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메이는 사회학자 아서 프랭크가 자신의 심장마비와 암 경험을 쓴 ‘아픈 몸을 살다’와 영문학자 일레인 스캐리의 ‘고통받는 몸’을 우리말로 옮겼다. 메이의 글은 많지 않았지만, 그의 글을 찾아 읽는 독자는 적지 않았다. 그 또한 질병을 겪으며 고통과 통증에 대한 남다른 언어 감각을 갖고 있음을 독자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복복서가 펴냄)는 메이의 첫 단독 에세이다. 이화여대에서 여성학을 공부한 메이는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완치가 어려운 만성통증을 오래 앓았다. ‘병자-작가’로서 그는 책을 썼다. “진단-치료-회복-일상 귀환으로” 쓰인 “투병기 서사”는 아니다. 작가 자신의 말을 인용하는 편이 가장 정확할 성싶다.
“이 책은 병(condition)이 삶에서 특정한 조건/상황/한계(condition)가 되었을 때 그 안에서 살아가며 배우고 생각한 것을 적은 책이다. ‘아프다는 것을 읽고 쓰기’에 관한 책이다. 말과 고통에 관한 책이다. 고통의 교육에 관한 책이다. 우리를 지상으로 잡아끄는 중력에 관한 책이다. 괴물이고 고통이고 기적인 몸을 산다는 것에 관한 책이다.”(‘이야기를 시작하며’ 가운데)
통증에 관한 자신의 일기, 그간 읽고 모아둔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저자는 통증과 고통에 대해 말걸기를 시도한다. 끔찍한 고통을 겪은 매독 환자 알퐁스 도데는 통증을 묘사할 때 언어의 쓸모없음을 한탄했다. 고통에 시달리던 버지니아 울프는 언어의 빈곤을 탄식했다. 일레인 스캐리는 통증이 말로 표현 불가, 소통 불가라고 주장했다. 반면 유방암을 겪은 앤 보이어는 스캐리의 말을 반박했다. 통증은 언어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평생 건강 문제를 겪은 소설가 힐러리 맨틀은 버지니아 울프를 “여학생이 쓴 것 같은 헛소리구먼”이라고 가혹하게 비평했다. 저자는 이들의 ‘통증 이야기’를 꼼꼼히 ‘수집’했다. 왤까. “통증 환자가 경험하는 소통의 좌절을 개인적인 맥락에서나마 방증하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이 필연적으로 겪는 후회, 자기 의심, 자기검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이 내놓은 고통의 말과 뒤섞이고 그 일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에세이’라는 형식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 젊은 투병인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책과 문장들, 곳곳에 냉소적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고품격 스탠딩코미디 같은 유머가 툭툭 불거진다. 메이의 글은 더 나타나야 하지만, 그의 몸이 허락하는 한이어야 한다. 이 책은 십수 년간 침대와 책상을 오가며 적은 조각난 메모들을 엮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추천사로 “중간에 덮기 어려우니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다면 펼치지 않길 권한다”고 썼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256쪽, 1만68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사계절 펴냄, 1만8천원
별별 작은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 그 아이들과 오늘은 무슨 일로 깔깔 웃게 될까 기대하는 어른.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가 4년 만에 펴낸 에세이. 작가가 일터인 독서교실과 동네 여기저기에서 어린이들과 만나는 장면은 ‘나는 어떤 어른이지?’ 돌아보게 한다. 어린이가 바라보는 세상을 ‘어떤 어른’들이 채운다는 사실이 어른도 자라게 한다.
취하여 텅 빈 산에 누우니
유병례·윤현숙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1만8천원
말술에 시 100편을 술술 읊어대며 인생의 원초적 비애를 승화한 이백, 나라와 백성을 염려해 마신 술이 다시 눈물 되어 흘러나왔다는 두보, 친구와 기울이는 술 한잔으로 위로받았다는 시인 이정보 등이 읊은 주시(酒詩) 100여 수 산책. 세상 모든 술꾼을 위해 유병례 성신여대 명예교수가 제자 윤현숙 교수와 펴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샤를로트 델보 지음, 류재화 옮김, 가망서사 펴냄, 2만5천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나치 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아우슈비츠에 수감됐던 프랑스 극작가 샤를로트 델보(1913~1985)가 살아남은 여성 동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실험적인 형식의 회고록이다. 수송 열차에는 레지스탕스 혐의로 체포된 프랑스 여성 230명이 타고 있었다. 종전 뒤 살아 돌아온 사람은 49명이었다. 델보의 연작 세 권을 한 권으로 합본했다.
몸몸
박서련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1만3천원
‘체공녀 강주룡’ 등을 써온 박서련 작가의 신작.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됐다. 어릴 때부터 뱃살 때문에 숨을 들이쉬어야 했던 낌지. 충동적으로 지흡(지방흡입)을 결심한다. “이제부터는 모든 게 달라질 거야.” 낌지, 무엇이 달라졌을까. 작가는 “몸은 내가 아니지만 나는 몸”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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