금 당장 퇴출하라!”

변순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장(오른쪽)과 사무국장이 2026년 3월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병원에서 펼침막을 들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변순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장(오른쪽)과 사무국장이 2026년 3월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병원에서 펼침막을 들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16년 7월13일 노조 설립과 함께 시작된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기 피케팅은 10년이 흐른 2026년 3월4일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젠 제 얼굴을 보호자들이 먼저 알고 음료수를 사다주세요. 간호사님들도 ‘파이팅’ 외쳐주시고요. 기분 좋죠. 정말 보람된 게, 노조 조합원이 저한테 ‘언니 덕분에 5년 밥 벌어먹고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사내 괴롭힘을 당할 때 제가 같이 싸워줬거든요.” 변순애 분회장이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에 민주노총 산하의 자생 노조(이하 민주노총 노조)가 생긴 지 10년이 흘렀다. 민주노총 노조는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과 태가비엠의 노조 파괴에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병원의 노조 파괴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비록 조합원 수는 160명에서 3명으로 대폭 줄었지만 민주노총 노조를 이어가려는 열망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쫓겨난 곳에서도 노조원 모으기

“제가 2018년 암을 진단받았거든요. 병가도 안 쓰고 연차를 모아서 겨우 수술받았어요. 복귀하니까 현장 소장이 ‘출근 가능하다는 진단서를 끊어오라’더군요. 어느 종합병원 의사가 그걸 써줘요? 알아서 퇴사하라는 거죠. 그런데 제가 그걸 받아왔어요. 소장이 깜짝 놀라더군요. 그때 저를 지키려고 민주노총에 가입했죠.”

변순애 분회장은 2018년부터 현재까지 민주노총 노조를 지키고 있다. 회사에 미운털이 박혀 ‘유동근무’로 쫓겨났지만 거기서도 조합원을 모았다. 유동근무는 정해진 구역 없이 떠돌아야 해서 많은 노동자가 기피한다. 그러나 변 분회장은 18개월을 버티며 유동근무를 오히려 강점 삼았다.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같은 데는 외부랑 격리돼 있으니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잖아요. 내가 바깥소식을 물어다 주니 다들 좋아했죠.”

 

2022년 6월1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가 병원의 노조 파괴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농성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2022년 6월1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가 병원의 노조 파괴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농성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그렇게 모은 조합원들도 지금은 정년퇴직을 맞이해 떠났다. 그래도 변 분회장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최근에도 사내 괴롭힘을 당한 동료를 위해 싸워 조합원을 새로 얻었다. “60살 정년까지 3년 남았는데 나까지 가버리면 내 선에서 노조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 뭐라도 하는 거죠.”

왜 그렇게까지 할까. 변 분회장과 함께 노조를 한 박신자 전 사무장은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전까지는 남을 위해 산다는 걸 생각조차 못했던 평범한 60대 초반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노조를 하면서 다같이 한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경험이 제게는 너무 큰 축복이었어요. 노동자 입장에서 목소리를 냈다는, 나름 대단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죠.”

그는 민주노총 노조가 세브란스병원에 계속 남아있길 바란다. “내가 싸운 건 잊혀져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2명이든 3명이든 아직까지 소수가 싸우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기지 못하더라도 옳으니 한다

노조 탄압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노조에 몸담았던 조합원들은 이를 그저 어둡게만 기억하지 않았다. 부당함에 항의하고 말 못하는 약자를 대신한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송영이씨는 2016년 민주노총 노조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평소 의료진과 가까웠던 송씨에게 동료들은 섣불리 노조 가입을 권하지 못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송씨가 먼저 노조 가입서를 써서 건넸다. “나 하나라도 보탬이 돼야지.” 그 뒤로 한 번도 피케팅에 빠진 적이 없다.

태가비엠은 민주노총 노조에 가입한 그를 수술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쫓아내고 갖은 협박과 회유를 했다. 괴롭힘에 못 이겨 시말서를 쓸 때면 “내가 왜 민노에 들어가서” 후회도 했다. 그러나 송씨는 “한번 한 것은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 부당해고를 당하던 날까지 노조에 남았다.

“서로 잘 살자고 하는 짓이잖아요. 10원보다 100원이 좋으니까, 나는 그 100원을 향해서 가입했어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걸 상황이 안 좋다고 탈퇴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자를 때까지 하는 거야. 지금도 어디든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그에게 노조 활동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기억”이다. “병원이고 태가비엠이고 자기 살자고 죄 없는 사람을 끌어다가 바보 만들고 사표 쓰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그 작전에 안 말렸다는 거, 나 자신에게 ‘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음료수 들고 삼삼오오 학생 연대

송씨에게 특히 흐뭇했던 기억은 연세대 학생들과의 만남이다. 삼삼오오 음료수병을 들고 와서 응원하는 학생들이 고마웠다. “젊은 사람이 뭘 이렇게 싸가지고 오는 거예요. 제가 ‘참 깨어 있는 사람이다, 멋지다’라고 말했어요. 다 같이 박수도 치고요. 되게 흐뭇하고 ‘아, 우리를 인정하는구나’ 느꼈어요.”

세브란스병원 노조 설립엔 연세대 학생들의 공헌도 컸다. ‘살맛’이라는 연세대 노동자·학생연대(노학연대)가 적극적으로 청소노동자를 만난 결과, 2008년 연세대분회에 이어 2016년 세브란스분회가 설립됐다. 그러나 학생들은 어렵게 출범한 노조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봐야 했다. 당시 연세대 학생이던 양동민 스튜디오알 미디어 활동가도 그중 하나였다.

2022년 4월14일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병원 청소노동자에 연대하는 700명의 목소리가 담긴 펼침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2022년 4월14일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병원 청소노동자에 연대하는 700명의 목소리가 담긴 펼침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양동민 활동가에게 세브란스병원 로비는 “지긋지긋한 공간”이다. 병원에 피케팅을 하러 가면 하청 관리자들의 삿대질과 무단 사진 촬영은 다반사였다. 하청 관리자들이 어렵게 모은 학생 연대 서명을 보란 듯이 떼어버리던 기억도, 부당노동행위 항의에 ‘증거 있냐’며 고압적으로 굴던 기억도 생생하다. “적대적인 갈등 상황에 계속 노출되니 버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연대하러 가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죠.”

그래도 민주노총 노조는 버텼다. 조합원 수는 줄어도 명맥은 끊기지 않았다. “2019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노조가 비록 소수지만 계속 남아서 싸우고 있었어요.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노조 파괴 증거도 드러났고요 . 그때 조합원들과 다시 병원 피케팅을 하면서 로비를 휘젓고 다녔는데요. 과거의 지긋지긋한 기억을 새롭게 덮는 것 같았어요.”

2022년 11월1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가 병원의 노조 파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신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로비에 붙여두었다.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2022년 11월1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가 병원의 노조 파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신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로비에 붙여두었다.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그는 “승산만 따졌다면 지속하기 어려웠을 일”이라 말한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옳은 일이니 한다’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계속 내면 다시 그에 공명하는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사와 재판은 “만시지탄”이었지만 “그 판결이 가능했던 것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낸 사람들 덕분”이었다.

학생들의 연대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연세대 노학연대는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살맛’으로 이름을 다시 바꿨다. 과거의 조직화 흐름을 잇겠다는 의지다. 최근 태가비엠을 내보낸 서울여대도 노학연대 학생들이 1천 명 넘는 연대 서명을 모으며 청소노동자들을 도왔다. 양 활동가는 “그런 모습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병원의 노조 파괴는 현재진행형

그러나 자그마치 10년이다. 명백한 증거를 놓고도 노동부와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고 재개한 수사도 3년 넘게 걸렸다. 그 사이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를 회복할 시간을 놓쳐버렸다.

“그래도 첫 6개월에서 1년 가까이는 큰 흔들림 없이 가입 규모가 유지됐어요. 다들 ‘한번 민주노총 노조를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하는 거다’라는 자부심이 있었죠. 그런데 노조 파괴 증거를 노동부가 바로 커트(불송치)해버리고 병원과 태가비엠도 신규 채용된 분들을 한국노총에 가입시키면서 노조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노조 설립을 도왔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의 최다혜 전 조직차장이 말했다.

그는 2017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병원의 노조 파괴 문건을 우연히 손에 넣었다. 최아무개 전 병원 사무국 파트장이 ‘최다혜 방문 소란은 노노대응 유도 바랍니다’라고 자필로 적은 문건이다. 그 밑엔 ‘명심하겠습니다’라는 태가비엠 현장소장의 답변도 있었다.

2016년 9월7일자 업무일지 갈무리. 최아무개 전 세브란스병원 파트장이 사용자 대신 어용노조를 부추겨 노조 간 갈등(노노갈등)으로 유도하라고 주문한 내용이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2016년 9월7일자 업무일지 갈무리. 최아무개 전 세브란스병원 파트장이 사용자 대신 어용노조를 부추겨 노조 간 갈등(노노갈등)으로 유도하라고 주문한 내용이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저와 대면했을 때는 그 파트장이 굉장히 젠틀했거든요. ‘병원은 어떠한 법 위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조 요구를 잘 검토해보겠다’고 했어요. 뒤에선 그렇게 (자필 메모를) 썼다는 게 충격이었죠. ‘이거 (부당노동행위) 무조건 입증되겠다’고 생각했는데 10년이나 걸릴 줄은 몰랐죠. 그런 걸 보면 조합원들이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다는 걸 다시 느껴요.”

 

2022년 11월1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가 병원의 노조 파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도로 위에 걸었다.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2022년 11월1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가 병원의 노조 파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도로 위에 걸었다.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그를 무엇보다 힘들게 한 것은 노조 파괴를 막지 못하는 무력감이었다. “병원이 대학이나 일반 건물보다 훨씬 폐쇄적이에요. 노조가 생기고부턴 일반 병동도 출입카드 없이는 못 들어갔죠. 그런 상황에서 권력을 가진 반장이 조합원 한명 한명 불러내서 탈퇴를 요구하니 얼마나 두렵게 느껴졌겠어요. 활동가가 나중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도 그 순간에 조합원들과 같이 대응할 수는 없으니까, 그게 제일 괴로웠죠.”

최 전 차장은 병원이 건 소송에 아직 묶여 있다. 세브란스병원이 2016년 10월 병원장실에 항의 방문한 노조 활동가들을 업무방해 및 주거침입죄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최 전 차장은 1·2심 모두 벌금형을 받아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에게 병원의 노조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부당노동행위 수사·처벌 개선 필요한 이유

노조 파괴를 경험한 이들은 부당노동행위를 전담하는 신속한 수사 체계를 요구한다. 한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지고 회복도 어렵기 때문이다. 2017년 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 전담 수사 조직을 검토한 적도 있으나, 실행하진 않았다. 그 결과 부당노동행위 진정·고소 건수의 8.6%만이 법원의 판단을 받는다.(2022~2024년 3년 평균,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

“청소노동자들이 보통 50대에 노조 가입해서 길어야 정년까지 10여 년 일해요.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노조를 그때 하는 거죠. 그런데 노조 파괴를 입증하고 처벌받기까지 10년 넘게 걸린다면 너무 괴로운 상황일 수밖에 없죠. 노동자가 좀더 사람답게 일하려면 부당노동행위 수사와 처벌 과정에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전 차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