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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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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1년, 오래 사는 일이 주는 부록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만큼 야성적인 것이 또 있을까
등록 2019-02-03 01:36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백 살 노인에게 1년은 인생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네 살 아이에게 1년은, 지난 삶에서 4분의 1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같은 1년이라 해도 똑같지 않다. 누구에게는 자기 삶의 25%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1%다. 눈 깜짝할 사이에 1년이 지나갔다고? 그건 그만큼 산 세월이 길다는 이야기고 그 속에서 1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인생의 4분의 1이기도, 100분의 1이기도 한</font></font>

겉으로는 후회 없이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포장 안 된 길의 돌처럼 여기저기 차이는 게 지난날의 후회이다. 별거 아닌 듯 걷어차고 나아가거나 재밌는 발견이라도 되는 양 요리조리 바라보고 굴리고 놀 줄 알아 다행이지만 말이다. 그건 오직, 그 후회들이 결정적이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생긴 거리와 여유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후회할 만한 일들은 예상보다 덜 막강하다. 유감스러운 지난 1년이 예전에는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면,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사소한 파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때 후회했던 일이 더 지나고 보니 그때 안 했으면 더 값비싸게 치렀어야 할 비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 말았으면 했던 일이 훗날 돌아보니 인생에서 재미난 사건이 되기도 했다. 부끄러워 돌아보고도 싶지 않았던 것이 나를 훌쩍 자라나게 했음을 뒤늦게 깨닫기도 했다. 달리 살았으면 어땠을까 했던 시간이 그렇게 살아서 감사한 시간이 됐고, 지난 선택의 결과로서 현재가 숨 막히게 다가오다가도 어쩌면 지금 살아가는 이 모습이 나로서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자기 정당화나, 삶은 계속되니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 치유 기제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이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바로, 내 삶은 지난 후회의 총합보다 더 막강한 무엇이라는 믿음 덕분이다.

이걸 알게 한 것은 살아온 시간이요, 회한까지 다 포함한 경험들이다. 1년을 잘못 보내면 망할 것 같았던 인생이, 4년을 허비한 듯싶었는데 멀쩡히 잘 살아졌음을 안다. 어린 날의 1년은 그토록 어마어마했는데, 마흔 중반에 바라보는 지난 1년은 생각만큼 결정적이지 않았다. 오래 사는 일이 주는 부록 같은 선물이다.

지난겨울 친구의 초대로 미국 서부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Pacific Crest Trail)을 걸어서 완주한 20대 청년들을 만났다. PCT 하이커들이 걸어가야 하는 거리는 4300㎞에 이른다. 길도 험하고 여정에 따라 급변하는 자연조건도 크나큰 변수다. 야생동물 출현이라는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식사와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곳이 거의 없어서, 캠핑으로 대부분의 잠자리를 해결하고 우편으로 받을 수 있는 하이킹 식량에 의존해서 이어가야 하는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

비용 마련부터 장기간 여행을 감당하기 위해, 1년가량의 세월을 삶에서 기꺼이 투자한 하이커들의 모습은 그들만의 특별한 모험담을 꺼내들지 않는다면, 한국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20대들과 언뜻 달라 보이지 않았다. 털어놓는 고민 또한 그러했다. 여전히 세상이 막막하고 인생 곳곳의 선택 앞에서 회의를 느끼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혼란을 느꼈다.

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남과 달랐던 선택이 가져온 여파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고 다시 따라잡기엔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또래 친구들은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저만치 앞장서서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그들이 방황과 발견을 위해 길에 쏟아부었던 1~2년의 세월은 한국 사회에 되돌아오니 어마어마한 공백처럼 느껴졌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고생한 만큼 인생을 전환할 변화나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삶은 천지개벽하듯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한 세상과 비슷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고 오히려 지난 몇 달간의 놀라운 경험이 꿈처럼 아득히 느껴질 뿐이었다. 일상을 수시로 압도하는 무력감은 단번에 바뀌지 않았고 삶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실타래처럼 놓여 있었다. 물론 누군가의 삶은 여행으로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PCT를 걷고 난 뒤 회고록을 써서 미국 전역에 화제가 된 셰릴 스트레이드가 대표적 예이다. 그녀의 책은, 작가 닉 혼비의 각색과 장마르크 발레 감독의 연출, 리스 위더스푼의 연기를 만나 영화 (2014)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면?</font></font>

내 경우는 프랑스 유학의 경험이 알 수 없는 뒷맛을 남겼다. 원하지 않는 과를 부모와 타협해 억지로 갔다는 피해의식은 대학생활 4년을 내내 붙잡았다. 졸업과 함께 도망가듯 프랑스 유학을 선택했다. 무덤에도 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호통 뒤편에는 거두지 못한 기대를 몰래 숨겨두었음을 알고 있었다. 눈물로 공항까지 나를 배웅한 어머니는 세계적 인물이 되어 돌아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때 이미 어렴풋이 예상했다. 부모님의 기대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는 이상 내가 멀쩡하게 되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리고 내 유학 시절은 영화관과 미술관, 각종 강의실을 목적 없이 전전하는 일로 채워졌다. 스무 살을 훌쩍 넘기고도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없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나는 사실 다른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면? 내가 나인 것이 불안하고 어색하고 피로했던 지난날과 다르게 살 수 있기를 원한다면? 내가 그저 나로 조화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면? 유학생활 도중 잠시 한국을 방문한 내게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까지 증명한 게 없으니, 넌 아무런 재능도 없다는 거다.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법조인이 되는 게 나을 거야. 너처럼 재능 없고 평범한 사람이 할 만한 직업 중 그만한 게 없다는 건 너도 알 거다.”

“재능 있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요. 증명하고 싶은 것도 없고요.”

이 대답만 남기고 나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무언가 대면해서 노력하고 이루고 성취해야 할 것 같았는데, 여전히 그 무언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모님의 기대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결혼이라는 다른 수단을 택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낯선 공간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나를 다시 지워내고 새로이 만들어내는 일과 같았다.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차올랐지만, 몇몇 영화제에서 단기간의 활동이나 하다가 그만뒀던 숱한 일들은 이력서를 채우기엔 너무 초라해 보였다. 남들은 차분히 경력 쌓고 줄줄이 학위 딸 때 나는 무얼 했던가.

사람들은 내게 여러 조언을 줬다. 학교에 다시 들어가 더 높은 학력을 쌓으라는 말이 압도적이었지만, 수긍이 가지 않았다. 남들처럼 살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어리석었던 걸까. 도주였든 회피였든 방황이었든, 그 모든 과정이 내 삶이었고 나는 그때의 내 모습 덕택에 지금의 나 자신을 누리고 있다. 또 다른 준비 과정이나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부딪쳐서 배워나가면 된다는 걸 지난 삶이 가르쳐줬으니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되돌릴 수 있다고 할지라도</font></font>

영화 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셰릴 스트레이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만일 내가 후회했다면? 하지만 되돌릴 수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어떤 일도 달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일 그 모든 남자와 자고 싶었더라면? 마약에 취한 삶에서 무언가 배웠다고 한다면? 그 모든 일이 결국 나를 여기에 이르게 했다면? …맨손을 뻗어서 다 만져볼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물 밑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다른 삶과 마찬가지로,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이토록 가깝고 바로 여기 존재하는, 바로 나의 것인 인생이여. 그것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그대로 놓아둘 수 있음은.”

얼마 전 미국 생활에서 오래도록 알고 지낸 지인을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유학생 시절 만난 첫사랑과 결혼해서 학업마저 포기하고 남편을 뒷바라지했지만, 직업적 성공 이후 남편의 정신적 육체적 가해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마흔이 넘어서 이혼하고 이제 만 쉰을 넘긴 그는 10년 전과 비교해 놀랄 만큼 빛나는 생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뒤늦게 그가 겪은 학대와 고통의 시절을 안 부모님의 한탄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내가 고통스럽게 살았던 세월은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삶과 또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라고. 난 무엇보다도 지금 행복하고 또 앞으로 행복하리라 믿고, 또 부모님과 보냈던 어린 시절도 참 좋았다고 말씀드렸어. 현재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니 내 삶을 두고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아달라고 당부도 드렸어. 난 적어도, 나로 잘 지내고 나로 행복하다는 믿음이 있거든.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고.”

그의 말은 내게도 위안이 됐다. 방황하지 않았어도 좋았겠지만, 지난 시절의 방황이 지금의 삶을 더 풍요롭게 바라보게 한다. 이미 지나간 삶은 인정하고 가는 편이 지금의 나를 더 잘 살게 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리석었다면 그로부터 배우면 되고 낭비했다면 치른 대가에 겸허하면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젊음을 낭비할 자신감</font></font>

얼마 전 만난 유명한 역술가가 내 삶을 두고 말했다. 25살에서 30살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혼탁한 시기였다고. 그의 진단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돌이켜보면 가장 자유롭고 가장 재밌게 지낸 시기와 일치했다. 운 좋게도 나에겐 젊음을 낭비하고 누릴 만큼의 자신감이 있었고 그게 나를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다고 믿는다. 남들만큼 살지는 않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잘 살고 있는 내가,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부럽지 않고 그만큼 자유로운 삶, 그게 그리 나쁜가. 지난 삶이든, 눈앞의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만큼 야성적인(와일드, 영화의 제목처럼) 것이 또 있을까? 우리에게는 그리고 모두, 야성의 힘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게 믿는다.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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