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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싸움, 비공식 경기

사사건건 토를 다는 팀원이여, 공식 경기를 찾아 뛰어라
등록 2019-04-19 10:4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어쩌다보니 팀원 한 명과 기싸움을 하게 됐다. 나를 팀장이 아닌 동기 대하듯 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팀 회의를 할 때마다 자기 생각은 다르다는 둥, 윗분들 생각은 그게 아닌 것 같다는 둥 사사건건 토를 달고 시비를 건다. 다른 팀원들 보기도 민망하고 계속 두면 팀 분위기도 안 좋아질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싸움, 정말이지 그들만의 리그다. 이게 한발 떨어져서 보면 별것 아닌데 그 안에서는 엄청 치열하다. 이직한 직장에서 만난 동료 한 명은 계속해서 내게 싸움을 걸어왔다. 같은 직급인데 거래처에는 나를 자신의 하급자인 양 소개했다. 원래 친한 사이라 자기가 하는 게 빠를 것 같아 그랬다며 내 거래처 담당자와 협의하고 결과만 통보하기도 했다. 회의 때면 내 업무를 시시콜콜 평가하며 자신이 선임 역할을 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내비치곤 했다. 이렇게 쓰니 상대가 아주 못된 사람 같고 주변 모두는 내 편에서 분개할 것 같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평온했다. 그의 말이나 태도 하나하나에 민감한 건 나뿐이었다. 우린 서로 왜 그랬던 걸까?

이런 식의 기싸움은 둘의 내공 차이가 크지 않을 때 벌어진다. 경력이나 업무 능력이 비슷한데 함께 있으니 서로를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반응하지만 딱히 실체가 없으니 보이지 않는 기싸움으로 이어진다. 나중에는 멀리서 상대의 목소리가 조금만 크게 들려도 내게 뭔가 과시하려는 의도로 느껴져 화날 지경이 된다. 사감이 쌓이고 모든 일을 상대와 엮어 생각하니 업무 판단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다. “걔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네 할 일 해.” 성의 없게 들리지만 사실 이만한 묘수가 없다. 그저 성실히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니다.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를 신경 쓸 게 아니라, 회사의 업무 처리 구조와 그 속에서 내가 가진 권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나도 마음을 다잡고 상대가 걸어오는 싸움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업무를 분장한 이상 보고할 권한과 책임은 내게 있다. 내가 올리는 보고서인데 그가 협의한 내용만 믿고 작성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고생 많으셨다 하고는 거래처와 처음부터 협의를 시작했다. 거래처도 누구랑 소통해야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추진 상황은 중간중간 문서나 구두로 보고했다. 직장에서 성과는 보고와 결재로 공식화된다. 그가 회의 시간에 백마디를 떠들어도 그것을 공식적인 성과로 가져갈 수 없는 이유다. 나는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기싸움은 비공식 경기다. 공식 경기에서의 기록이 진짜인 것처럼 직장에서도 공식 영역에서 공식적으로 부여된 책임과 권한을 활용하는 게 먼저다. 이때 소통 방법 역시 공식적이어야 한다. 팀원이 비협조적이고 전체 팀워크를 해치는 게 문제라면 중요도가 낮은 업무, 혹은 협업이 필요 없는 업무를 맡겨 팀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할 수 있다. 한두 번 윗분들 생각을 달리 해석할 수는 있어도 공식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결국 공식 통로로 전달한 사항이 신뢰를 얻게 된다. 그래도 의견이 다르면 회의 시간이 아닌 정식 보고와 결재 과정에서 보완을 지시해 차이를 좁힐 수 있다. 비공식 경기에서 힘 뺄 필요 없다. 진짜 경기장을 찾아 뛰는 것, 그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조직 논리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 불편한 분들은 susanghancenter@gmail.com으로 상담 사연을 보내주세요.
윤정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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