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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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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받아들이라고?

리처드 테일러의 <결혼하면 사랑일까>
등록 2016-03-10 22:45 수정 2020-05-03 04:28

간통죄 폐지 1년, 조강지처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들으니 바야흐로 외도산업이 번성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배우자들의 외도를 추적하고 증거물로 만들기 위한 외도 추적 산업이다. 간통죄가 있을 당시엔 현장을 덮쳐야 했고 성관계 흔적이 있는 증거물을 확보해야 기소가 가능했다. 간통죄를 폐지하면서 대신 법원이 증거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로 바뀌었기 때문에 남편이 모르는 새 부착할 수 있는 위치추적기, 외도 상대(조강지처들의 네트워크에선 보통 ‘상간녀’라고 부른다)와의 대화를 녹음할 수 있는 초소형 녹음기는 물론 지워진 문자와 카톡 메시지를 되살리는 스마트폰 데이터 복구 업체들까지 흥한다.
이토록 세심히 외도 증거를 확보하는 이유는 ‘상간녀’ ‘상간남’을 상대로 위자료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이 모든 과정을 일일이 충고하고 전문적인 처방을 내놓는 컨설턴트도 있다. 연애 상담사부터 변호사 사무장까지 직업도 다양한 그들의 충고에 따르면 이혼을 하든 않든 우선 외도 상대와 헤어지도록 해야 하며 그러려면 상대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불륜에 대해 연구한 (부키 펴냄)는 정반대의 해법을 내놓는다. 외도 컨설턴트나 “당신을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는 데 불륜의 기쁨이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책이나 불륜에 대한 서술은 비슷하다. 외도를 한 번도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컨설턴트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짜릿하고 즐거운 기쁨을 주는 경험”을 끊을 수 있도록 호된 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책은 한 사람의 인격과 다른 소중한 관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힘을 줄이는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규칙은 이렇게 요약된다. 1. 염탐하거나 몰래 뒤를 캐지 말라. 2. 증거를 들이대거나 함정에 빠뜨리지 말라. 3. 상황에서 벗어나 있으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는 혼인의 서약을 배신한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버림받은 사람 입장에선 부정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손에 쥐고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그나마 남은 자존심을 살리는 방법 아닌가? 결국 우리의 결혼관계를 파괴하게 될 제삼자의 침입을 모른 척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은 불륜이 결혼을 망치는 게 아니라 불륜은 실패한 결혼의 징후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의 신뢰를 저버린 것일까? 배신이란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어기는 것이다. 아울러 이 대답에서 정조의 진정한 의미도 찾을 수가 있다.” 그를 사랑하고 주목하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린 그 순간부터 배신은 시작됐다는 것이 요지다.

성적 배신이 남기는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불평등한 결혼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에게 이 말은 외도까지 수용하라는 충고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외도는 지진으로 생긴 단층처럼 부부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진이 지나간 자리에 존경과 사랑을 새로 쌓기 위해선 그 단층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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