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 동부에서 아라비아반도 남쪽으로 코뿔소 뿔처럼 튀어나온 지역은 ‘아프리카의 뿔’로 불린다. 분쟁과 빈곤에 시달리는 소말리아가 뾰족한 ‘ㄱ’자 모양을 차지하고, 에티오피아·케냐·수단·지부티 등이 내륙으로 인접한다. 아프리카의 뿔이 최근 3년 새 극심한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최근 다섯 차례의 우기에 비가 거의 오지 않아서다.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다.
2022년 유엔난민기구(UNHCR) 보고서를 보면, 소말리아에서만 무력충돌과 가뭄 등으로 380만 명이 넘는 국내 실향민과 80만 명의 국외 난민이 생겼다. 670만 명이 식량을 구하려 고군분투한다.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린이가 50만 명이 넘는다. 가축은 수백만 마리가 죽었다. 2023년 5월25일 유엔은 이 지역의 긴급구호 자금으로 24억달러(약 3조1200억원)를 모금했지만, 목표치(70억달러)에는 못 미친다며 기부자들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2023년 4월, 다국적 기후연구 단체인 세계기후특성(WWA)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가뭄이 발생할 확률이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최소 100배나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현재 진행 중인 파괴적인 가뭄은 온실가스 배출의 영향이 없었다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2년은 아프리카 야생동물에게도 최악의 해였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를 눈앞에 둔 2022년 11월, 케냐의 야생동물보호국이 기후변화에 경종을 울리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해 2월부터 11월까지 아홉 달 동안 자국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동물 수백 마리가 죽었다고 했다. 멸종 위기에 놓인 그레비얼룩말 49마리를 포함한 얼룩말 381마리, 코끼리 205마리, 버펄로 51마리, 기린 12마리, 그 밖의 야생동물 512마리가 쓰러졌다. 확인되지 않은 수치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장기간 가뭄에 따른 굶주림과 탈수 탓이다. 어른 코끼리는 하루에 240ℓ의 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러나 말라붙은 강과 물웅덩이에서 생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목마른 야생동물은 물을 찾아 인간 주거 지역을 찾아들다가 변을 당한다.
2022년 9월,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짐바브웨는 야생동물의 대규모 긴급이주 작전을 시행했다. 작전명은 ‘프로젝트 리와일드 잠베지’(Project Rewild Zambezi). 물과 먹이를 찾지 못한 야생동물을 잠베지강 계곡 지역으로 옮겨 개체수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헬리콥터가 수천 마리의 임팔라 떼를 공중에서 몰아가고, 대형 크레인이 코끼리를 거꾸로 매달아 트레일러에 실었다. 다른 동물들은 튼튼한 철제 케이지(우리)에 몰아넣어 트럭에 싣고 호송했다. 약 700㎞에 이르는 대여정이었다. 코끼리 400마리, 임팔라 2000마리, 기린 70마리, 버펄로·영양·얼룩말 각 50마리, 사자 10마리, 들개 10마리를 비롯해 수천 마리의 동물이 현대판 ‘노아의 방주’ 작전으로 새 삶터를 찾았다.
2023년 5월22일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전세계에서 발생한 홍수와 태풍, 가뭄 등 각종 기상이변으로 200만 명이 넘게 숨지고 4조3천억달러(약 5600조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1970년부터 2021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으로 극한적 날씨가 발생하는 빈도와 강도도 커졌다. 기후변화의 재난은 특히 가난한 나라와 지리적 취약 지역에 집중됐다. 기후 관련 사망자 10명 중 9명, 경제적 손실의 60%가 최저 개발국과 작고 가난한 섬나라들에서 발생했다.
부유한 강대국이라고 기후변화 충격이 피해가는 건 아니다. 2023년에도 이미 5월 들어 미국과 유럽, 동남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때 이른 폭염으로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졌다. 캐나다에서는 산불 수백 건이 발생해, 5월 한 달에만 축구장 500만 개 넓이인 270만헥타르(ha)의 산림을 태웠다. 지난 10년 동안 같은 기간의 평균 피해면적(15만ha)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압도적이다.
지구에서 온실가스로 발생한 열의 대부분은 바다가 흡수한다. 바다에 축적된 막대한 열에너지가 방출되는 해수면 온도의 상승은 대기 온도와 기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 최근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적도 부근의 열대 태평양 수온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2023년 여름에 엘니뇨 현상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한국 기상청도 5월 셋째 주 현재 열대 태평양의 엘니뇨·라니냐 감시구역의 평균 해수면 온도가 28.4℃로 평년보다 0.5℃ 높아 6~8월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올여름도 찜통더위와 대형 태풍 같은 기상이변이 예상된다는 뜻이다.
2022년 여름 미국의 해양생물 전문가들은 플로리다주 해안에서 최근 4년간 바다거북의 알이 모두 암컷으로 부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201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연안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 사는 푸른바다거북 개체군의 99%가 암컷으로 태어났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기후변화, 더 정확히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파충류 중 거북과 악어 등 일부 종은 알이 부화할 당시 온도로 성별이 결정된다. 그런데 바다거북이 알을 묻어둔 모래의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극지방의 해빙(바다얼음)이 녹아내리는 현상은 북극곰·펭귄·바다코끼리 등 얼음 위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 재난이다. 이들 모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올랐다. 빙하 녹음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해발고도가 낮은 섬나라와 해안도시들도 위협한다. 동식물이야 국경이 없지만, 인간은 국가 간 경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기후변화 충격이 국내에서 흡수되지 않는다면 국경을 넘는 ‘기후 난민’이 생겨나는 건 불가피하다. 그 규모와 양상이 상상을 뛰어넘는 비극이 될 수도 있다.
2020년 1월, 유엔 인권위원회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에 직면해 피난 온 사람들을 강제로 본국에 되돌려보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 앞서 2013년 키리바시의 한 주민이 “해수면 상승으로 생명의 위협에 처했다”며 뉴질랜드에 난민 신청을 했다. 키리바시는 태평양 적도 부근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2015년 뉴질랜드 대법원은 이 주민의 신청이 ‘난민’의 법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유엔도 이 주민의 기후위협이 당장 임박한 상태는 아니라는 이유로 뉴질랜드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했다. 그러나 유엔은 결정문에 “국가 전체가 물에 잠길 위험이 매우 극단적인 위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런 국가의 삶의 조건은 인간이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와 양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 판결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기후 난민의 위험이 임박했을 경우 강제추방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유엔 기구가 처음 선언했다는 점에서 중대하고도 획기적인 이정표로 평가된다.
지구 생태계에서 기후변화는 거의 모든 생물에 재앙이다. 화석 기록을 보면 4억4300만 년 전 최초의 대멸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다섯 차례 대멸종이 있었다. 가장 최근 사례는 6600만 년 전 공룡을 포함해 모든 생물종의 75%가 절멸한 백악기 말기 대멸종이다. 대멸종은 생물군 개체수의 극적인 감소나 절멸뿐 아니라, 생물종의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다. 대멸종의 원인으로 기후변화, 화산 폭발, 소행성 충돌 등 여러 가설이 있다. 원인에 따라 지구는 꽁꽁 얼어붙은 눈덩이가 되기도,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자욱한 불가마가 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대기 온도와 구성 성분의 급속한 변화는 뭇 생명체의 생존에 치명적이었다.
과학자들은 21세기 현재 인간에 의한 6차 대멸종이 시작된다는 경고까지 내놓는다. 1500년 이후 약 200만 종의 지구 생물 중 15만~26만 종이 사라져 이미 7.5~13%의 멸종이 진행됐고, 그 속도가 가팔라진다는 것이다. 생물종 다양성의 파괴와 지구 자원 활용의 현저한 불균형을 보면 아찔할 정도다. 불과 1만 년 전만 해도 지구상 육상 척추동물의 99.9%가 야생동물이었다. 인간과 가축은 0.1%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과 가축이 97%를 차지한다. 인간이 육지의 70% 이상을 농경, 목축, 도시와 공장 건설로 용도를 바꿨고, 지구 담수의 75%를 쓴다. 그사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화석연료가 내뿜는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했다.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년 만에 벌어진 사태다.
최근 영국과 스페인 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 지속가능성>에 실은 논문에서, 과도한 온실가스를 배출한 선진국들이 2050년까지 170조달러(약 19경5500조원)의 기후보상금을 개발도상국들에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지구 대기를 세계인이 공평하게 나눠쓰는 ‘공유물’로 가정하고, 세계 168개국 인구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기후보상시스템을 설계했다. 그리고 1960년 이후 각국의 ‘탄소 예산’ 사용량을 계산했다. 탄소 예산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이다. 168개국 중 미국(80조달러)을 선두로 러시아·일본·독일·영국 등 67개국이 기후보상금을 내야 하는 나라로 분류됐다. 한국은 2조7천억달러(약 3500조원)로 13번째로 많았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의 주거 가능 지역까지 좁힌다. 2020년 5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는 ‘인류의 기후 틈새의 미래’라는 논문을 실었다. ‘기후 틈새’(Climate Niche)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는 기온인 연평균 섭씨 13~27도가 유지되는 공간을 뜻한다. 연구팀은 지구 기온의 상승폭이 지난 6천 년을 합친 것보다 앞으로 50년 동안 더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사하라사막처럼 인간이 살 수 없을 만큼 뜨거운 지역이 지금은 육지 표면적의 1% 수준이지만 2070년까지 19%까지 넓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인류 3명 중 1명이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번성해온 기후 틈새의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뜻이다. 동물이라고 다를까?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이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생존 경쟁의 결과는 끔찍하다. 지구온난화가 멈추지 않는다면 상황은 갈수록 나빠질 게 뻔하다. 인간에겐 가파른 기후변화를 늦출 선택지와 능력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별로 없다.
조일준 <한겨레> 토요판부 선임기자 iljun@hani.co.kr*호모 미그란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 지식, 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4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호모 미그란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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