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 한 명은 문제가 생기면 항상 다른 사람 핑계를 대고 빠져나간다. 이번에도 뭔가 잘못돼 팀장에게 걱정을 듣더니 갑자기 내게 와서는 왜 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느냐며 마치 나 때문에 잘못된 것인 양 큰소리를 친다. 들은 대로 전했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더니 이래서는 일 못한다며 화내고 가버린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억울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으면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이 상황이 얼마나 화날 만한지를 설명하는 것엔 많은 기운을 쓰면서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적 갈등 해결’ 주제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갈등을 부르는 대화 유형 중 하나로 ‘요청이 빠진 대화’를 꼽는다. 기분 나쁘고 서운하다는 데서 끝나는 대화 말이다. 이는 ‘나 기분 나쁘니까 어떻게 하면 풀릴지 잘 생각해봐!’ 하는 메시지로 오인되기 쉽고 갈등 상황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맞벌이인데 아침 식사를 전담하는 여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참고 참다가 같이 일하는데 혼자 아침 차리고 치우고 출근 준비까지 하려니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남자는 공감하고 위로하며 미안하다고 하지만 다음날 아침 풍경은 어제와 같고 여자는 여전히 힘들고 서운하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 요청을 담아야 한다. “내일부터는 당신이 아침을 차리고 내가 치우는 것으로 하자”처럼 말이다.
그런데 구체적 요청을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원하는 게 뭔지를 알려고 질문을 계속하면 ‘회피’에 가까운 답이 돌아온다. 그냥 잊겠다거나 이번에는 넘어가고 다음에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는 식이다. 왜 이러는 걸까.
요청 이후 맞닥뜨릴지 모를 상황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것 같다. 화나는 것까지는 쉽게 이해받을 수 있는데 요구사항까지 말하고 나면 역으로 내가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민하다고 하지 않을까, 너무 과하다고 하지 않을까, 거절당하면 어떡할까 하는 생각이 앞서고 결국 아무것도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그냥 화가 많은 사람, 혹은 가끔씩 달래주면 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직장에서 누가 나를 한없이 달래주겠는가. 나중에는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전락하기 쉽다.
행사 진행을 같이 하던 동료가 항의하는데 들어보니 내 잘못이었다. 곧바로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동료는 “회의 있어. 내일 다시 얘기해” 하고 일어난다. 다음날도 똑같았다. 수차례 사과 끝의 결론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는 거였다. 내 선택은 행사 준비에서 그를 제외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요청하라. 요청사항을 정리하는 과정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 당신이 걱정하는 일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난다 해도 당신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일 것이다. 감당 못할 어마어마한 일을 만들어낼 정도로 당신이 그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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