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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보호 후진국… 우린 수라일까 아닐까

등록 2023-09-02 10:26 수정 2023-09-08 12:32
영화 <수라> 속 신안갯벌. 황윤 제공

영화 <수라> 속 신안갯벌. 황윤 제공

새만금 개발 구역 북단 수라갯벌의 ‘수라’(繡羅)는 비단을 수놓는다는 뜻입니다. 2003년부터 새만금 일대 생태를 살피고 기록하는 새만금생태조사단(생태조사단)이 인근 수라마을에서 이름을 땄습니다. 수라갯벌은 호남평야 들녘을 따라 흐르는 만경강·동진강 하구에 형성된 방대한 갯벌의 일부분입니다. 이제는 매립되지 않고 원형이 유지된 얼마 안 남은 소중한 지역입니다. 세계 최대 철새 서식지인 새만금 일대에서 지난 32년간 개발공사(1991년 착공)를 벌이기 위해 숱하게 ‘대체 서식지’로 지정됐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곳을 그대로 남기면 안 될까요? 하지만 정부는 해오던 대로 매립해 2028년까지 새만금신공항을 짓는다고 합니다. 2023년 3월 환경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해줬습니다. 또 갯벌에 기대 사는 뭇 생명은 매립토 아래서 질식사할 겁니다. 흰발농게 같은 저서생물부터 황새·큰뒷부리도요·알락꼬리마도요·저어새·검은머리갈매기·쇠제비갈매기 등 철새까지 확인된 것만 53종에 이르는 멸종위기종·법정보호종도 갈 곳을 잃게 됩니다. 영화 <수라>(감독 황윤) 속 오승준씨(오동필 생태조사단장의 아들)가 새롭게 서식 사실을 확인한 쇠검은머리쑥새는 어디로 갈까요?

정부는 온열질환자 속출 등 ‘새만금 잼버리’ 파행 사태를 계기로 신공항 필요성 등 새만금 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발표(8월30일)했습니다. 다만 신공항 건설 계획 자체를 철회하는 건 아니라서 더 지켜봐야 합니다.

개발업자들은 “매립 또 매립”을 당당하게 외칩니다. 새만금호를 담수화해 2004년부터 농업용수로 쓰도록 한다고 약속했지만, 무산소·무생물의 끔찍한 ‘죽음의 바다’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수라갯벌에 기대 사는 어떤 멸종위기종이 전세계에 딱 한 마리만 남았다면 모를까, 멸종위기종 서식과 개발이 부딪히면 환경부마저도 개발 쪽 손을 들어줍니다. 생물종 다양성 보호 쪽에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에요.”(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 그러면서도 한 소장은 “멸종위기종을 찾아 기록하고 심각성을 알리는 사람들 때문에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8월17일 서울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감독과의 대화’ 자리에서 황윤 감독은 “7년간 수라갯벌을 취재하면서 생태조사단에 참여하게 됐고 그러면서 (자신도) 많이 성장했다”고 했습니다. 한 관객은 “자연이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 결국 인간성회복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발언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대화를 듣다가 문득 새끼 거미를 문밖으로 쓸어버리고 자신이 수라(修羅·악마)가 아닐까 고민하는 시인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백석의 시 ‘수라’ 중)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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