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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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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피보다 눈물에 더 잔인해진다

나의 안전을 100% 보장받는 싸움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등록 2018-12-22 14:5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팀장의 비합리적인 업무 방식에 몸살을 앓는 팀원들, 함께 면담 신청을 해 개선을 요구하려 합니다.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팀장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다. 일하다 뜻하지 않게 벌어지는 상황까지도 예측하지 못했다며 신랄하게 질책한다. 사전에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대안이 여럿 있어 문제없다고 보고해도 소용없다. 꼭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나서야 끝이 난다. 한번은 아무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자 ‘우리 문제가 아니라면 상대 업체 문제이니 소송을 걸라’고 한다. 소송해서라도 책임 소재를 묻겠단다. 겨우 수첩 하나 만드는 일로 말이다. 담당 직원은 퇴직까지 고민했고 남 일 같지 않은 팀원들은 이번 기회에 뭐라도 해보자 했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어찌해야 할까.

이른바 ‘싸움의 기술’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싸움’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조직에서 부딪치는 갈등과 문제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고민이 되겠다. 나름의 방법을 제안하면 돌아오는 답은 같다.

“우리 팀장한테는 안 통해요. 우리 팀장이 어떤 사람인데요.”

“그건 우리 회사 분위기를 몰라서 하는 얘기예요.”

“아니, 그 정도까지 할 건 아닌 것 같고….”

이런 상황은 상대가 상급자일 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동료이거나 하급자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랬다가는 걔 난리 날 거”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여기서 말하는 ‘싸움의 기술’이란 ‘100% 나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상대방만 다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런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대체 누가 결과를 보장한단 말인가. 안전을 고민하는 자체가 이미 싸울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긴 대화의 끝에는 언제나 ‘상대는 정말 나쁜 사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만 남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당신은 다른 선택도 할 수 있다.

새로 옮긴 직장 대표는 직원들을 함부로 대했다. 팀장 한 명은 아예 타깃이 돼서 온갖 폭언에 인간적인 모욕을 감수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돌아가며 당하고 있단다. 내 차례도 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는 참을 생각이 없었다. 동료들은 나를 말렸고 뭔가 하더라도 같이 하자며 기다려보라 했다. 사실 나도 딱히 뭘 해야 할지는 계산이 없었다. 하지만 참지 않을 것이고 당장 나부터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상황을 변화시켰던 것 같다.

어쩌다 기분 좋은 대표를 위해 분위기 맞춘다고 억지 웃음을 짓지 않았고 필요 이상의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내게 무례했다 싶은 뒤에는 어디서 마주치든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회의 시간이면 딱 맞은편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보고를 했다. 내가 한 일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변했다. 다니는 동안 대표는 내내 나를 조심스러워했다.

뭔가 해보려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의지가 중요하다.

“적은 피보다 눈물에 더 잔인해집니다.”

어느 사극에 나오는 대사다. 피 흘릴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을 누가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윤정연 자유기고가*조직논리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 불편한 분들은 susanghancenter@gmail.com으로 상담 전자우편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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