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한겨레21 류석우 기자가 쿠팡 주간배송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심야배송 이틀차, 새벽 5시쯤 남겨놓은 메모에 이렇게 썼다. ‘등이 쑤시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이상한 통증이었다. 등 중앙에서 오른쪽 위 방향이 콕콕 찌르듯 쑤셨다. 처음 통증을 느껴본 신체 부위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을 썼으니 당연한 통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등 통증이 점차 심해졌다. 특정 자세를 취할 때 드문드문 오던 통증이 더 자주, 더 길게 왔다. 등 통증이 올 때면 가슴도 답답했고, 소화도 잘되지 않았다. 몸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느껴지는 통증의 원인이 등에서 시작된 것만 같았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고 싶었다. 통증에 대한 부족한 정보는 불안을 키웠다.
나는 도망갈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하겠다고 말하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쿠팡의 택배기사들은 고작 ‘등 통증’ 정도로 도망갈 수 없다. 당장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통증이 아니면 그들은 쏟아지는 물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쿠팡의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주간배송을 함께한 택배기사는 내 고민을 한마디로 잠재웠다. “당연한 거죠. 저도 등 많이 아파요. 어깨도 허리도 그냥 매일 아파요. 계속 물건을 든 상태로 움직이니까, 택배기사 중에 등 아픈 사람이 많아요.” 그는 대신 “아프면 참지 말라”며 진통제를 건넸다. 약을 먹고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망을 고민했던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도망가고 있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지도 모르고 계속 달렸다. 뛸수록 포위망은 좁혀왔지만, 끝내 나를 쫓던 사람들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2주간의 체험을 마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에 가는 거였다. 월요일 오전 9시,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정형외과 의사는 무릎과 발목의 힘줄이 많이 부어 있다고 했다. 당분간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정형외과에서 나온 뒤 곧바로 내과로 향했다. 엑스레이(X-ray) 검사와 초음파 검사까지 진행한 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얘길 듣고 나서야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이 사라졌다.
쿠팡 택배기사로 일하며 고강도 노동에 따른 피로와 관절의 통증보다 힘들었던 건 돌이킬 수 없는 건강상태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었다. 나는 고작 2주였다. 많은 택배기사가 이런저런 통증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 아플 땐 쉬어야 한다. 이 간단한 상식이 쿠팡 안에선 외면당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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