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4일 서울 시내 한 쿠팡 물류센터에 배송차량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쿠팡의 새벽배송 논쟁이 야간근무의 생리적 위험에 집중되고 있지만, 실제 배송기사의 과로사와 건강위험을 만드는 구조는 따로 있다. 야간근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하는 저임금 구조와 속도 경쟁을 강제하는 빠른 배송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들이 야간근무를 ‘선택’한다고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최저임금 수준 기본급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야간수당이 포함된 고정 야간근무를 하는 것이다.
정치경제학자 캐슬린 실렌은 미국의 아마존을 분석하며 “낮은 가격-낮은 임금-높은 편의”라는 삼각 구조를 설명했다. 쿠팡은 이러한 ‘아마존 경제’를 한국의 토양 위에 구현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쿠팡의 사업모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소비자에게는 무료에 가까운 빠른 배송을 제공하고, 노동자에게는 낮은 비용과 높은 유연성을 요구하며,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회사와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 개인이 떠안는 구조.
쿠팡이 내세우는 로켓배송, 로켓와우 무료배송, 로켓프레시 새벽배송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이다. 밤 11시 전에 휴대전화로 몇 번만 터치하면 다음날 새벽 현관 앞에 물건이 도착한다. 대형마트에 갈 필요도,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나갈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편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따라가보자.
먼저 낮은 가격을 통한 시장 점유다. 쿠팡은 출혈경쟁 수준의 가격정책과 무료 또는 저렴한 배송을 결합해 시장점유율을 키워왔다. 소비자는 ‘오프라인보다 싸거나 비슷한 가격인데, 배송까지 공짜’라고 느낀다. 다음은 이른 새벽 배송 서비스라는 높은 시간적 편의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통해 빠른 배송 약속을 브랜드의 핵심으로 내세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삶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서비스다.
그러면 빠른 배송 서비스를 아주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경제학적으로 ‘로켓처럼 빠르면서도 공짜인 배송'은 존재하지 않는다. 배송 비용은 어디선가 누군가가 부담하고 있다. 쿠팡의 경우, 그 비용은 상당 부분 물류·배송 노동자의 낮은 단가와 과도한 작업 강도, 그리고 과로로 인한 질병과 산업재해, 건강보험 재정 부담, 가족 돌봄 공백 등 공공 사회보장제도가 부담해야 할 외부 비용으로 전가된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새벽 시간대에 극단적으로 압축된 물량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수십 개의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주택을 수십 차례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 구조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진화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혁신 관련 법 제도 등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소비자의 만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이익 창출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은 결과다. 소비자에게 더 싼 가격과 더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혁신적 기업'으로 인정받는 동안, 그 뒤편에서는 누군가가 저임금으로 건강위험을 담보한 채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제도 안에 단단히 새겨졌다. 새로운 형태로 일하는 독립계약자는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심야 택배 종사자의 산업재해 승인과 사망 사례가 급증하고, 사망자 53명 중 상당수가 과로사로 분류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이 이 구조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확대하는 이유가 있다. 쿠팡의 시장 지배력, 물류센터의 열악한 환경, 새벽배송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문제 삼으면 금세 돌아오는 반응은 “그래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싸지 않으냐”는 것이다. 규제 기준이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가 아니라 ‘소비자의 가격과 편의'가 되는 순간, 플랫폼 기업은 정치적으로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쿠팡은 이제 더는 하나의 ‘쇼핑 앱'이 아니라 수많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의존하는 유통 인프라에 가까워졌다. 많은 가구가 식료품과 생필품 구매를 이미 쿠팡 같은 플랫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 “새벽배송을 제한하겠다” “야간 상업배송에 규제를 두겠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한 기업을 규제하는 것을 넘어, 수백만 소비자에게 “당신의 생활이 지금보다 불편해질 수 있다”고 통보하는 일처럼 비친다. 누가 로켓배송을 줄이는 정치인, 정책수립자 역할을 자청하겠는가? 여기서 핵심은 사람들의 정체성이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로 우선 작동한다는 점이다.
시민이라면 우리는 야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과로사 문제, 지역 상권 붕괴,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한 노동 통제 같은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로서 앱을 열고 상품을 고르는 순간,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싸게, 얼마나 빨리”로 좁혀진다. 정치적 논쟁도 이 틀에 갇힌다. “로켓배송을 규제하자”는 이야기는 쉽게 “국민의 편의를 빼앗는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프레이밍되고, “소비자의 선택권”이란 말이 규제 논의를 압도한다.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단순히 ‘기업이 착하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규제의 기준과 담론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지금처럼 “소비자가격과 편의”만을 중심에 놓는다면, 어떤 규제든 곧바로 “소비자에게 불리한 규제”로 비난받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그 편의가 누구의 몸과 시간을 대가로 삼는가, 그 가격에 포함되지 않은 사회적 비용은 누가 떠안는가를 함께 묻는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심야 상업배송의 시간대를 제한하자는 논의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필수재가 아닌 상품에 대해서는 최소수면 시간이 보호될 수 있도록 배송시간을 제한하고, 힘든 노동에 대한 적정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물류센터를 더는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사실상 수천 명이 상시 근무하는 ‘대형 작업장'으로 규정해 냉난방, 환기, 휴게공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로 길든 우리의 정체성을 조금씩 재구성하는 일이다. 혁신에 대해 던지는 질문 역시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싸고 더 빨리 배달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모두가 인간다운 속도와 조건 속에 일하면서도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쿠팡의 로켓배송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그리고 나는 소비자로만 살지 아니면 시민으로 살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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