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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발렌타인! 죽어도 자본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민중가수

등록 2026-03-10 17:48 수정 2026-03-10 17:55
영화 ‘오, 발렌타인’의 가수 우창수씨 모습. ‘시네마 달’ 제공

영화 ‘오, 발렌타인’의 가수 우창수씨 모습. ‘시네마 달’ 제공


2026년 3월11일 다큐멘터리영화 ‘오, 발렌타인’(감독 홍진훤, 배급 ‘시네마 달’)이 개봉한다. 탄탄한 플롯뿐 아니라 실험적 미학의 성취도 돋보인다는 평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밸런타인데이였던 2004년 2월14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씨의 분신자살이 모티브다. 그는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산화했다.

영화의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이다. 당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초대 지회장이던 시인 조성웅씨와 현대중공업 노래패 강사이던 민중가수 우창수씨다. 투쟁에서 패배한 뒤 감옥에 다녀온 시인은 강원도 화천 산골로 들어갔고, 민중가수는 그보다 몇 해 뒤 우포늪을 낀 경남 창녕 마을로 귀촌했다. 홍진훤 감독은 집요하게 두 사람의 사유를 좇았고, ‘죽어도 자본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위태로움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았다. 3월3일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우창수(사진)씨와 얘기를 나눴다.

―영화를 보면 당시 정규직 노조가 투쟁을 교란하고, 심지어 고인의 장례식장에 난입해 행패를 부린 것으로 나온다.

“그들은 고인에게 ‘열사’ 호칭을 붙이는 것도 거부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90년 골리앗 투쟁의 상징인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어떻게 자본과 타협하며 관료주의적으로 변해갔는지 가까이서 지켜봤다. 현장의 투쟁과 변화 요구를 오히려 짓누르기도 했다. ‘자본주의와 화해’한 셈이다. 내가 연대하고 노래해오던 공간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봤기에 더 아팠다.”

―고인과 어떤 관계였나.

“분신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조성웅 시인과는 투쟁 현장뿐 아니라 각별히 노동자 글쓰기 모임인 ‘해방글터’에서 만나 그의 시에 곡을 붙이며 친밀해졌는데, 그한테서 고인의 삶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고인은 기타리스트였다. 그 시절 대다수 기타리스트는 음악인의 꿈을 품은 채 나이트클럽 같은 데서 취객에게 모욕당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인공처럼 살았다. 고인은 청소년이 된 딸에게 밤무대 연주자가 아닌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선소에 들어왔다. 그러나 부당한 현실과 맞닥뜨려 항거하다 끝내 한 점 불꽃이 됐다. 나도 일찍 결혼하고 아이가 있었다면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첫 음반에 ‘나는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된 기타리스트를 안다’고 썼다.”

―시인은 산속으로, 가수는 늪가로 갔다.

“조 시인은 자기 결로 성찰한 다음, 땅의 힘을 배우기 위해 갔을 거다. 나도 내 운동을 돌아봤고, 자연과 생태에서 배우기 위해 늪가로 왔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관옥 이현주 목사의 ‘노자 이야기’에서 ‘예수도 붓다도 누군가에게 배웠을 건데, 아마 자연이 아닐까’ 하며 두 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날 팬데믹과 기후위기에서 그분들의 말씀을 본다.”

―노동운동과는 절연한 건가.

“지금도 조선소 하청노동자가 된 기타리스트의 꿈과 내 꿈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령 각자의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착취 구조를 바꾸기 위한 혁명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가 타임머신 타고 오늘로 온다면 ‘공장에서 텃밭을 하자’고 하지 않았을까.”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가.

“같이 음악 하는 아내와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을 15년째 꾸려오고 있다. 초등학생 벗들과 함께 노래를 짓고 부르며 세상과 만나고 있다. 어린이는 어른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듣는다. 어린이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한다. 그걸 노래로 만들어 부른다. 미얀마 민중에 대해서도, 내성천 제비에 대해서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싸움에 대해서도 노래를 만들어 공연한다.”

그는 8살 아이가 쓰고 자신이 곡을 붙인 노랫말을 전자우편으로 보내왔다.

“나는 부전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한겨레21에 애정 어린 비판을 해달라.

“소수자들의 외침을 끈질기게 보도하는 돋보기다. 인공지능(AI)이 기사를 쓸 거라는 얘기가 들린다. 사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정서적 시각을 믿는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건 한겨레21 구성원의 몫이다. 응원한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댜큐멘터리 영화 ‘오, 발렌타인’ 포스터. ‘시네마 달’ 제공

댜큐멘터리 영화 ‘오, 발렌타인’ 포스터. ‘시네마 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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