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14일 오후 33.9㎞짜리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방조제)에 가둬진 새만금호(새만금 내해·118㎢)에는 녹조가 들끓었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흰 거품이 생겼다. 신시갑문 인근 ‘조사 11번 포인트’에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과 일본 시즈오카대학 이학부 사토 신이치 교수 연구팀이 채니기(강바닥을 떠내는 장치)로 수심 10.5m 바닥에서 가로·세로·높이 약 15㎝ 크기의 새까만 ‘괴물질’을 길어냈다. 달걀 썩은 내 같은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수구 냄새의 원인인 황화수소(H₂S)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괴물질’은 배 위에서도 형태가 그대로였다. 새까맣다는 건 오랫동안 산소를 공급받지 못했다는 증거다. 보통의 강바닥이나 갯벌은 갯지렁이·조개·게 등등 바닥 흙에서 살아가는 생물(저서생물)이 먹이활동 등 생명활동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갈색이나 회색을 띤다. 형태가 그대로라는 건 아주 오랫동안 생명활동이 없는, 무생물 상태가 유지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흐름도 끊겨 오로지 아래로 끌어당기는 지구 중력만 작용해 덩어리는 묵처럼 단단해졌다.
2㎜ 그물망으로 걸러냈다. 생명은 없었다. 조개껍데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함께한 국내 저서생물학 권위자 홍재상 인하대 명예교수가 헛웃 음을 터트렸다. “생물이 없으니까 조사는 편하네요. 원래 이런 작업은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일일이 동정(분류학적으로 어떤 생물 종인지를 확인하는 일)해야 하니까요.”
숫자가 바다가 죽었음을 재확인해줬다. 수위별 △용존산소(DO) △염분 △수온 △전기전도도를 측정했다. 1∼5m 깊이까지 용존산소는 6∼10ppm을 기록했다. 하지만 6m 깊이 아래부터는 ‘4ppm 이하’, 즉 생명이 살아 숨 쉴 산소가 없는 상태로 떨어졌다. 바닥 쪽 용존산소는 0.06ppm. 무산소 상태였다. 반면 표면 쪽 염분은 2.3‰(퍼밀·천분율)이었지만, 바닥 쪽 염분은 27.0‰을 기록했다. 2006년 정부가 새만금호에서 짠기를 빼 농업용수로 쓴다며 새만금 물막이 공사를 끝내 바다와의 흐름을 끊어놓은 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다(일반적인 바다의 염분은 34‰)였다. 1991년 새만금간척사업의 첫 삽을 뜰 때 야심 차게 발표했던 ‘2004년부터 농업용수 이용’ 계획은 폐기된 지 오래다. 새만금호 수질을 개선한다며 30여 년간 약 4조 원의 예산을 들이부었다
“정부는 이걸 가지고 수질 관리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이게 똥물 관리지 어떻게 수질관리입니까. 우리가 수질관리라고 하면 생태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를 관리하는 걸 말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부는 오염물질을 측정하는 화학적산소요구량(COD)만 거론해요. 용존산소도 표층·저층 평균치로 해서 살아 있다고 합니다. 여기도 용존산소가 위쪽은 10ppm이고 바닥은 0ppm이니까 평균이 5ppm죠. 그럼 물이 살아 있네, 라고 해야 합니까? 거짓말이잖아요. 아이(새만금호)를 맡겼더니, 밥(산소)도 안 주고 학대하면서 내가 잘 키우고 있다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지금.”(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
이날 조사는 만경강 유역과 동진강 유역 12개 지점에서 이뤄졌다. 오전 10시 시작해 오후 4시 마무리됐다. 시민생태조사단 등 7명이 참여했다. 취재진으론 <한겨레21>이 유일했다. 포인트마다 아래쪽으로 입구를 연 채니기를 던져, 줄 따라 쇠추를 내려 바닥 흙 끄집어내기를 세 번씩 반복했다. 체로 걸러내면 대부분 1㎝도 안 되는 크기의 어린 종밋이나 진주담치(홍합)의 사체(껍데기)가 많아봐야 두어 숟가락 나왔다. 딱 한 곳에서 새끼 갯지렁이류 한 마리가 발견됐다. 모두 환호했다. 2007년부터 연 1회 사토 교수팀과 시민생태조사단이 공동으로 조사해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21∼2022년 2년간 연구는 중단됐다. 이번 조사는 새만금호 야간해수 유통을 다시 시작한 뒤 이뤄진 첫 조사다. 새만금호 수질이 농업용수(4등급)에 못 미치는 6등급 이하로 떨어지자, 2020년 12월 정부(새만금위원회)가 해수유통 횟수를 기존 ‘1일 1회’에서 ‘1일 2회’로 확대했다. 그 뒤 2022년 12월 국무총리 산하 새만금위원회는 “새만금호가 목표 수질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COD 개선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시민생태조사단이 요구한 물속 생명과 생태계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 단장은 “해수유통 확대로 최악의 상태를 피한 것뿐 여전히 ‘염분성층’ 현상 때문에 새만금호 상당 부분이 무산소 상태를 나타내고 있어요. 무산소 상태를 해소하려면 항시 해수유통을 하면 되는데, 정부는 ‘무산소’ 구간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아요”라며 “새만금청은 처음엔 물을 방출하는지 유입하는지 구분해서 발표하더니 요즘은 ‘해수유통’이라고 얼버무립니다. 해수유통이라고 해도 유입이 아니라 방출 중심입니다. 만경강·동진강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차면 빼낼 뿐 해수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염분성층’은 밀도가 높은 염수(바닷물)가 아래로 가라앉고 그 위로 하천에서 유입된 민물이 뜨면서 층이 형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위쪽 수질은 개선되는 듯 보이지만, 강과 바다의 흐름이 끊어지면서 아래쪽 염수는 정체되고 썩는다. 새만금호에서는 겨울철을 제외한 약 8개월간 염분성층 현상이 지속된다. 물이 썩어 생물이 죽고, 생물 사체 때문에 물이 더 고약하게 썩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이 현상은 시민생태조사단과 사토 교수팀이 2016년부터 조사방법을 1m 단위 수심별로 수질상태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확인됐다. “정부 이야기대로라면 생명이 살아야 하는데, 왜 생명이 살지 않을까 의문을 갖던 중 염분성층화를 확인하고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오 단장)
홍 명예교수는 “고인 물은 썩는다는데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얘기예요. 원래는 망망대해였을 곳에 물이 고여 있잖아요. 수문을 연다는 건 물과 함께 플랑크톤이나 물고기·게·새우 새끼 같은 생명이 들어온다는 의미예요. 작은 크기의 새끼들이 죽어 있다는 걸 보면 수문을 열었을 때 새끼들이 들어왔다가 죽어버렸다는 말이죠”라고 분석하며 “새만금호는 시화호처럼 될 것이고, 결국 수문을 완전히 열어야 할 거라고 전망합니다. 이미 정부는 충분히 매립해서 가져갈 만큼 땅을 가져갔잖아요”라고 말했다.
새만금호가 썩기 전 시화호라는 반면교사가 있었다. 1994년 12.6㎞ 시화호 방조제가 완공됐다. 새만금호처럼 농업용수를 댄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3년 뒤 COD 값이 17.4ppm까지 치솟았다. 썩은 내가 진동했다. 농업용수는커녕 공업용수로도 못 쓸 지경이었다. 6년 만인 2000년 12월 시화호 담수화 계획은 폐기됐다. 오창환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빈산소 구간은 어느 시기에도 발생하면 안 되는 현상입니다. 한 시기만 발생해도 생물이 모두 죽습니다. 시화호(56.5㎢)는 (새만금호보다) 물 그릇이 작고, 위쪽에 공단이 있어 피해가 빨리 발생한 거죠. 새만금호는 넓고, 시화호 사례 때문에 정부가 조심한다면서 일부 해수유통을 하니 피해가 서서히 나타나는 겁니다. 전면적인 해수유통이 늦어질수록 그 크기만큼 피해회복도 늦어질 겁니다”라고 지적했다.
새만금(전북)=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새만금, n번 죽이지마라②] 물은 썩어가고 세금도 썩어간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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