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공중보도를 걸었다. 낡은 전자부품 가게 사이로 한 시절이, 뭔가 끓어오르던 때가, 어느 장면들이 재정렬됐다. 쓸모가 많지 않겠지만 여전히 가지런히 쌓여 있는 브라운관 텔레비전도 정겨웠고, 언젠가 보았던 홍콩 영화의 장면들도 스쳤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며 나이를 먹었고, 이 도시의 어느 공간들도 당연히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인데 그 당연한 것이 새삼 새로웠다.
그 풍경 옆으로 텅 빈 공터가 있다. 세운4구역이다. 1995년 유네스코가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후 늘 높이가 쟁점이었던 자리다. 그 터에 건물을 짓기로 애초에 합의가 끝났다.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20년 가까이 결렬과 파행을 겪는 지난한 조정과 회의 끝에 건물 높이를 20층 안팎 70m로 짓기로 했다. 사업시행도, 관리처분도 모두 끝난 상태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건물 높이를 38층, 145m까지 높이고 위로 솟는 만큼 아래를 비워 그 자리를 녹지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세운4구역은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의 막대한 책임을 지고 위로 솟아야 할 운명이 됐다.
앞에 ‘K’를 달아줘야 할 도시개발 정책에서 수십 년 된 건물, 수만 명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무력하다. 청계천이 그랬고, 재개발 이후 마천루가 된 아파트 단지들이 그렇고, 그것이 설령 인위적이더라도 도시의 감각은 곧고 반듯하고 보기 좋게 정렬된 것을 선호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비싸게 쳐준다.
맞다, 비싸진다. 건물이 2배 높아지면 이익도 비례해 늘어나고, 그 이익과 공생하는 혹을 동행할 수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진다. 그 이익이 어떻게 조성되고 어디로 흘러가며 얼마나 될지에 주목해 세운4구역을 들여다봤다. 300개가 넘는 종로4가, 예지동 일대의 토지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며, 눈에 띄는 건 ‘로스타’ ‘더센터시티’ 같은 법인 이름이었다. 어딘지 눈에 익은 이 법인들은 모두 한호건설그룹(현 디블록자산운용)의 관계사들이다. 2022년 10월부터 깨알같이 땅을 사모아 세운4구역 땅 10%를 가진 지주가 됐다.
서울시는 개발이익 대부분을 ‘환수’하겠다고 공언한다. 공원, 공공임대상가, 박물관을 지으면서 말이다. 하루하루 치솟는 서울의 도심 땅값, 재개발로 끓어오를 ‘프리미엄’ 가치를 과연 환수할 수 있을까? 환수 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한호가 막대한 수익을 챙길 것이다. 이 수익을 만들어주는 돈은 모두 서울시민의 주머니와 쫓겨난 세운4구역 세입자들의 눈물에서 나온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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