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석우 기자가 쿠팡 프레시백을 들고 서울 송파구의 한 골목을 뛰어가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처음 화장실 신호가 왔던 건 트럭에서 아파트에 배송할 물건을 꺼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두 동짜리 작은 아파트에 배송할 물건은 50여 개. 라인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물건을 배송하려면 초보자인 저는 약 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것만 얼른 하고 화장실 다녀오자’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생각과 달리 끊임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배송을 멈추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급기야 머릿속에선 ‘이것만 다 마치고 가자, 조금만 더 참는 게 효율적이겠다’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발걸음은 빨라졌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다섯 번씩 연타했습니다. 쿠팡 배송 11일차, 저는 스스로 ‘효율’만 생각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류석우 기자가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쿠팡의 프레시백을 회수한 뒤 건물을 나오고 있다. 아직 배송을 기다리는 물품이 끌개에 가득하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제1592호와 제1593호 표지이야기를 통해 전해드린 쿠팡 택배노동 14일 ‘뒤틀린 몸의 기록’은 이른바 ‘새벽배송’ 논쟁을 두고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이 사안을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미 많은 보도로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힘들다는 건 알려져 있었습니다. 심야배송을 하는 택배기사들의 건강에 대한 설문이나 실태조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직접 택배기사의 혈압이나 피부온도, 맥박 등을 측정한 연구나 조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은 신체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차고 2주 동안 일해보기로 했습니다. 직접 일하면서 쿠팡의 어떤 시스템이 택배기사들을 옥죄고 있는지 파고들고 싶었습니다.
다만 쿠팡의 택배기사는 아무런 조건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쿠팡의 배송 물량 대부분은 쿠팡이 배송 업무를 위탁한 대리점과 계약한 ‘퀵플렉서’가 담당합니다. 퀵플렉서가 되려면 화물운송자격증과 1t 트럭 같은 화물운송이 가능한 차량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일명 ‘배’번호판을 발급받고, 개인사업자 등록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을 며칠 안에 충족하기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동행 가능한 택배기사를 찾았습니다. 일부 물량이 많은 지역에선 두 명이 같이 배송하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하기도 하고, 퀵플렉서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합니다. 저는 물량이 많은 지역의 퀵플렉서를 섭외해 돈을 받지 않고 함께 일하는 식으로 참여했습니다.(실제 제가 배송한 물품의 단가를 계산하면 2주간 150만원 정도 됩니다.) 대신 동행한 퀵플렉서들도 24시간 활동혈압계와 수면을 기록하는 액티그래프, 체온을 측정하는 바이탈링을 차고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심야배송 첫날, 육체적 고통보다 먼저 찾아온 건 두려움이었습니다. 심야배송 구역의 대부분은 빌라였습니다. 어두운 밤, 물건을 들고 향한 건물에서 가장 먼저 사용된 감각은 후각이었습니다. 모든 건물에서 나는 고유한 냄새가 달랐습니다. 어떤 곳은 섬유유연제 향이, 어떤 곳은 음식 냄새가, 어떤 곳은 집 앞에 내놓은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가 가득했습니다. 어떤 건물은 강력한 페인트 냄새 같으면서도 홍어 삭힌 냄새가 합쳐진 듯한, 태어나서 처음 맡아본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를 맡았을 땐 몸이 뻣뻣하게 굳었습니다.
센서등이 켜지면 시각 정보가 들어옵니다. 빌라는 대부분 비슷한 구조였지만, 디테일은 달랐습니다. 어떤 곳은 환했지만, 어떤 건물은 내부등이 켜지지 않아 휴대전화 불빛으로 비춰야 했습니다. 통로가 좁고 낡은 곳이 있는가 하면, 깔끔한 곳도 있었습니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곳은 어느 낡은 빌라였습니다. 모든 현관문이 난도질한 듯한, 다양한 상처들로 가득했습니다. 선뜻 복도 안쪽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한 택배기사 김호준(43·가명)은 이런 빌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녔습니다.
첫날 그에게 무섭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어요, 배송하기 바빠서.” 그의 말을 이해한 건 3일 정도 지나서부터였습니다. 점차 두려움은 사라지고 후각이나 시각 정보보다 배송 정보가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건물에선 무조건 꼭대기 층에 사는 사람이 많이 주문한다든지, 저 건물은 주차장 출입구로 들어가는 게 더 빠르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처음 쿠팡이 택배기사들을 직고용했을 때는 기사가 한 지역을 고정적으로 맡아 배송하는 구조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배송할 때마다 지역의 특성을 새로 익혀야 합니다. 그건 곧 ‘비효율’과 연결되지요. 많이 알고 익숙한 지역에서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배송할 수 있습니다. 쿠팡도 어느 시점부터 이런 상황을 파악했던 것 같습니다. 택배기사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려면 지역을 고정적으로 맡게 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죠.

류석우 기자가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물품을 배송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이렇게 하면 효율이 안 나와요.”
일하면서 택배기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효율”이었습니다. 기사들은 물건을 분류할 때도, 차에 실을 때도, 배송할 때도, 캠프로 돌아올 때도 오로지 효율만 고민했습니다. 그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배송할 수 있는 동선을 짜는가. 이것이 퀵플렉서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자유였습니다.
택배기사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쿠팡의 시스템이었습니다. 쿠팡은 일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바꿔가며 더 효율적인 방식을 찾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비대면’입니다.
쿠팡의 배송 부문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쿠팡은 당시 비대면 방식의 배송이 물건을 하나라도 더 많이 배달할 수 있는 핵심 장치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고객과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는 비대면 배송은 다른 택배사에선 하지 않는 쿠팡만의 방식입니다. 저 역시 배송하는 2주 동안 고객과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간혹 ‘배송 요청 사항’에 ‘직접 전해달라’는 고객이 있었지만, 쿠팡의 주간 택배기사 문지훈(46·가명)은 “그냥 문 앞에 두면 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고객과의 연락은 본사의 별도 부서에서 하거든요. 그거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는 사진만 찍어서 올리면 돼요.”
쿠팡은 택배기사들을 진상 고객으로부터 보호하고 배송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고객 접촉을 막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느꼈던 ‘배송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이란 말은 곧 ‘마감 시간 안에 더 많은 물건을 배송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주간배송을 할 때 우연히 한진 택배기사 신종훈(30·가명)을 만났습니다. 그는 쿠팡에서 6년 동안 일하다가 마감과 다회전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워 2024년 한진으로 이직했습니다. 그는 쿠팡에서 일할 때, 저녁 8시까지 신선식품을 마감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신선식품을 먼저 마감하고 다시 돌아가 일반 물품을 배달하는 ‘자체 3회전’을 매일 해야 했습니다. 그에게 지금은 작업 상황이 어떠냐고 묻자 이런 말이 돌아왔습니다.
“여기는 일단 마감 시간이 없어요. 신선식품도 조금 늦을 것 같으면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면 고객분들이 대부분 이해해주시더라고요. 쿠팡은 모든 게 비대면이에요. (이해해주는 고객이 있어도) 전화 자체를 할 수가 없잖아요.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저는 여기 방식이 좀 나은 거 같아요.”

류석우 기자가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배송할 물품을 끌고 걸어가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심야배송을 선택한 택배기사들은 주간배송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사람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을 꼽습니다. 비대면 배송이어도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고요. 심야배송을 먼저 일주일 경험한 뒤 주간배송에 나선 저는 이 말의 뜻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주간배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심야배송 지역에 없던 아파트가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계단을 뛰어 오르내릴 일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부터 차근차근 내려오면 되겠다고만 생각했거든요. 착각이었습니다.
택배기사들은 대부분 층마다 완전히 내리지 않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물건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가장 위층 배송지부터 엘리베이터를 잡고 여러 집을 배송하면서 내려오기 때문에 주민들 입장에선 엘리베이터를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5개층 정도를 들렀다가 1층에 왔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주민들의 표정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어졌습니다. 간혹 주민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층마다 서기 어려워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아파트에 배송할 때면 늘 주민들과 마주치기가 꺼려졌습니다. 죄지은 듯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습니다.
낮에 만나는 주민들에게 택배기사는 ‘불청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택배를 이용하지만, 택배와 관련이 없다는 듯 살아갑니다. 문지훈은 절대 주차를 허락하지 않는 빌라 주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너무 뭐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차를 멀리 대고 갔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우리가 유령이 시킨 걸 배달하는 게 아니잖아요. 고객이 시킨 걸 갖다드리는데 앞에 주차도 잠시 못하면 어떻게 배송할까요.”
한 상가 엘리베이터엔 ‘택배 및 화물 탑승 금지’라고 쓰여 있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삶에 택배기사가 들어오거나 방해받지 않기 원하면서도 아침에 문을 열면 마법처럼 물건이 문 앞에 있길 원합니다. 이런 문화가 쌓여 택배기사가 심야배송을 ‘선택’하는 배경이 됩니다.
체험 시작 전, 사전 취재 단계에서 도움을 준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배송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존중이 없어요. (심야배송이) 소득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가 기피하는 노동이기 때문에 (택배기사들이) 스스로 기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필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없다는 게 심야배송을 선택하는) 숨어 있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렇게 이왕 일하시는 김에 이것도 한번 보고 가세요.”
심야배송 마지막 날, 박창수(44·가명)가 다가와 기자를 잡고 캠프 구석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현재는 심야배송을 하고 있는 퀵플렉서입니다. 그가 데려간 곳엔 물품이 담긴 롤테이너(대형 끌개)가 수십 개 있었습니다. “이게 오늘 하루 들어온 반품이거든요. 이거 다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다 폐기해요.” 하루 동안만 쌓인 반품은 학교 교실 하나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서울 장지동 동남권 물류단지 안에 있는 송파○캠프 구석에 하루치 반품이 쌓여 있다. 이 물품들은 폐기되거나 재판매된다. 소비자(와우 멤버십 회원)는 반품이 무료지만, 그 비용은 판매자가 부담한다. 류석우 기자
이 반품은 다 어떻게 처리될까요. 쿠팡에선 폐기하는 것도 있고 재판매하는 것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폐기든 재판매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대부분 판매자가 부담합니다. 저는 배송 시스템을 주로 취재했지만, 쿠팡의 시스템은 배송뿐 아니라 대부분의 영역에서 하나의 원칙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용을 줄이고 부담은 외부로 전가한다.’
쿠팡이 추구하는 시스템은 세상 모든 물건을 쿠팡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어디서든 가장 빠르게 받아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쿠팡은 초기 손해를 감수하고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택배기사와 판매자, 소비자를 쿠팡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자, 이제 쿠팡의 전략이 조금 그려지시나요? 처음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좋은 조건으로 유인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조금씩 부담을 전가합니다. 택배기사와 판매자는 이미 그 부담을 많이 떠안고 있습니다. 이제는 처음과 조건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지만, 그동안 쿠팡에 의지하며 생존해온 길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소비자는 어떨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택배기사들과 판매자들은 입을 모아 쿠팡은 고객 최우선 기업이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기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쿠팡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뒤에도 고객 최우선 정책을 펼까요?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응하는 쿠팡의 태도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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