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혹은 내 상사는) ‘멍게’ ‘멍부’ ‘똑게’ ‘똑부’ 중 어느 쪽일까.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상사의 네 가지 유형 얘기다. ‘멍청하고 게으른’ 상사 밑에서 일하면 몸은 편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 밑에선 몸도 마음도 긴장으로 팽팽해진다. 어느 쪽이든 직장인은 고달프다.
대통령에도 네 가지 유형이 있다. 대통령의 성격(긍정형·부정형)과 활동성(능동적·수동적)을 기준으로 정치학자 제임스 바버가 분류했다. 몇 년 전, 심층기획을 하느라 대통령학 관련 논문들을 읽다가 이 유형 분류를 보고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하며 무릎을 쳤다.
① 능동-긍정형: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측력을 기반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대통령의 성공에 많은 가치를 둠.
② 수동-긍정형: 동의와 협력. 정서적 보상을 추구하는 타인지향적 성격. 대중적 인기에 만족하는 경향. 여론이나 비서진의 권고를 잘 따름.
③ 수동-부정형: 정치적 반대자의 ‘야비한 정치공작’에 맞서서 법과 원칙의 수호자가 되려 함. 정치지도자로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엔 경험도 일천하고 유연성도 떨어짐.
④ 능동-부정형: 권력지향적. 주변 환경에 공격적인 자세. 강박충동적인 성격 자체가 자신의 대통령 직무수행을 더욱 경직되게 하고 급기야 위기에 빠뜨리게 됨.
미국 역대 대통령을 기준으로, 바버는 ①존 F. 케네디 ②로널드 레이건 ③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④리처드 닉슨을 꼽았다. 상사의 네 유형 가운데 의외로 ‘멍게’보다 ‘멍부’가 최악인 것처럼, 대통령의 네 유형 가운데 최악도 ‘수동-부정형’보다는 ‘능동-부정형’이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중 어느 유형에 해당할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 윤 대통령은 국가안전시스템을 점검한다며 회의를 열어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이거예요.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라며 경찰을 향해 ‘격노’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독교·천주교·불교 등 모든 종교행사에 참석하고, 국가애도기간에는 엿새 내내 분향소를 찾아 추도했다. 이런 부지런한 활동과 공격적인 성격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11월10일로 6개월째,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11차례나 열었다. 10월27일 열린 회의 생중계에선 “모든 부처가 산업부라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확신에 찬 말만 기억에 남았다. 정작 국민의 절반가량은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에 ‘F학점’을 주는데 말이다.(10월13일 발표한 경제개혁연구소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바버의 분류에 따르면, 급기야 나라를 위기에 빠뜨릴지 모를 ‘최악의 유형’이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돌아봤다. 6개월이면 고작 임기의 10%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 4년6개월이 남았다. 이번호 마감 도중에 대통령실이 동남아시아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에 문화방송(MBC) 기자를 탑승시키지 않겠다고 결정한 소식을 들었다. 대통령이 미국에 갔을 때 ‘이 ××들’ 발언을 촬영해 모든 언론에 공유한 것이 왜곡·편파 보도라는 이유에서다. 참고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등 취재 비용은 각 언론사가 부담한다. <한겨레>는 언론 통제에 반대하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고 민항기를 이용해 취재·보도하기로 했다. 이런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에 살기도, 참 고달프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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