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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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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논리 이겨먹는 사악한 처세술

소심한 악녀의 수상한 상담소 연재 시작
등록 2018-10-13 17:57 수정 2020-05-03 04:29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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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멤버 한 명이 소속사와 갈등 끝에 탈퇴했다는 기사가 났다. 연예기획사가 예술적 감수성 넘치는 성인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니 문제가 생기겠지 싶었는데 친구가 잘라 말한다.

“아유, 걔는 처음부터 너무 튀었어! 그런 애들 딱 질색이야!”

참 맹렬하기도 하다. 내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튀는 게 왜 이토록 싫은 걸까. 내 생각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튄다는 소리 제법 듣는데….’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너 새로 들어왔을 때 다들 너더러 사이코라 그랬어.”

왜 튀었을까, 그게 나였기 때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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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장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뒤늦은 ‘고백’을 한다. 고작 대리 주제에, 점심은 도시락을 싸와서 다 같이 먹는다고 했건만 혼자 나가서 먹겠다고 하지를 않나, 다들 밤 9시 퇴근을 당연시하는데 혼자 정시 퇴근에 어쩌다 야근하면 떡하니 야근수당 신청을 안 하나, 화장품 회사의 홍보담당 직원인 만큼 스타일을 트렌디하게(유행에 맞게) 하라고 했더니 의상비를 지원해달라 하지를 않나,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단다. 그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규칙을 마구잡이로 헤집는 자가 나타났으니 튀어도 한참 튀어 보였을 터다.

나는 하급자가 상급자의 방을 돌며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에 후식까지 챙겨야 끝나는 점심 풍경이 싫었다. 정시 퇴근이나 야근수당 신청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철마다 트렌디한 옷차림을 하는 게 정말 업무 연관성 때문이라면, 컴퓨터와 책상을 지원해주듯 회사에서 지원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당하게 그리한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무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환영받지 못할 일임을 알고 있었다. 항상 망설였고, 뒤통수는 늘 따가웠고, 혼자가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대놓고 조롱하는 일이 흔했다.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스트레스로 배앓이를 달고 살았고, 피부 상태는 전 생애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그런데 왜 그랬느냐고? 그게 나였기 때문이다. 꾹 참고 어떻게든 맞추려 했다면 더 큰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

내게도 어떻게든 순응하고 인정받으려 치열했던 때가 있었다. 남자가 90%인 직장을 다니면서는 스스로를 남성화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성 마초’가 따로 없었겠다 싶다. 계약직으로 일할 때는 연장 심사를 신경 쓰며 필요 이상의 인내를 보이며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감당하려 애썼다. 스스로 일의 중심을 잡으려 하지 않고 상급자의 필요를 먼저 살폈다. 잠깐의 성취는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사라져갔다. 결국 돌아오는 건 나답지 않은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 나를 안쓰럽게 대하는 사람은 있어도 대등한 관계는 맺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런 식으로는 집단에서 인정받기도 쉽지 않지만 설혹 인정받는다 해도 그 모습이 내가 아닌 바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정받든 못 받든 중요하지 않아

실제 많은 노력을 했으나 그들 속에서 나는 끝내 여자였고 계약직원일 뿐이었다. 긴 후회의 시간을 거쳐, 힘들고 아프더라도 용기 내어 나의 걸음을 내디딜 때 나는 훌쩍 자라나고 나다운 나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을 반드시 만난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집단에서 인정을 받든 못 받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나다운 모습으로 성장하자면 집단에 속해 안전을 구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발전은 고정관념과 보편을 해체할 때 가능한데 집단의 규칙은 대체로 견고하게 현재를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행복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 고민이 시작된다. 집단에서 멀어져 혼자 되는 기분을 다스리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상대에게 무작정 맞추려 애쓰는, 지친 나를 마주할 때의 자괴감을 다스리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무엇으로 힘들 것인지를 선택하는 문제라면, 조금이라도 나를 위하는 선택이 낫지 않을까. 그게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길 아닐까.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멀어져간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당신의 세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아무와도 함께 갈 수 없는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저항하고 자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독자적인 것이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주어진 틀을 의심하고 당연하다 믿는 그 너머를 상상하고 도모할 때 인간은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나도 나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잠깐 고독해지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 말한다.

“참는 게 편하면 참아. 그래도 돼. 괜찮아. 그런데 참는 게 힘들면, 그때는 조금만 용기를 내.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하는 일 어떻게 시작할까

‘소심한 악녀의 수상한 상담소’는 집단 속에서 관계 속에서 타인 또는 규율과 부딪치며 겪는 고민을 나누고 ‘나를 위하는’ 해결 방법을 찾는 코너로 운영하려 한다. 마냥 독해져야 한다거나 무조건 싸우자는 이야기를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한다고 늘 통쾌한 결과를 장담할 수도 없다. 나다운 게 무엇인지, 나를 위하는 일은 어떤 것인지, 그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조금 수줍더라도, 그러나 언제나 수상하게.

*상담소 노크: 직장, 학교, 모임 등에서 겪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다면 전자우편(susanghancenter@gmail.com)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윤정연 자유기고가는 정보기술(IT) 분야가 잘나가던 시절에 IT 기업을 다녔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화장품 회사에서 꽃이라 할 수 있는 광고 업무를 했으며, 요즘 선망하는 직업 1위라는 공무원으로, 그것도 꽤나 독립적인 국가기관에서 한참을 근무했다. 22년간 몸담은 직장은 늘 뭔가 ‘진보적’이었는데, 진보적 조직에서도 늘 한술 더 떴다. 진보 지성을 압도하는 진보 감성으로, 다니는 직장마다 조직생활에서 생기는 갖은 사적 민원이 이르는 ‘고충처리위원회’ 노릇을 했다. 조직 관점에선 사악하지만,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조언을 지향한 탓이 아닐까 한다. 온·오프라인, 민간기업과 공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 중심 조직과 여성 중심 조직을 두루 거치며 겪은 다양한 직장생활 경험을 포털사이트 다음 ‘브런치’에 연재해, 2015년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받았다. 2016년 ‘주인의식은 주인만 갖는 거다’라는 막돼먹은 자기계발서로 재단장해 책 를 냈다. 사람들이 책보다 촛불을 들던 때라 잘 안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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