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국장님 부장님, 저는 출장 가기 싫어요. 비행기가 무서워요. 발바닥이 땅에 붙어 있을 땐 회사가 더 무서워서 차마 말을 못했어요.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준비를 하면서 공포증도 슬슬 이륙 채비를 하지요.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마비 근접 증상을 체험해야 한 번의 비행이 끝나요. 그러나 ‘공포증’은 어쩐지 나약하고 용기 없는 자들의 지병 같아서 여태껏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어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죠.’
(최재훈 옮김·경계 펴냄)를 쓴 로버트 피스크는 38년 동안 중동 특파원으로 일한 중동 전문 기자다. 이란혁명부터 시리아 내전까지 그의 기자 경력을 설명하는 말 자체가 중동 분쟁의 역사다. 서구 기자로선 유일하게 오사마 빈라덴을 3차례 단독 인터뷰한 기자기도 하다. 그런 그가 특파원 경험을 토대로 중동 상황을 알리기 위해 쓴 책 에서 특별히 한 장을 할애해 ‘비행공포증’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로가 됐다.
로버트 피스크의 비행공포증은 이슬람 혁명 직후 테헤란 공항에서 비상착륙을 경험한 뒤 시작됐다. 내 경우엔 제주도에서 돌아오던 날 비행기가 벼락을 맞고 크게 흔들리면서 시작됐다. 내가 아는 한 방송사 PD는 오지 탐방 프로그램을 맡았던 시절 비행기가 오지에 불시착하고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는 것을 본 뒤 비행기를 탈 때 나와 똑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피스크가 탔던 비행기는 보잉737이고 나는 에어버스321 기종이었다. 비행공포증 환자들은 항공사, 기종, 날씨 등을 기장보다 더 세심하게 조사하고 대비책을 마련한다. 피스크는 비행기를 타면 닥치는 대로 술을 마시는 버릇이 있나본데, 난 주기도문을 외운다. 주기도문 한 번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분30초로 서울에서 제주도를 갈 때는 천천히 30번을 외우면 비행이 끝난다. 소리 내서 외우면 부끄러운 나머지 공포를 잊는 효과도 있다.
교회도 다니지 않는 사람이 비행기만 타면 신을 찾는 행동이 어이없지만 피스크의 말처럼 “금속 튜브 속에 있는 좌석에 사람을 묶어서 시간당 800km 속도로 하늘에 던져버린 뒤 7시간이나 그대로 놔두는 행위”보다 어이없진 않다. “빙판 위엔 절대 착륙할 수 없고 날씨를 거스를 수도 없는 쇳덩어리”를 믿고 비행기 안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보다 어이없진 않다.
피스크가 비행공포증을 치료한 것은 조종사 친구 덕분이라고 한다. 친구는 그를 작은 비행기에 태우고 공포를 달관할 때까지 온갖 종류의 곡예비행을 되풀이했다. 극한적 환경에 던져놓음으로써 사소한 불안을 이기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자칫하면 부작용이 더 큰 아주 무식한 방법이다. 어쨌거나 피스크는 여전히 비행기가 무섭지만 곧 죽을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나는 피스크의 책을 읽은 뒤에 비행기가 무섭다고 솔직히 말하게 됐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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