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고향 아프리카에는 수천 개의 크고 작은 부족(종족 집단)이 있다. 대개 언어와 혈통, 문화와 거주 지역으로 나뉜다. 베두인, 줄루, 딩카, 후투, 투치, 소말리, 콩고, 피그미, 부시맨 등 뉴스나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명칭도 많다. 그 상당수는 지금도 조상의 땅에서 수백 년 이어온 전통 생활 방식과 정체성을 지키며 살고 있다. 근대 기술 문명이나 자본주의 경제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다. 마사이족도 그렇다. 마사이족은 세계 최대 열곡대인 동아프리카 지구대(Great Rift Valley)의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 생활을 하는 유목민이다. 성인 평균 키가 177㎝의 장신인데다 사자를 사냥할 만큼 용맹한 전사 부족이다. 지금의 탄자니아 북부와 케냐 남부의 국경 지대에 산다.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는 야생동물의 최대 서식처이기도 하다. 대륙 곳곳에 야생동물 보존구역이 지정돼 있다. 세렝게티(탄자니아), 마사이마라(케냐), 크루거(남아프리카공화국), 초베(보츠와나) 등 여러 나라의 국립공원들이 대표적이다. 인간과 동물이 각자의 영역을 두고 공존한다. 그중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는 마사이족의 생활권과 겹친다. 이 지역에서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토착 원주민 마사이족이 야생동물 보호 정책으로 삶터에서 내몰리고 있어서다. 명분과 실리는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자연보전 계획이 외화 수입을 위한 관광 개발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2024년 3월19일 미국 <블룸버그> 뉴스는 탄자니아의 마사이족 유목민 수천 명이 정부의 관광지 개발 계획에 따라 조상의 땅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탄자니아 마사이족 지도자이자 목축 원주민 비정부기구 포럼(PINGOS, 핑고스 포럼) 대표인 에드워드 포로크와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마사이 원주민 강제 퇴거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닥쳤습니다. 우리의 땅이 또다시 사치성 관광, 트로피 사냥, 탄소배출권 거래의 길을 열어주는 위협에 처했습니다.” ‘트로피 사냥’은 오락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사냥한 뒤 사체 일부를 박제해 전리품(트로피)처럼 과시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포로크와 변호사는 최소 2만 명의 마사이 유목민이 정부로부터 확장 사업이 진행 중인 킬리만자로 국제공항 주변 땅에서 집을 떠나라는 퇴거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1월에는 킬리만자로산 인근 지역의 유목민 4만3천 명이 야생동물 통로를 만든다는 구실로 건축과 농작물 재배 금지령을 통보받았다. 졸지에 생계를 위협받고 삶터를 잃을 위기에 놓인 마사이 원주민은 강하게 반발한다. 마사이족, 탄자니아 정부, 외국 관광업체와 자본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갈등이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탄자니아 정부가 관광 개발에 부쩍 힘을 쏟으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2022년 6월에는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지역의 올롤로소콴 마을에서 마사이 원주민과 탄자니아 정부 당국 사이에 폭력 충돌이 벌어졌다. 공원 경비대뿐 아니라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됐고 사상자가 나왔다. 올롤로소콴은 탄자니아 북부에서 케냐와 접한 국경 마을로, 야생동물 사파리 관광지이자 세계 최대의 칼데라(화산 분화구)인 응고롱고로 분화구 인근에 있다. 바로 이곳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오테를로 비즈니스 코퍼레이션(OBC)이라는 민간기업이 자국의 왕족들을 위한 트로피 사냥 관광 사업을 한다. 천혜의 관광 명소가 원주민에게는 날벼락일 뿐이다.
꼭 1년 뒤인 2023년 6월, 국제앰네스티는 ‘탄자니아: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 롤리온도 지역 마사이족의 강제 퇴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2022년 6월 탄자니아 당국의 폭력 사태는 이 지역에서 마사이 원주민을 쫓아내려는 네 번째 시도였다. “2009년, 2013년, 2017년에도 탄자니아 보안 당국은 롤리온도에서 관광 사업과 사냥 허가를 받은 민간 기업의 요원들과 함께 마사이 주민들의 집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구타하고, 고무탄과 실탄을 쏘고, 최루탄을 쏘는 등 잔혹한 폭력을 행사해 4개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시켰다.”
앰네스티는 “탄자니아 정부의 마사이 강제 퇴거 집행은 탄자니아도 가입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ICERD·인종차별협약)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당사국 지침에서 “토착민 구성원이 공공 생활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그들의 권리와 이익에 직결된 결정이 사전 동의 없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다. 앰네스티 보고서의 제목은 고향 땅에서 쫓겨나 케냐의 국경 마을에서 살게 된 69살 할머니의 한탄에서 나왔다. “땅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생계수단이다. 우리는 (강제 퇴거로) 모든 것을 잃었다.”
2023년 12월엔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탄자니아 관광이 마사이족 강제 퇴거를 눈가림하고 있다”며 “관광업은 원주민 공동체의 권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탄자니아 당국이 가축 사육으로 생계를 꾸리는 원주민의 방목을 제한하고 가축이 수원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으며,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비롯한 원주민 접근 제한 구역에서 가축을 방목했다는 이유로 정기적으로 원주민을 구타하고 체포한다”고 비판했다.
마사이족은 자신들의 강제 퇴거를 부추기는 단체 중에는 아랍에미리트의 탄소배출권 거래기업 블루카본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한다. 블루카본은 자연보전 활동 덕에 파괴되지 않은 삼림의 탄소 흡수량을 계산해 아프리카 국가 정부들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산다. 화석연료 기업들은 이를 구매한 분량만큼 탄소 배출 감축 의무를 덜 수 있다. 블루카본의 회장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왕족인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이다. 야생동물을 위해 퇴거를 강요당하는 마사이 원주민 마을이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거래와 왕족과 부자들의 사냥 놀이터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탄자니아 정부 대변인은 <블룸버그>에 “탄자니아 어디에서도 강제 퇴거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마사이족에게 보상금과 신축 가옥, 5에이커(약 2만㎡)의 농지를 제공하는 ‘자발적 이주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18개월 분량의 곡식, 가축에게 먹일 물, 이사를 위한 교통수단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지금까지 1195가구(주민 7378명, 가축 3만3062마리)를 이주시켰으며, 최종 목표는 1만 가구, 11만5천 명의 주민을 이주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탄자니아 정부의 마사이족 강제 퇴거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 계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혹은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탄 이 나라 관광업과 정부 계획으로도 뒷받침된다. 탄자니아의 관광산업은 2019년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의 수렁에서 완전히 회복해 청신호가 켜졌다. 탄자니아 중앙은행의 최신 집계를 보면, 2023년 한 해 탄자니아를 찾은 관광객은 약 181만 명, 외환 수입은 33억7천만달러(약 4조5500억원)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각각 24.3%, 36%나 급증했다. 탄자니아국가비즈니스위원회(TNBC)는 2025~2026년 관광업이 탄자니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탄자니아 정부는 ‘5개년 개발계획(2021/22~2025/26)’에서 2025년까지 관광객 500만 명, 관광 수입 60억달러를 목표로 세웠다. 탄자니아 경제와 투자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하는 ‘탄자니아인베스트’는 2023년의 관광수입 증가세(36%)가 향후 2년 동안 지속한다면 2025년 12월까지 연간 관광수입은 63억달러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마사이족 강제 퇴거 사태에서는 원주민 생존권, 생물 종 다양성 보전, 국가경제 성장이라는,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고 병립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과 대의가 충돌하고 있다. 이른바 ‘보전 난민’(Conservation Refugees)의 역설이다. 보전 난민은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던 지역이 야생 동식물 보존 지구로 지정되면서 강제로 이주당한 원주민을 가리킨다. 이들에게는 대개 따로 지정된 생활 구역이 제공되지만, 대체 주거지가 마련되지 않거나 강제이주를 거부할 경우 난민 캠프에 수용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보전 난민 문제를 ‘착한 사람 대 나쁜 사람’의 갈등 구도로 단정하긴 어렵다. 보전 난민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삶터에서 내몰리긴 하지만 그 타의가 악의가 아니라 선의라는 게 문제다. 미국의 환경 저널리스트 마크 도위가 저서 <보전 난민>(2009)에서 “이 책은 착한 사람 대 착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도 그래서다. 책에는 ‘세계 환경보호와 원주민 사이 100년간의 갈등’이란 부제가 붙었다.
탄자니아 마사이족이 직면한 위협이 꼭 자연 보전이라는 명분 아래 이뤄지는 관광 개발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보전 난민이 생기지 않게 하면서도 동식물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이해 당사자들이 함께 진지하게 모색하는 과정, 불가피할 경우 보전 난민의 발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그리고 강제 퇴거 대상자들과 충분한 대화와 설득을 거친 합의가 부족하다는 점 아닐까? 원치 않는 이주를 감수하는 원주민에게 충분한 경제·교육·복지 등을 제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것은 당연한 보상이지 폭력적 강제 퇴거를 정당화하는 조건일 수는 없다.
마크 도위는 앞의 책에서 “서구 과학자들이 원주민의 전통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원주민은 전통 지식에 현대 생태학 지식을 혼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보호론자와 원주민이 생물 다양성 보존과 문화적 생존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할 때 새롭고 훨씬 더 효과적인 보존 패러다임을 함께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먼저냐, 야생동물이 먼저냐’는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다. 부자와 왕족들이 원주민을 쫓아내고 사파리 관광과 트로피 사냥을 즐기는 곳에서는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도 자유롭지 않다.
조일준 <한겨레> 토요판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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