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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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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시민이 산다, 퇴출보다 필요한 것은

등록 2025-11-08 07:41 수정 2025-11-12 11:28

공간은 사람이 만듭니다. 사람이 만든 공간은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 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다시 사람을 지배합니다. 한국 사회가 ‘반지하’라는 공간을 만든 이유는 누군가는 거기 살아야만 한다는, 아니 살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 이해의 반영입니다. 여전히 거기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이 취재하며 만난 반지하 거주자들은 가난하지만 악착같이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대체로 좁고 어둡습니다. 구체적 기준으로 안전 문제를 따질 필요도 없이 그 입구들에서 이미 반지하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납니다. 햇빛은 언제나 창문 위로만 걸리고, 낮에도 불을 켜야 합니다. 창문으로는 사람들의 발목이나 자동차 바퀴만 간신히 걸립니다. 무엇보다 비가 오면 그 창문은 재해의 입구가 됩니다. 반지하의 어둠은 물리적 위치 문제가 아니라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어느 사회나 ‘집’을 둘러싼 위계는 존재합니다. 집은 계급이고, 그 계급은 경계를 만듭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반지하 거주민은 반지하에 산다고 하면 다르게 볼 것 같아 아무에게도 집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소외, 열등감, 무시, 무력감을 안고 있습니다. 반지하에 산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낙인이 됨을 깊숙이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빈곤자들은 그렇게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반지하 문제는 오래됐지만 늘 낯선 문제로 존재해왔습니다. 몇 년 단위로 반복되는 수해 상황에서만 잠깐 등장하다가 또 사라져왔습니다.

언젠가 했던 반지하 취재를 오랜만에 다시 하며, ‘거주하는 한 안전하게 만든다’는 서울 성동구의 정책 실험 결과를 확인하며 그동안 빈곤 문제를 인식해온 정책의 틀이 바뀌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반지하를 어쩔 수 없이 양성화하곤 이후 시혜적인 이주 정책과 압박적인 퇴출 정책을 반복해왔습니다. 반지하를 건축법과 경제 논리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거기 사는 사람이고, 그들이 사회와 맺어갈 관계입니다.

성동구의 ‘위험거처 개선사업’ 결과를 보면, 집을 고치고 나니 사람들의 자존감이 높아졌고 높아진 자존감은 사회와 자신의 관계를 긍정하는 응답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위험한 집을 더 안전하게 관리하자는 정책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은 복지정책의 근본적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늘 주눅이 들어 있고 염치없어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정당한 시민으로 인식하는 정책. 반지하라는 공간에 지배당하고 침식당하지 않는 삶을 위한 제도. 지금까지의 반지하 주택 정책이 도시 빈민을 경제적으로 이해한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거기 사는 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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