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사업을 두고 환경이냐 개발이냐를 논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누가 이 썩어가는 황무지에서 미래를 설계하겠는가? 새만금 개발 계획의 허상은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진행 과정에서 전 국민과 세계 앞에 극적으로 드러났다.
새만금 사업이 직면할 더 큰 도전은 개발 계획이 본격화한 2000년대와 견줘 크게 달라진 작금의 한반도·동북아시아 정세가 잉태하고 있다. 애초 새만금 개발 계획은 중국과의 우호적 협력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작성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만금 지역에 대한 국제적 투자도 중국 자본 혹은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자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전라북도가 새만금에 국제공항이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재인 정부가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공항건설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면서까지 지원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서해(황해) 경제권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고, 새만금이 그 수혜자가 되리라는 실낱같은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간 전북도는 마치 국제공항이 없어 새만금에 국제적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장했다. 2022년 2월 환경부는 명백한 환경적 문제에도 전략환경영향평가 ‘조건부 동의’로 전북도 손을 들어줬다. 국토교통부는 새만금 신공항의 비용편익이 0.5도 안 돼 적자 공항으로 전락하리라는 사실에 눈감았다. 계획부지 바로 옆에 수요가 없어 매년 30억원 이상의 적자를 발생시키는 군산공항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근 150㎞ 내외에 있는 무안국제공항과 청주국제공항도 모두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총사업비 8077억원의 새만금 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같은 해 6월 확정고시했다.
국토부가 고시한 공항의 규모는 말만 국제공항이지 어떤 국내선 전용 공항보다도 작다. 새만금 ‘국제’ 공항의 예정 활주로 길이는 2500m로, 기존 군산공항 활주로(2745m)보다 짧다. 인근 무안국제공항 2800m, 청주국제공항 2740m보다도 짧아 ‘C급 항공기’만 취항할 수 있다. 동남아 등 비교적 단거리 국제운송 수단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고, 화물전용기의 이착륙도 불가능하다. 비행기 계류장 수도 5개로, 인근 무안국제공항의 48개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전북도와 국토부 등은 1991년 이후 군산 미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이용해온 군산공항이 미군의 통제 아래 운용됨에 따라 민항기 운항 횟수를 왕복 10회로 제한받았다고 지적한다. 또 중국 노선을 비롯한 국제선 운항이 미군의 군사적 판단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 등 수많은 제약을 받아왔기 때문에 신공항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미군의 통제에서 벗어나겠다며 제시한 국제공항 계획이 사실상 기존 군산공항 확장(안)이란 점이다. 미 제8전투비행단장은 2007년 5월11일 공문으로 국제선 취항과 관련해 문동신 당시 군산시장의 협의 제안에 답하면서, 군산기지에 활주로 1개가 추가 건설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추가 활주로와 국제공항 계획은 기지 활주로 서쪽인 새만금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에 포함됐으면 한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후 2019년 7월11일 새만금 합동실무단 회의에서도 미7공군은 미군 쪽이 유사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신공항 건설에 긍정적 입장이며, 유사시 교차사용을 위해 유도로 건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안전과 효율성 측면에서 신공항과 군산공항은 하나의 관제탑에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이 제안은 2002년 이래 미군이 견지해온 입장, 곧 군산공항 주변 공여지 26만 평의 환수 대가로 새만금 간척지 등 130만 평을 추가 제공하라는 요구의 연장으로 보인다.
반면 2015년 11월 전북도가 발주한 전북권 항공수요 조사 용역에서는 미군이 제안하는 군산공항확장(안)으로는 국제선이 개설되더라도 미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공항 운영에 경직성이 생기고, 항공용 활주로가 신설되더라도 기존 군산공항 활주로와 근접해 독립적 운영이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전북도는 당시 공항 운영의 독자성이 보장되는 김제공항 부지를 더 선호했다. 그러나 2022년 최종 고시된 안은 △별도 관제탑 포기와 미군에 의한 통합 관제 △군산공항-신공항 활주로 유도로 설치 등 기존 미군 쪽 요구를 전폭 수용한, 사실상 미군이 통제·관리하는 군산공항 확장 계획이 되고 말았다.
군산 미군기지 확장이 왜 문제인가? 전미과학자연맹(FAS)이 2006년 공개한 비밀자료를 보면, 주한미군은 1958년부터 1991년까지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다. 군산공군기지 주둔 제8전투비행단은 배치된 전술핵무기 투하 훈련을 했다. 1991년 이후 핵무기 투하 임무는 미 본토 공군의 임무로 이관됐지만, 그 뒤에도 군산 미군기지의 전략·전술적 역할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3년 패트리엇미사일(PAC-Ⅲ) 배치, 2017년 공대지 순항미사일(JASSM) 배치, 2018년 미 육군 2사단 소속 항공여단 드론부대 창설과 20개 격납고 건설, 2021년 F-16 전투기의 F-35 전투기로의 교체 등 기지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돼왔다. 경기도 오산기지와 더불어 중국 본토와 가장 가까운 주한미군 공군기지이자 ‘전초기지’로서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 셈이다.
새로운 신냉전 대결 구도가 첨예하게 형성되는 한가운데서 민간국제공항으로 포장된 군산미군기지 확장안이 강행되고 있다. 환경도 개발도 모두 뒷전이다. 경제조차 안보 논리 속에 통제되고 종속되는 군사적 대결의 덫에 새만금이 갇히고 있다. 전쟁과 파괴를 준비하는 군사기지 확장 건설로 그나마 준설을 면한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인 해수 유통에 힘입어 힘겹게 생명을 품어온 ‘수라갯벌’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새만금 사업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군사적 대결과 파괴의 축이 아니라 생명의 축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 생명의 보고를 되살리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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