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은 착공 때로부터 무려 32 년이 지난 사업이다 . 애초 전체 사업 완공 시기가 2004 년이었으니 이미 19 년이나 늦어졌다 . 이 사업의 마무리는 2050년으로 잡혀 있다 . 무려 59 년에 이르는 한국 역사상 최장의 토목 , 건설 사업이다 . 그러나 과연 이 사업이 마무리될지 의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 길고 길었던 새만금 사업의 역사를 중요한 대목 중심으로 정리해봤다 .
이 사업을 본격화한 사람은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다. 노 후보는 1987년 12월16일 전주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북을 겨냥한 공약을 발표했다. “서해안 지도를 바꾸게 될 새만금 지구 대단위 방조제 축조 사업을 최우선 사업으로 선정해 임기 내에 완성하여 전북 발전의 새 기원을 이룩하겠다.” ‘새만금’이란 새로운 만경평야, 김제평야라는 뜻이다.
다음날 농림수산부(현재의 농림축산식품부)는 “1989년 상반기에 세부 실시 계획을 확정하여 1996년 방조제를 완성하겠다”고 거들었다. 당시 경쟁 후보들도 잇따라 새만금 사업을 공약했다. 새만금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허정균 <뉴스서천> 편집국장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이다. 호남에서 유세조차 할 수 없었던 노태우가 전북 표심을 조금이라도 잡아보려고 무리한 공약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이 사업은 3년가량 추진되지 못했다. 당시에 이미 쌀이 남아돌았고, 주변에 다른 산업단지가 추진돼 산업용지로도 큰 쓸모가 없었다. 경제기획원에서도 반대했다.
이것을 뒤집은 것은 김대중 신민주연합당 총재였다. 1991년 7월 김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자리에서 “새만금 사업은 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니 약속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 대통령도 받아들였다. 같은 해 11월18일 노태우 대통령이 참석한 기공식이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열렸다. 말 많고 탈 많은 새만금 사업이 닻을 올렸다.
주용기 전북대 무형유산정보연구소 연구원은 “공약은 했지만, 노태우 정부에서 사실상 포기한 사업이었다. 김대중 총재가 죽은 사업을 되살려냈다. 노태우가 중간평가를 피하려고 들어준 것 같다 ”고 말했다.
새만금 사업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대 운동은 1990년대 중반 시작됐다. 특히 1994년 담수가 시작된 시화호가 극심한 수질 오염을 겪자 새만금 사업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같은 시기에 동강댐 건설도 큰 이슈가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종근 당시 전북지사는 1999년 1월 ‘새만금 민관공동조사단 구성’을 제안했다.
이 제안에 따라 30명으로 이뤄진 조사단이 1999년 5월부터 2000년 8월까지 활동한 뒤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기존 대책으로는 새만금호의 수질이 5급수까지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조사단은 수질 오염이나 생태계 파괴, 비용 대비 편익 등 여러 쟁점에서 의견이 갈렸다. 이에 따라 새만금 사업을 계속할지 결론을 유보했다.
박진섭 당시 새만금생명평화연대 상황실장(우석대 교양학과 교수)은 “김대중 대통령이나 민주당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전북 지역의 경제 성장 욕구를 해소할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나중엔 정치적 문제가 돼서 바꾸기가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2001년 3월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북 군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도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지역 여론에 반하는 발언을 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지금 전북 도민이 전부 바란다고 해서 그것이 뒤에 가서도 역시 전부 바라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다. 전북 도민이 모두 바란다고 해도 국민에게 해가 된다면 재고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전북 민심이 압도적이고 민주당이 당론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의견은 1년 뒤인 2002년 3월 전북 익산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전북 경선에서 완전히 바뀌었다. “전북은 전국에서 아주 뒤떨어진 곳이어서 각별히 지원해야 한다. 새만금 결정 과정, 그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반대한 적은 없다. 결정된 것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대통령이 되면 새만금, 확실하게 밀겠다”고 말했다. 선거 앞에서 소신이 무너졌다.
허정균 편집국장은 “노무현은 민주당 정치인 가운데 드물게 새만금 사업에 반대했다. 해수부 장관으로서 갯벌을 지킬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태도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뒤 정치 영역에서 이 문제가 해결될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결국 환경단체들은 2003년 6월 이 사안을 법원으로 가져갔다. 2003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호 수질 유지와 환경영향평가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며 새만금간척공사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2004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이 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뒤집었다.
2003년 8월 환경단체들은 ‘새만금간척사업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2005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1심 판결에서 “새만금 간척지의 용도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으며, 식량 증산을 위한 농지조성이란 농림부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며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노무현 정부가 이 사업을 재검토할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항소했고, 2005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거꾸로 농림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2006년 3월 대법원도 농림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새만금 사업은 합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2006년 4월 물막이 공사가 끝났고,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새만금 땅의 용도를 농업 100%에서 농업 70%, 산업 30%로 변경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새만금 땅의 용도를 농업 30%, 산업 70%로 다시 변경했다. 2010년 새만금 방조제 전 구간이 완공됐다. 2011년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이 확정됐고, 2012년 새만금특별법이 제정됐다.
2019년 새만금 신공항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됐다. 2020년엔 목표 수질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해수유통에 대한 최종 결정을 2023년 이후로 미뤘다. 2021년 7월엔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순천 등 4개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새만금 사업은 2020년까지 총사업비 22조7900억원 가운데 8조4400억원(37.0%)만 투입됐다.
허정균 편집국장은 “기존 갑문을 상시 개방하고 일부 방조제는 다리로 바꿔야 한다. 담수화는 불가능하고, 현재 해수유통 규모로는 수질을 개선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결국 홍수와 해수위 상승과 같은 기후위기의 결과로 이 사업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우 새만금살리기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전주시 의원)은 “현재 18개인 수문(갑문은 2개)을 추가로 설치해서 해수유통을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다. 현재 남은 수라갯벌이나 해창갯벌 일부를 최대한 보존해서 수산업이나 생태 관광을 활성화하면 좋겠다. 산업용지는 친환경 산업에 활용하고 장기적으로 시화호처럼 조력발전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병국 초대 새만금개발청장은 “이제 와서 방조제를 허무는 것은 다시 엄청난 국가적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수질 개선을 위해 해수유통을 확대하고 조력발전도 검토해볼 수 있다. 내해의 갯벌은 수질 때문에 유지가 어렵고 방조제 밖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갯벌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북도청의 최재용 새만금해양수산국장은 “계획에 들어 있는 대로 산업, 농업, 환경생태, 관광, 공항 등 다양한 개발을 해야 한다. 새만금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한두 가지 사업만으로는 안 된다. 하루빨리 매립과 인프라 설치가 끝나야 제대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참고문헌:
허정균, <새만금 새만금>, 그물코, 2003
박진섭 소병천, <지속 가능한 세상을 향한 발돋움>,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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