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아닌 선택>(디오도어 루빈 지음, 나무생각 펴냄)엔 휴가 때가 되면 꼭 병이 나거나, 싫은 친구들과 같이 가거나, 발목을 삐거나, 하다못해 기후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가서 휴가를 망치는 여자 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분석 과정에서 이 환자는 자신이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기계여야 한다고 믿고 휴가를 가는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육체적 고통, 일의 피로, 자신을 배신하는 인간관계 등을 늘 호소하면서도 절대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쉬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더 나은 상황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면서 분노와 고통의 쳇바퀴를 계속 돌린다. 스스로에게 벌주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미국 정신분석가 디오도어 루빈은 이들을 ‘자기증오의 희생자’라고 부른다.
“우리들 가운데 특별히 심하게 자신을 증오하는 어떤 사람들은 남들에게 물질적으로 피해를 주거나 파괴하고 격분할 만큼 헐뜯는 방식으로 공격함으로써 자신이 확실히 거부당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한다.” 책에서 지적한 이런 자기증오에 기반한 관계맺기 행태는 사물에 대해서도 인생에 대해서도 반복된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엄청난 성공과 부를 얻었지만 여전한 갈증에 시달린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순탄하게 다시 얻었다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무엇을 성취했는지와 상관없이 늘 공허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책의 분석대로라면 “(자기증오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양식을 우리들 자신에게 마련해주기를 거부하고 불가능하고 사치스러운 별미 음식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 울어대는 어린아이로 남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에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루빈은 치유언어의 장인이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말, “사람이란 완전할 필요가 없다. 오늘부터 당장 그대 자신을 좋아하라” 같은 권고를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자기 투쟁이 필요한지도 곳곳에서 강조한다.
“관용을 발동시켜 용감하게 중단하지 않으면 자기증오는 생활이 되어버린다. (…) 우리들은 현실에 굶주렸으며 관용적인 삶만이 우리들에게 현실을 가져다준다.” 자기증오의 해결책으로 관용을 제안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만큼 자존감을 강조하는 최근의 맥락까지 이해된다. 1975년에 출판된 이 책은 자기계발서나 대중적 심리 서적들의 뿌리와도 같다. 그러나 “높은 목표에 대한 욕구를 열심히 경계해야 한다. 성공에 대한 집념은 심한 자기증오와 우울증을 불가피하게 유발한다”는 40년 전 경고는 자유시장주의를 거치며 무시당하고 변질돼버렸다.
남은주 <한겨레>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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