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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이 있다

성별을 떠나 기회가 온다는 확신을 주라
등록 2019-05-10 14:3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팀장 승진 심사를 앞두고 이번에는 되도록 여성을 뽑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반대를 이기지 못했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문제는 그렇다 쳐도 압박이 큰 업무를 맡아 처리한 경험이나 여러 파트와 협업한 경험이 없다보니 팀장을 맡기기엔 조금 불안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발표가 나자 여성 직원들의 실망이 큰 것 같다.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면 좋을까.”

궁금하다. 그녀는 어쩌다 과장 승진을 앞둘 때까지 압박이 크거나, 혹은 여러 파트와 협업해야 하는 업무를 맡아본 적이 없는 신세인 걸까? 오직 그녀의 선택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 회사의 결정이었을 터다. 그래놓고는 이제 와 경험 타령이다.

또 궁금하다. 경험 없는 여성에게 갖는 ‘불안감’은 쟁쟁한 경력만 대면 해소되는 걸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청문회를 떠올리면 그렇지도 않다. 외교부 요직을 두루 거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의장,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관에 이르는 화려한 경력을 지녔어도 소용없었다. “외교부 장관은 위기관리 능력이 중요한 자린데 불안감이 확 오는 거예요” “외교부 장관은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 “연안여객선 선장으로는 맞을지 모르나 전시에 대비한 항공모함의 함장을 맡길 수는 없다”라는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졌다.

그리고 또 궁금하다. 그러한 편견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그간 남자 직원만이 맡아온 승진 코스의 주요 직무를 내가 맡게 됐다. 그러자 몇 명이 막아섰다. “평시 상황에서 아기자기한 관리는 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시 상황과 같다. 야전사령관 스타일이 필요하다.” 바탕에 깔려 있는 성차별적 인식도, 군사적 비유도, 아기자기하다는 악의적 평도 모두 거슬렀다. 하지만 고정관념은 내게도 있어 스스로에 대한 염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일이 잘 돌아간 것은 반전이라 할 수도 없겠다. 작은 회사 직무 담당 하나 교체하는 게 뭐 그리 부산 떨 일이겠나.

20여 년 전, 기회를 달라고 강하게 주장해 사내 최초로 여성 과장이 된 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내 시빗거리도 안 되는 일에 “그거 봐, 내가 불안하다고 했지?” “안 된다고 했지?” 하는 소리가 나왔고, 간부회의 때마다 집중 타깃이 되어 세상 모든 문제를 만들어내는 사람 취급을 받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그에 비해 ‘전시의 야전사령관 스타일’만이 할 수 있다는 업무를 맡은 ‘아기자기한’ 나를 곱게 내버려둔 걸 보면 세상이 조금 변한 건가 싶기도 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처음에는 불안하다. 그는 괜찮으나 그녀는 불안한 이유를 창작해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우리가 할 일은 성별을 떠나 누구에게나 최대한 많은 기회를 ‘반드시’ 제공하는 것이다. 프로야구 강팀의 2군에서 뛰는 선수는 인터뷰에서 “제게도 반드시 기회가 올 거니까요”라고 말한다. 으레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전문가 분석은 다르다. “자신에게도 반드시 기회가 온다, 이게 정말 무서운 말이거든요. 보통은 쓰는 선수만 계속 쓰니까 2군에 있는 수많은 선수가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프로 생활을 정리하거든요. 근데 이 팀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기회를 준다는 거죠. 그걸 믿게 해주는 팀이 강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팀이 강팀인 거예요.”

동기부여 방법? 간단하다. 성별을 떠나 누구나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팀을, 회사를 그리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개인 사정으로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맺어질 인연을 고대합니다. 그간의 애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윤정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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