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라며 하는 불쾌한 말, 참아야 할까?”
그럴 리가!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참는 선택을 한다. 분위기상 어쩔 수 없어서, 참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해서, 혹은 참아 버릇해서.
“삼겹살 회식을 한다기에 고기 별로라고 했더니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왜?’ 하는 거 있죠.” 그걸 그냥 듣고 있었느냐며 함께 분개했지만, 며칠 후 같은 사람에게서 “겨울이라고 괜히 스케이트장 가고 그러지 말아요, 얼음 깨져” 하는 말을 듣고도 웃는 그를 봤다. ‘버릇’은 무섭다. 다른 생각 할 여지를 없앤다. 또 그러면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는 대신 조용히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게 만든다. 그리고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웃음으로 넘기게 만든다. 상대가 점점 무례해져도 말이다. 그러니 참지 말고 싸우라고? 아니다. 그보다는 나를 표현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좋고 싫은 것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는 힘.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애써 길러야 하는.
외모, 성별, 학벌, 결혼 여부 같은 것을 두고 부지불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무례한 말들은 대개 하위 직급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싫다는 표현을 하자면 정말이지 힘이 필요하다. 이때 가장 큰 장애물은 결말에 대한 과도한 상상이다. 일이 더 커지면 어떡하지, 괜히 예민하다 소리만 듣는 거 아닌가, 나 때문에 분위기 망쳤다고 찍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다. 영화 시리즈 1편에서 주인공 네오는 기계와 인류의 본격적인 싸움을 앞두고 주저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끝날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어떻게 시작할지를 말하려는 거다.”
맞다. 중요한 건 ‘시작’이다. 막상 결말은 처음 상상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동료 한 명은 걸핏하면 “세상이 뒤집어져서 여자들이 밖에 나와 일을 하고 말이지. 옛날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데”라는 소리를 했다. 농담이라며 하는 이 말에 얼른 화제를 돌려 입을 막을 수도 있을 테고, 요즘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고 부드럽게 제지할 수도 있고, 성차별이라고 엄중하게 항의할 수도 있을 터다. 혹은 과거 여성의 업적을 들어 조목조목 반박할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뭐가 됐든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내 방식대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세상이 뒤집어져서 상놈들이 나랏일을 다 하고요.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데. 그래서 선생님도 공무원 하는 거잖아요. 세상일이 다 그렇죠, 뭐.”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별일 없었다. 그가 더 이상 그런 ‘농담’을 하지 않게 됐다는 거 말고는.
언제나 당당하고 재치 있게 자신을 표현하는 멋진 결말은 치워두자. 그런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참고 넘겨야 하거나 용기가 없어 입을 다물거나, 당황해 아무 말 못하고 덩그러니 남겨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때 상처를 다스리려 애쓰는 대신 다음번엔 어떻게 대처할지 찾아보는 건 어떨까. 참는 건 자의 반 타의 반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지금 필요한 건 결말이 아닌 시작을 위한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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