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라도 바깥세상의 모든 색깔을 보고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얀마의 평범한 중산층 시민이었던 퓨뇨(30)는 군부의 악명 높은 교도소 두 곳에 19개월 동안 감금됐던 기억을 되살리며 몸을 떨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이 인접국 타이로 망명해 만든 독립매체 <이라와디>와의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다.
“나는 내 꿈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꿈에서조차 감옥을 벗어날 수 없었죠. 꿈도 온통 감옥에 관한 것뿐이었어요. 달아나고, 붙잡히고…. 내 마음도 감옥에 갇힌 것 같았어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2023년 8월 <이라와디>는 ‘미얀마의 여성 정치범들은 지금도 헌신적으로 투쟁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퓨뇨의 이야기를 앞세웠다.
앞서 2021년 2월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한 석 달 전 총선 결과에 불복해 쿠데타를 감행했다. 새 의회가 개원하는 날이었다. 쿠데타 이전까지 퓨뇨는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살던 패션디자이너였다. 남편은 가축농장과 영농기업을 운영했다. 두 사람은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시민불복종운동으로 파업을 벌인 공무원들을 지지했다가 군부에 쫓기게 됐다. 양곤에서 북쪽으로 630㎞나 떨어진 대도시 만달레이로 피신했다. 그러나 2021년 10월 은신처가 발각돼 체포되고 말았다. 군인들은 양곤에 있는 퓨뇨의 패션가게를 폐쇄하고 의류·신발·가방 등 모든 상품도 빼앗았다.
퓨뇨 부부는 만달레이 왕궁터에 있는 군부대로 끌려갔다. 퓨뇨는 “군인들이 ‘널 강간하고 죽여버릴 수도 있어!’라고 소리치며 위협했다”고 돌이켰다. 그런 만행은 실제로 빈번히 자행됐다. 2022년 7월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미얀마 군부대를 탈영해 민주 진영의 시민방위군(PDF)에 합류한 군인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이 투입된 작전 지역에서 상관에게 받았다는 명령은 충격적이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쏴라.” “마을의 반듯한 집은 모두 불태워라.” “(생포한 소녀들을)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다행히 퓨뇨는 성폭행이나 살해는 모면했지만 ‘비밀 서신’을 은닉했을지 모른다는 구실로 치욕적인 알몸 수색을 당했다. 양곤의 교도소에서 그런 짓은 일상적이라고 했다. 그는 2023년 5월 남편과 함께 풀려난 지 넉 달이 지났어도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깨어나서야 담장 밖 현실로 돌아온다”고 했다.
2021년 5월 간호학원생이던 알린은 만달레이에서 평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온몸을 마구 맞아 실신했다. 함께 체포됐던 30명 대다수가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교도소 방은 비좁고 위생은 엉망이었다. 아파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수감자도 나왔다. 사가잉주 출신의 킨와디(27)도 공무원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군인들은 그를 24시간 내내 무릎 꿇리고 두 손을 들게 했다. 손이 내려오면 구타가 쏟아졌다. 물과 음식은 없었다. 그는 1년6개월 복역한 뒤 2022년 11월 풀려났지만, 같은 교도소에 있던 킨마웨 르윈(56)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킨마웨는 민주주의민족동맹 소속 의원이었다. 2020년 총선 때 재선했으나 군부 쿠데타 직후 체포됐다. 교도소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해 뇌졸중과 안면마비가 왔다. 치료는커녕 다른 교도소로 이감된 뒤 한 차례 더 뇌졸중을 겪었다.
<한겨레21>은 또 한 여성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뗏 수 흘라잉. 군부 쿠데타 당시 스물여덟 살의 고등학교 교사였다. <한겨레21>은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과 미얀마 시민이 번갈아 쓰는 ‘연대 메시지’를 연재했다. 흘라잉이 보내온 글은 9월 첫째 주에 ‘시민불복종 참여 교사의 편지’(제1379호)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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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라잉의 글이 실린 지 불과 두 달 뒤, 미얀마 현지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흘라잉이 은신처에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됐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은 ‘뗏 수 흘라잉을 석방하라’(제1387호)는 제목으로 속보를 전했다. 이후 들려온 소식도 가슴 아팠다. 흘라잉은 만달레이에 있는 군부대에서 면회도 금지된 채 혹독한 신문을 받았다. 이듬해인 2022년 7월, 미얀마 군부가 정치범 4명에게 첫 사형을 집행하자 흘라잉은 단식투쟁을 하며 재판을 거부했다. 군부는 피고 없는 궐석재판에서 흘라잉에게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흘라잉은 그 뒤로도 징역 7년형을 받을 수 있는 ‘테러 모의’ 혐의로 추가 기소돼 또 다른 재판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의 여성 정치범 수는 최근 2년 새 급증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의 집계를 보면, 쿠데타 이후 2023년 8월23일까지 반체제 활동으로 체포된 여성은 최소 4883명(누계)이다. 그중 3770여 명은 여전히 감금 중이며, 15명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와 별개로, 602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시기 전체 구금자(1만9895명)의 19%, 사망자(4천 명)와 사형수(101명)의 15%가 여성이다. 그 대다수는 직장인, 학생, 자영업자, 전업주부로 단란한 삶을 누리던 시민이었다. 군부의 쿠데타와 끔찍한 폭력은 평범한 여성들까지 민주화운동 투사로 바꿔놨다. 미얀마 민주화 진영과 시민들은 군부에 맞선 저항과 무장투쟁을 ‘봄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라와디>는 “여성 정치범들은 끔찍하고 충격적인 경험에도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혁명의 최전선에 있는 다른 여성들과 합류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보건·기타 부문의 여성 공무원들도 군사정권에서 복무하는 걸 거부하고 시민불복종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군부에 맞서 무장투쟁에 나선 남성 동지들과 함께 싸우는 수많은 여성 전사는 말할 것도 없다”고도 했다. 2021년 11월 미얀마 시민방위군 대원 꺼나웅(가명)은 <한겨레21>에 보내온 연대 편지 ‘미얀마의 뮬란, 여성 혁명전사들’(제1392호)에서 “사가잉주 먀웅 지역에서 미얀마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원으로만 이뤄진 유격대가 창설됐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퓨뇨와 알린은 먼저 출소한 시민들이 구금 중인 정치범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정치범 네트워크-미얀마'에 가입했다. 여성 수감자들에게 의약품과 돈을 보내고 안부를 확인한다. 킨와디는 군부의 공격과 방화로 삶터를 떠난 난민을 위한 기금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우리는 이 혁명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우리가 승리해야만 모든 정치범이 석방될 것이므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혁명에 기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민족 국가인 미얀마의 국민과 여러 민족은 쿠데타 직후 역사적 갈등을 접어두고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의 깃발 아래 2년 반이 넘도록 끈질긴 저항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정치·경제·군사·외교의 모든 실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민주화 진영에 대한 폭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군사정권은 최근 ‘국가비상사태’를 6개월 연장했다. 벌써 세 번째다. 2023년 8월 치르겠다던 총선은 무산됐다. 연내 총선 가능성도 희박하다. 8888항쟁(1988년 8월8일 미얀마 전역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 35주년을 맞은 2023년 8월, 미얀마 주요 도시에선 군부가 삼엄한 감시와 경계를 펼쳤다. 젊은이들은 숫자 ‘8’을 적은 우산을 들거나,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구호를 적은 펼침막을 들고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군부와 민주화 진영의 대립에 결정적 전환점이 없는 교착상태가 길어지면서, 국제사회와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2023년 9월21일 오후 한국 국회에선 ‘미얀마 봄의 혁명, 어디까지 왔나’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성공회대 아시아엔지오정보센터(소장 박은홍 교수)와 고영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주관했다. 미얀마 아동문학가 져른은 ‘시민불복종운동의 현재와 전망’이란 주제 발표에서 “무장투쟁 대신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도피 생활을 하면서 군부와 계속 싸운다. 납세 거부 운동, 군부와 관련된 기업의 생산품 보이콧 같은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을 떠나지 못하지만 봄의 혁명을 몰래 지지하는 공무원도 많은데, 우리는 그들을 ‘파예띠’(수박)라고 부른다. 군부 정당의 상징색이 녹색, 민주주의민족동맹의 정당 색깔이 빨간색이어서다. 그들은 군부의 비밀 계획을 몰래 알려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선 져른 외에도 에이에이띤(서울대 박사 과정 수료)이 ‘땃마도(미얀마 군부)와 불교’, 웨노에(연세대 박사과정 수료)가 ‘땃마도의 주술정치’, 장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땃마도의 외교’, 김예린 성공회대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 대표가 ‘연방 민주주의 사례와 미얀마의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진 토론에선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와 한국 체류 미얀마 국적자들의 보호와 난민 지위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미얀마 국민은 한국에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 케이(K)팝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시민사회가 긴 세월 군부독재 정권과 피 흘려 싸우며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성취한 현대사에 공감하며, 그게 미얀마의 역할모델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가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긴급식량 비스킷 보급을 지원하는 등 한국 시민단체의 연대 활동도 활발하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진정한 의미의 ‘가치외교’와 ‘국제연대’는 무엇일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바로 지금, 정치적 상상력과 과감한 실천이 필요하다.
조일준 <한겨레> 선임기자 iljun@hani.co.kr
*호모 미그란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 지식, 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4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호모 미그란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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