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기양양하게 그들의 숨통을 끊어라. 최대한 빨리, 그들에 대한 기억이 지워질 때까지. 그자, 그 가족, 엄마와 아이들까지 없애버려라. 이 짐승(같은 놈)들이 더는 살아 있을 수 없다.”(정지한 승용차 안에서 바깥의 중무장 군인들에게)
#2. “이제 우리가 봐주는 건 없다. (…) 무기를 가진 모든 유대인은 나가서 그들을 죽여야 한다. 만일 이웃에 아랍인인 산다면, 그가 당신 집에 들이닥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놈 집에 먼저 들어가 쏴라. (…) 우리는 대포와 폭탄으로 파괴하고 진격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의 모든 병력을 동원해 완전히 파괴하라. (…) 예언자들이 전한 모든 신탁이 이제 실현되려 한다.”(같은 승용차가 이동 중 차 안에서 셀프 촬영)
2023년 10월11일 이스라엘의 소셜미디어에 짤막한 동영상이 올라왔다. 지독한 증오, 섬뜩한 살의가 번뜩인다. ‘우리’는 이스라엘 유대인, ‘그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이다. 광기 어린 ‘인종청소’를 선동한 인물은 이스라엘 시민 에즈라 야친. 군복과 전투 헬멧 차림에 소총을 들었다. 놀랍게도 95살 초고령 노인이다.
앞서 10월7일 오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 정치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들에 수천 발의 로켓탄을 퍼붓는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지상에선 이스라엘 쪽 접경지역에서 열리던 음악축제 현장을 습격해 민간인 260여 명을 살해하고, 최소 200명을 인질로 납치했다. 희생자와 피랍자에는 음악축제를 즐기던 외국인도 다수 포함됐다.
이스라엘은 즉각 “테러집단 하마스의 궤멸”을 선언하고 대규모 군사반격에 나섰다. 30만 명 규모의 예비군 소집령도 발령했다. 야친은 예비군 동원 대상이 아닌데도 최고령자로 자원했다. 그는 <이스라엘 내셔널 뉴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군의 사기를 북돋고, (내가) 어릴 때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병사들에게 설명해주려 자원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 매체를 비롯해 세계 여러 언론이 노병의 참전 소식을 보도했다. 한국 언론은 천편일률 ‘95살 노인도 조국을 위해 총을 들었다’는 식으로 유대인 애국심 미담을 전하는 데 그쳤다.
무릇 사람이란 나이 들수록 좀더 너그러워지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여유를 두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태도가 생기게 마련이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믿은 ‘나이듦의 미학’은 허상이었나? 인생을 살 만큼 살았고, 언제든 하늘의 부름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노인이 한 말이라곤 믿기지 않는 살기의 근원은 대체 무엇일까? 그토록 모진 정념이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면?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서에 ‘유대인 국가’(Jewish State)를 명시한 건국 과정에서 주변과 얽히고설킨 갈등과 폭력의 흑역사, 그리고 유대인 정체성의 핵심인 유일신 신앙(유대교)과 ‘신에게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배타적 선민의식이 깔린 건 아닐까?
20세기 전반 유럽에서 터진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연합국이던 영국이 유럽 유대인 공동체와 맺은 정치적 거래는 뒷날 이어질 분란의 결정적 씨앗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는 인류의 마음에 빚을 보탰다. 유대인이 오랜 세월 ‘디아스포라’로 떠돌며 핍박받으면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약속의 땅’이 젖과 꿀이 흐르기는커녕 ‘중동의 화약고’가 되길 바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 땅에선 아랍인과 유대인이 이웃사촌으로 잘 지내왔다. 모두가 아랍어를 썼고, 민족 정체성이 서로를 갈라놓지도 않았다. 이런 평화는 20세기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럽의 국민국가 형성과 제국주의 확장의 바람이 팔레스타인에도 불어닥쳤다. 이미 1920년대부터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무력충돌이 빈번해지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의 자본과 아랍인의 도움이 절실했던 영국은 양쪽에 ‘이중 플레이’를 했다. 1917년 아서 밸푸어 외교장관이 영국의 유대인 금융자본가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전후 유대인 국가 건설 지원을 밀약한 ‘밸푸어 선언’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앞서 1915년 영국의 이집트 주재 외교관 헨리 맥마흔이 아라비아반도 메카 지역의 족장 하심 가문의 후사인 빈 알리와 주고받은 편지였다. 종전 뒤 아랍의 민족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대가로 교전국이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대한 아랍인의 반란을 요청했다.
이스라엘 최고령 예비군으로 기록된 야친은 1928년 출생이다. 그가 꼭 스무 살이던 1948년 5월,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으로 무장한 유대 지도자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야친은 그 이전인 열다섯 살 때부터 유대인 민병대 ‘레히’(Lehi)에서 전투원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 영국이 오스만튀르크 영토를 차지해 통치하고 있었다. 열성적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 국가 건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으나, 영국의 태도는 전쟁 당시와 승전 이후가 딴판이었다.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은 준군사조직을 만들어 영국 제국에 대항했다. 영국 식민통치 당국과 아랍인들에 대한 테러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대표 조직이 이르군(Irgun)과 레히였다. 레히는 이르군에서 갈라져 나왔다. 러시아 제국령 폴란드 출신의 시오니스트이자 창설자인 아브라함 슈테른의 이름을 따 ‘슈테른 갱(Stern Gang, 슈테른 패거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영어 단어 ‘스턴(stern)’과 철자가 같아 ‘거친 패거리’라는 중의적 의미로도 읽힌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슈테른은 영국에 맞서 독일 나치와 손잡으려다 실패했고, 1942년 팔레스타인에서 영국 식민당국에 테러리스트 혐의로 총살당했다. 이르군과 레히는 예루살렘의 킹데이비드호텔 폭탄테러(1946년 7월), 팔레스타인 마을을 습격해 100여 명을 살해한 데이르 야신 학살(1948년 4월) 등 숱한 테러를 저질렀다.
이르군 사령관 출신의 메나헴 베긴은 뒷날 이스라엘의 제6대 총리(1977~1983), 레히의 핵심 지도자였던 이츠하크 샤미르는 제7대 총리를 했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도 한때 이르군에 가담했다. 이들의 활동은 통치 세력이나 바깥의 눈에는 ‘잔악한 테러’였지만, 그 자신들에게는 ‘무장 독립투쟁’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독립국을 세운 뒤에는 사정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스라엘 건국이 팔레스타인에는 날벼락 같은 ‘나크바’(재앙)였다. 땅과 집을 빼앗기고 삶터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불법’, 폭력시위나 무장투쟁은 ‘테러’로 낙인찍힌다.
2023년 10월17일 오전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가자지구에 인도주의 위기는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과 정반대였다. 가자지구에는 하마스의 공격 직후 이스라엘이 반격에 나선 첫날부터 연일 보복 공습이 이어졌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부상자와 수습하지 못한 주검들이 널렸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전쟁 발발 열하루째인) 이날까지 가자지구에서 최소 2800명이 살해됐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자지구에서 숨진 사람의 60%가 여성과 어린이”라고 집계했다. 이날 저녁에는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아랍 병원에 폭탄이 떨어져 500명 가까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병원에는 환자와 의료진뿐 아니라 이스라엘 공습을 피하려 찾아든 피란민이 많아 인명 피해가 컸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서로 상대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언제나 그렇듯,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다. 가자지구는 남북으로 약 40㎞, 동서로는 최대 10㎞ 폭의 좁은 땅에 210만 명이 밀집한데다, 사방이 바다(지중해)와 이스라엘의 봉쇄로 꽉 막혔다. 알아흘리 아랍 병원 참사는 인구밀집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예견된 비극이었다.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기습공격이 불을 댕겼다. 특히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비무장 민간인 수백 명을 닥치는 대로 살상하고 납치한 행위는 인도주의뿐 아니라 국제법에 위배되는 심각한 전쟁범죄다. 그러나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과 포격도 정당방위 수준을 한참 넘어선 전쟁범죄다. 팔레스타인 쪽 민간인 희생과 인도주의적 위기의 참상은 훨씬 더 비극적이다. 10월15일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긴급성명을 내어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과 납치는 국제인권법의 명백한 침해다. 그러나 민간인 살해에 대한 대응이 더 많은 민간인 살해일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포위공격은 집단처벌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유대교 경전 <토라>는 기독교 구약성경의 ‘모세 5경’이다. 유대인이 자신들의 유일신 야훼와 맺은 신성한 계약이자 공동체의 율법이었다. 성경을 다른 말로 ‘계약’(영어로 Testament)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 계약과 율법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탓이다. 현실적 해법이 없지는 않다. 1993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합의한 ‘오슬로협정’이 그것이다. 양쪽이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을 토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이 핵심이다. 그러나 당시 합의의 이스라엘 쪽 지도자인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1995년 극우 시오니스트에게 암살당하면서 평화협정 이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이듬해 이스라엘 총선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처음 집권한 이후 지금까지 중간의 10년을 빼곤 줄곧 장기 집권해온 현실도 협정의 진전에 큰 걸림돌이다.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정치적 해법보다 더 이상의 무고한 인명 피해를 막는 일이다. 불과 2주 만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에서 사망자 수만 4천 명을 넘었다. 특히 이스라엘의 반격 이후 사망자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주민이다. 무차별 학살극이나 다름없다. 양쪽이 상대에 대한 무력 사용을 멈추고, 국제사회는 휴전을 중재해야 한다. 15년 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지 취재를 한 적 있다. 양쪽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불신과 갈등은 그전까지 알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그 뒤로도 나아진 건 없다. 그때 이스라엘의 평화운동 시민단체 ‘피스나우’(Peace Now)에서 스티커 하나를 받아와 한겨레 편집국의 한쪽 기둥에 붙여놨다. 펜과 총알이 서로 뾰족한 끝을 맞댄 그림이다. 깊은 슬픔과 분노와 무력감을 다독이며 그 스티커를 다시 본다. 그림의 위아래에는 히브리어로 이렇게 쓰였다. “선택할 때가 왔다! 이제 평화(협상)에 동의하라.”
조일준 <한겨레> 선임기자 iljun@hani.co.kr*호모 미그란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 지식, 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4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호모 미그란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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