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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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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하시라”가 헌법인 나라를 아시나요?

인도주의적 비상사태 악화된 민주콩고… 열악한 쉼터에서 시와 춤으로 ‘영혼’ 치유하고 희망을 찾는 난민들
등록 2024-07-19 22:46 수정 2024-07-27 19:06
2024년 6월15일,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접경도시 고마에서 열린 댄스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이 공연하고 있다. 이 지역 반군 단체들의 지속적인 반정부 무장투쟁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 동안 고마 페스티벌은 계속 열렸다. AP 연합뉴스

2024년 6월15일,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접경도시 고마에서 열린 댄스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이 공연하고 있다. 이 지역 반군 단체들의 지속적인 반정부 무장투쟁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 동안 고마 페스티벌은 계속 열렸다. AP 연합뉴스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는 ‘헌법 15조’라는 관용어가 있다. 조문은 이 나라의 공용어인 프랑스어로 “데브루예 부”(débrouillez-vous). 우리말로 “당신 스스로 해결하라” “혼자 알아서 헤쳐가라” “너 자신을 네가 지켜라”라는 뜻이다. 헌법 15조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문을 본 사람도 없다. 가상의 조항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반 ‘콩고 위기’ 때 처음 생겼고, 1970년대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의 독재정권 시절 널리 회자됐다.

 

독재 정권 시절 ‘각자도생’ 풍자한 가상 조항

 

모부투는 1965년 콩고군 최고사령관 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인물이다. 한때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아프리카 민족해방 혁명운동 차원에서 콩고 내전에 참여해 그를 지원했다가 그의 사람됨에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모부투는 1970년 헌법 개정으로 자신의 정당인 대중혁명운동(MPR)을 유일한 합법 정당으로 만들어 장기 독재의 길을 닦았고, 1971년에는 국호를 ‘자이르’로 바꿨다. 1994년 르완다에서 일어난 끔찍한 인종 청소 당시 후투족의 투치족 학살에도 관여했다. 모부투는 1997년 접경국 르완다와 우간다의 지원을 받은 로랑데지레 카빌라에게 축출될 때까지 32년 동안 콩고를 철권통치했다. 자이르라는 국호는 그가 쫓겨난 뒤에야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환원됐다.

헌법 15조는 엄혹한 시절의 경제적 어려움, 범죄와 폭력, 국가의 억압 등에 고통받는 국민이 생존을 위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어떤 조처라도 취해야 하는 상황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상상의 정글 법칙이다. 헌법 15조는 노래로도 풍자됐다. 1985년 콩고의 룸바(즉흥성이 특징인 콩고의 댄스 음악) 가수 페페 칼레가 부른 <아티클 15 베타 리방가>라는 노래에도 나온다. “당신이 젊든 늙든 우리는 모두 같은 현실에 직면해 있어요. 하루하루가 악몽 같은 고단한 삶. 어떻게 할까요? 달리 방법이 없다면 헌법 15조를 참고하세요. ‘킨샤사(민주콩고의 수도)에서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할 일을 하세요.’”

엄밀히 따지면 헌법 15조는 민주콩고의 헌법도 아니다. 1960년 콩고가 벨기에에서 독립한 직후 정치적 격변의 혼란기에 분리주의 반군 세력이 다이아몬드 광산이 풍부한 남부에 ‘사우스 카사이’(남 카사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사우스 카사이는 2년 만에 중앙 정부군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통합됐는데, 이 나라의 헌법 조문이 모두 14개였다. 수천 명이 희생되고 그보다 많은 난민이 발생한 혼란기에 ‘각자도생 생존법’으로 가상의 조항인 헌법 15조가 탄생했다. 사우스 카사이는 단명했지만 헌법 15조는 질기게 살아남았다. 콩고의 비극적인 현대사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민주콩고의 역사는 식민지 지배와 쿠데타, 내전으로 점철됐다.

 

2012년 7월, 르완다의 키게메 난민 캠프에서 한 어린이가 장작을 나르고 있다. 콩고 동부에서 1만 명 넘는 난민이 M23 반군과 콩고 정부군 간의 전투를 피해 이곳에 도착했다. REUTERS 연합뉴스

2012년 7월, 르완다의 키게메 난민 캠프에서 한 어린이가 장작을 나르고 있다. 콩고 동부에서 1만 명 넘는 난민이 M23 반군과 콩고 정부군 간의 전투를 피해 이곳에 도착했다. REUTERS 연합뉴스


천연자원 풍부하지만 최악의 지역분쟁 겪어

 

이해를 돕기 위해 민주콩고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구촌에서 국명에 ‘콩고’를 쓰는 나라는 두 곳이다. 하나는 콩고민주공화국(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다른 하나는 콩고공화국(République du Congo)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한가운데 넓은 지역을 차지한다. 둘을 구별하기 위해 전자는 ‘민주콩고’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두 나라는 19세기 중반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까지 500년간 존속한 콩고 왕국의 뿌리를 공유한다. 프랑스어가 공용어지만 지리, 역사, 정치적으로 전혀 다른 나라다. 민주콩고는 1960년 벨기에 식민지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벨기에령 콩고’로, 콩고공화국은 같은 해 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프랑스령 콩고’로 불렸다. 벨기에 식민지였던 민주콩고가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쓰는 것은 벨기에의 3대 공용어인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 프랑스어가 식민지 시절에 법률·행정·교육·비즈니스 등 공적 생활의 주요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민주콩고 서쪽에 접경한 콩고공화국은 인구 580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로, 국제 뉴스에 잘 나오지 않을 만큼 조용한 편이다. 민주콩고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알제리에 이어 두 번째로 영토가 넓고 인구가 1억 명이 넘는다. 코발트, 구리, 다이아몬드, 목재, 석유 등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자원의 이권을 둘러싼 정부군과 반군의 장기간 내전과 국제 자본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자원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모부투의 32년 독재를 몰아낸 제1차 콩고 내전에 이어 모부투 쪽과 주변국의 반격으로 벌어진 제2차 콩고 내전(1998~2003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지역분쟁이다. 약 540만 명이 목숨을 잃고 2500만 명 넘는 난민과 국내 실향민이 생겨난 것으로 추산된다.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콩고 동부 지역에 거점을 둔 투치족 반군 M23이 2021년부터 공격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콩고 동부에는 120여 개의 무장단체가 이 지역의 금과 천연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대량 학살을 마다하지 않으며 세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2024년 5월에는 수도 킨샤사에서 반군과 외국인 용병이 합세한 무장 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23년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동부 지역에서 전투가 재개되면서 거의 20년 전에 대규모 강제 이주가 시작된 인도주의적 비상사태가 악화했다. 한 해 동안 380만 명이 새로 국내 실향민이 됐고, 2023년 말 기준 670만 명의 국내 실향민이 남아 있다.”

 

부정적인 감정의 관리… 이재민의 슬램 테라피

 

그러나 콩고 난민과 강제 실향민이 절망 속에서 연명에 급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콩고 시민사회와 평범한 시민들은 M23 반군에 의한 인도적 위기에 대응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150만 명의 이재민을 수용하고 난민 캠프에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6월, 전세계 분쟁·재난 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비영리 독립매체 <뉴 휴매니테리언>은 ‘슬램 시와 댄스 쇼: 콩고의 (문화예술) 창작가들은 M23 분쟁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난민 캠프 예술 활동을 소개했다. “콩고의 예술가들도 분쟁 피해자들을 위해 구어 시 낭송회부터 댄스 공연, 아프로비트(아프리카의 토속적인 흥겨운 리듬으로 만든 음악)와 은돔볼로(민주콩고의 댄스 뮤직) 히트곡 공연까지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를 기획해왔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슬램 포임’(Slam Poem) 또는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으로 불리는 시 문학은 참가자가 창작한 자유시를 역동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낭송 퍼포먼스다. 즉흥적으로 문장을 짓고 읊을 수 있으며, 랩 음악처럼 운율을 극적으로 살릴 수도 있다. 재치 있는 언어의 기술과 억양 등에 초점을 맞추는 말하기 예술의 한 장르다.

2024년 5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접경 지대 노르키부(North Kivu)주의 한 마을에서 수십 년간의 폭력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탈출구를 제공하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가르치기 위한 ‘체스 인 더 시티' 프로젝트로 마련된 체스 게임에 앞서 한 난민 어린이가 춤을 추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5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접경 지대 노르키부(North Kivu)주의 한 마을에서 수십 년간의 폭력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탈출구를 제공하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가르치기 위한 ‘체스 인 더 시티' 프로젝트로 마련된 체스 게임에 앞서 한 난민 어린이가 춤을 추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동부 접경지역 도시 고마의 한 난민촌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키부 무용단의 스테파니 음왐바 회장은 “우리는 춤이라는 예술을 영혼을 치유하는 치료법으로 활용하고,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우리 무용단의 춤은 실향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2018년부터 낭송시 시인으로 활동해온 리타 페자 자부리가 하는 ‘슬램 테라피’(슬램을 활용한 치유)에 관한 말도 들어보자. “난민 캠프를 방문하는 여러 단체에서 지원을 제공하지만 정신적·심리적 건강 부분은 지나치고 있습니다. 이재민들은 음식과 쉼터를 얻을 수 있지만, 부정적 감정을 관리하지 못하면 내면에서 계속 고통받고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줄 물과 식량, 방수포 같은 물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심리적 도움은 그들의 삶에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줍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스트레스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효과는 즉각적이고 실질적이었다. 브리지트 나바미(50)는 2024년 2월 전쟁통에 고향을 떠나 12명의 자녀와 함께 난민 캠프에 살고 있다. 슬램 시 경연에 참여한 그는 “방금 이곳에서 보낸 이 짧은 순간이 나를 매우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에 이곳에 오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열악한 환경과 전쟁 전에 얼마나 잘 살았는지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이런 공연을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보고 싶어요.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줬고, 그런 것을 느낀 지가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난민은 정체성 아닌 환경과 조건일 뿐

 

인간은 다양한 면모를 지녔다.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목숨을 빼앗기도 하지만, 한편에선 곤궁에 처한 사람을 조건 없이 돕고 무고한 생명을 구하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도 한다. 선택은 자기 몫이지만 누구라도 자신은 어느 쪽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자기 몫과 기회를 손해 보더라도 타인을 도우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난민에 대한 시선과 태도도 마찬가지다. 유엔난민협약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로 인해 국적국 밖으로 피신한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난민이 되는 이유는 꼭 위 다섯 가지 이유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많다. ‘난민’은 그 사람의 본질적 정체성이 아니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조건일 뿐이다. ‘난민’이라는 호칭은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난민’의 처지가 된 이유를 알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난민에 대해, 나아가 타인에 대해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야 하는 이유다.

 

조일준 토요판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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