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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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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깃발을 든 피의 전사들

생리컵이라는 신세계를 만나 알게 된 나의 몸,

끊임없이 알아가고 돌보며 사랑하기
등록 2018-10-06 18:18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난 너의 버자이너(질)에서 나왔지만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아.”

첫째가 며칠 전 내게 한 말이었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미레나를 끼고 지냈다. 미레나란, 자궁에 끼워놓은 루프에서 호르몬이 흘러나오도록 만든 피임기구로 보통 5년간 쓸 수 있다. 산부인과에 가서 삽입하고 나면 생리량이 급격히 줄고 피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성병 예방은 되지 않는다. 많은 여성이 피임을 위해서도 하지만, 생리의 일상적 불편함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어 택하기도 한다. 내 경우는 미레나 착용 뒤 생리량이 급격히 줄어 생리 자체를 거의 잊고 살았다. 올해가 5년째인 줄 알고 정기검진을 받으면서 빼달라고 했는데, 1년 전에 뺀 것을 며칠 뒤에 알았다. 새것을 끼우기로 했던 예약을 취소하고 한동안 미레나 없이 지내보기로 했다. 이 모든 건 다 뜻이 있어 벌어진 일이리라. 일단 벌어지면 뭐가 됐든 즐기고 본다는 평소 원칙을 따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첫 번째 생리를 맞이하는 순간부터 내 선택을 엄청나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피의 사제들이 축제를 벌이는 기분

생리 이틀째 되는 날은, 후회를 넘어서서 회한의 눈물을 쏟을 지경이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지난 4년간 때를 기다려온 피의 사제들이 마침내 축제를 벌이는 기분이었다. 콸콸,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는 생리혈 양의 장엄함 앞에 나는 압도됐다. 성배를 바치는 기분으로 생리컵이란 걸 처음 써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사온 생리팬티도 혹시 몰라 함께 입었다. 질 안으로 집어넣는 건 유튜브 채널 안내 비디오를 따라 그럭저럭 성공했다. 한층 진보된 여성으로 재탄생한 것 같아 사뭇 자랑스러웠지만, 그마저 잠시, 아랫배가 아파왔다.

생리컵을 잘못 끼운 걸까.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케겔 운동을 하듯 힘을 줘서 안으로 더 밀어넣었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배의 더부룩함은 커져만 갔다. 피가 차고 또 차올라 빵 터지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마저 찾아왔다. 생리컵이 어디 잘못 걸려서 못 나오면 어쩌지? 더 늦기 전에 빼내야 할 것 같아 시도해보니, 손가락이 미끌거려 생리컵 끝을 잡을 수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도움을 청해야 할까? 유튜브 비디오를 소환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에 가야 할까? 첫째 딸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그렇지만 그애가 무슨 수로 나를 돕지? 한동안의 씨름 끝에 생리컵을 빼낼 수는 있었지만, 곤두선 신경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았던 일그러진 얼굴을 펴고 땀범벅인 몸을 가볍게 씻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세를 멈추지 않는 생리의 물결 때문인지 피의 잔향은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기분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간 첫째 딸을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촉박하게 다가왔다. 대충 옷을 새로 갈아입고 향수를 뿌리고 머리를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차를 몰고 달려갔다.

딸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에게 물었다.

“엄마한테 피비린내 안 나니?” “잘 모르겠는데? 무슨 일 있어?”

지난 상황을 집요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딸이 듣더니 한숨부터 푹 쉰다.

“엄마.” “응?”

“온종일 G한테 생리 이야기만 들었거든.” “그래서?”

“근데, 엄마한테도 또 들어야 해?” “G는 왜?”

“오늘 생리 이틀째인데, 그 느낌을 시도 때도 없이 디테일하게 설명한단 말이야.”

“야, 그래도 만약 엄마가 생리컵을 빼지 못해 너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정말 무서웠단 말이야.”

“엄마, 이럴 땐 허그가 필요한 거야”
생리대 대신 생리컵을 사용하며 신세계를 경험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생리대 대신 생리컵을 사용하며 신세계를 경험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엄마! 내가 비록 엄마 질 속에서 나왔지만, 다시 들어가는 일만큼은 사양하고 싶어.”

아이가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우리 둘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생리컵을 빼내기 위해 내 질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 모습이 상상돼서다. 아기로 빠져나왔다가, 엄마 키를 훌쩍 넘어선 소녀가 되어 성배가 아닌 생리컵을 찾아나선 딸아이의 엄마 몸속으로의 여행이라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에서 나온 나를 보고 딸이 품을 연다.

“고생 많았어, 엄마. 이럴 땐 허그가 필요한 거야.”

“그럼, 그럼. 나를 좀 안아줘.”

이제는 나보다 커다래진 딸의 품에 내가 쏙 안겼다. 여전히 말랑말랑한 품인데 넉넉하고 든든하다. 그의 품에 안겨 말했다.

“혹시 가지고 있으면 오버나이트 생리대 좀 줄래?”

“응, 그럴게. 조금만 기다려.”

딸은 나를 자기 방으로 안내하더니 커다란 가방을 꺼냈다.

“자, 이건 깜짝 선물 창고 같은 거야. 우선 눈을 감아. 여기로 손을 집어넣어. 이건 나의 마법의 생리가방이야. 손을 집어넣고 엄마가 원하는 걸 꺼내는 거야. 이 안엔 온갖 생리용품이 다 들어 있거든.”

딸의 지시에 따라 눈을 감고 가방을 뒤졌다. 두툼한 패드 하나가 잡혀서 그대로 꺼냈더니 딸이 내 등을 두드리며 말한다.

“엄마는 참 운이 좋아. 첫 시도에 바로 원하는 걸 얻었잖아.”

생리혈보다 더 센 기세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아이를 키웠던 그 모습 그대로, 아이는 내게 돌려주고 있었다. 아이가 우울할 때면 눈을 감기고 향수를 뿌려주며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의 향이라고 둘러대고는 했다. 사소한 일상의 선택이라도 신나는 모험이라도 되는 양 엉뚱한 이야기를 지어내고는 했다. 아이는 어느덧 자라서 나를 돌보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소녀가 되었다. 나는 일상에서도 두근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살아가고 싶은 채 마흔 중반을 지나가고 있으니까. 내가 자라고 싶었던 모습으로 아이의 삶을 다채롭게 꾸며주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잘 해내진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보람은 확실했다. 나는 딸에게 일방적인 보살핌을 주는 존재가 애초부터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성장했고 서로를 헤아리며 상대를 보살피는 법을 더디게 배워가며 여기까지 왔다.

돌보며 사랑하는 삶으로서의 몸

생리를 또래 친구보다 다소 늦게 시작한 첫째의 가장 친한 친구 G는 생리 때마다 느끼는 기분과 신체의 변화를 세세히 관찰하고 묘사하길 좋아한다. 생리에 관한 넘쳐나는 관심을 최근 미술 숙제에도 반영했다. 미술 수업 시간에 만난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주디 시카고의 (1971)과 (1974~79)에 영감을 받아서 제출한 작품이었다.

은 생리 중인 여성이 성기에서 탐폰을 꺼내는 모습을 담았는데, 피로 물든 탐폰의 붉은색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얼핏 남성의 성기처럼 보이는 이미지다. 공격하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음을 알리는 상징으로 공격받는 자들이 휘날리는 붉은 깃발을, 생리혈에 젖은 탐폰으로 대체한 것이다.

주디 시카고의 또 다른 대표작 는 정삼각형 테이블에 최후의 만찬을 여성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작품이다. 13명의 남성 대신 여성 예술가 39명의 이름이 적힌 냅킨을 놓아두고 39개의 성배와 여성 성기를 상징하는 문양의 접시를 테이블 위에 차려놓았다. 여기서 성배는 예수의 피를 담은 잔이 아니라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G는 의 이미지 위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만찬에 참여하는 자기 모습을 겹쳐놓았다. 양쪽 귀에 피로 흥건히 젖은 탐폰을 귀고리처럼 걸고서. 이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가짜 피로 탐폰을 물들이고 온몸 여기저기에 붉은 물감을 발라야 했다.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자기 몸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G는 엄마인 D의 도움으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함께 작품을 만든 이야기를 전해주는 D의 목소리에는 염려나 귀찮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G의 통쾌하고 재미난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D는 말했다.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 몸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랄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야.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한 고통이나 일방적 불편함에 대해서도 무작정 감수하지 않고 떳떳이 말하고 사회적 대책도 요구하며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의 딸 C와 그의 친구 G의 성장에는 천진함과 성숙함과 그 중간 어딘가의 다양한 탐색이 느슨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자기 몸을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한 신성한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몸을 두고, 생명을 잉태해야 하는 몸이므로 귀하고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소중하고 귀한 이유는 내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지 다른 삶을 담보로 한 조건으로서가 아니다. 그들의 몸은, 생명으로서의 몸, 끊임없이 알아가고 발견하고 돌보며 사랑하는 삶으로서의 몸이다. 수치의 근원도 아니며 숨겨야 할 이야기도 아니다. 보호받을 대상이나 숭배받을 이름다움이 아닌, 독자적인 힘이며 물질이며 움직임이다.

지레 겁먹고 물러서지 않기

우리의 딸들이 자라고 있다. 붉은 깃발을 몸으로 든 피의 전사들로서, 즐겁고 유쾌하고 여유롭게. 그리고 피처럼 찬란하게. 이들의 성장에는 나와 D의 여정도 함께한다. 나는 이제 D의 도움으로 좀더 알맞은 생리컵 사용법을 터득했다. 내 손가락을 내 질 안으로 깊숙이 집어넣는 일은 생각만큼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미리 패닉에 빠져 허둥대지 않으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음에도 나는 생리컵의 존재에 지레 겁먹고 물러섰다. 도움을 청할 수 있다고 느끼고 그에 대해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삶 속 힘이자 위안이 되었다. 그걸 아는 데까지 40년이 더 걸렸다. 해마다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을 때 펼쳐지고 두 번의 출산으로 아이를 끄집어냈던 나의 성기를, 내 스스로 만지고 그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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