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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국민펀드론’에 반색하는 기업들

범여권의 “반기업적·반시장적” 정색과 달리 ‘친기업적 전략’ 성격 다분
등록 2025-03-14 16:24 수정 2025-03-18 11:50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3월2일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의 국민 참여 프로젝트 ‘모두의질문Q’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인공지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3월2일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의 국민 참여 프로젝트 ‘모두의질문Q’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인공지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저는 인공지능(AI)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요. 개인이나 특정 기업이 (이익을) 전부 독점하지 않고, 우리 국민 모두가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겠다. 제가 꿈꾸는 기본 사회,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이 공동체에 의해서 보장되는 사회, 희망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재정력이 필요해요. 그 길을 결국 인공지능이 열어주지 않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인공지능’을 ‘희망’의 이름으로 언급했다. 2025년 3월2일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의 국민 참여 프로젝트 ‘모두의질문큐(Q)’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서다. 그 ‘희망’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 ‘경제 위기를 극복하게 해줄 산업에 대한 희망’ ‘성장 주도로 국민의 소득을 보전해줄 희망’이었다.

‘엔비디아 국민지분’ 발언이 반기업적?

논란이 된 이 대표의 ‘엔비디아 국민지분 발언’도 이 맥락에서 나왔다. 국가 재정을 투입해 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새로 생길 경우 국민지분을 30% 정도 둬서 투자로 인한 이익을 국민 모두가 나눠 갖자는 취지의 말이었다. 즉각 범여권에서는 “반기업적·반시장적·오른쪽 깜빡이 켜고 좌회전”(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빅테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아무 말 대잔치”(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이 대표의 ‘인공지능 희망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일부러 곡해한 쪽에 가깝다. 영상에서 이 대표가 반복적으로 내놓은 구상은 ‘돈이 될 가능성이 큰 인공지능 산업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겠다’ ‘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을 지원하겠다’ ‘엔비디아처럼 글로벌 빅테크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이야기였다. 되레 친기업, 친시장, 친빅테크 발언이었던 셈이다.

이 대표는 3월7일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주당 내 ‘에이아이(AI)강국위원회’를 출범했다. 당내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 ‘글로벌 AI 3강을 위한 AI 진흥 태스크포스’, 정보통신특별위원회 등에서 나눠 논의하던 ‘인공지능 전략’의 컨트롤타워를 세운 것이다. 출범일에 이 대표는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그야말로 기술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다”며 “거대 첨단 미래 산업 기업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초기 투자를 정부 단위 또는 국민 단위에서 대규모로 한다”는 구상을 거듭 밝혔다.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를 포함한 인공지능 업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엄청난 전력과 거대한 컴퓨팅 파워(고성능 칩을 꽂은 거대 데이터센터로 대표되는 시설), 양질의 데이터라는 ‘인공지능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본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데 국가가 그 부분에 역할을 하겠다는 이야기인데다 전략 수립 과정에 기업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한 기술기업 관계자는 “민주당의 인공지능 전략에 기업들의 요구사항이 많이 들어간 상태”라며 “민주당이 기업 입장에서 필요한 걸 열심히 메시지화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술기업 관계자도 “전력도 부족하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도 없고 인프라도 없는 한국 상황에서 정부가 이 부분에 투자한다는 얘기에 토를 달 것이 없다”며 “정부가 지분 태워 기여하는 것도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용자·시민의 우려에 동문서답

실제 모두의질문Q 영상에서 이 대표와 좌담을 함께 한 하정우 네이버 퓨처AI센터장(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공동대표)도 이 대표의 말에 수긍하며 “미국이 그래픽처리장치를 전략자산으로 관리하기 시작해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며 “(정부가) 인공지능 반도체 역량을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모두의질문Q는 국민의 질문을 받아 풀어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인데 이날의 질문은 뭐였기에 ‘엔비디아 국민펀드’ 이야기가 나왔을까? 첫 번째는 한 작곡가의 질문이었다. “최근 영상 음악에 AI를 사용하는 일이 잦다. 비용이 저렴해서다.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가 성장하기 힘든 환경이 될 거라는 걱정이 큰데 어찌해야 하나?” 다음은 인공지능 전공자의 질문이었다. “AI와 로봇으로 자동화된 이후 극소수 사람만 취업 가능한 세상이 올 거라 확신하는데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대책을 묻고 싶다.”

이용자·시민 입장에서 걱정이 가득한 질문들이 나왔는데 답변은 기업의 ‘인공지능 진흥론’을 중심으로 희망차게 나온 셈이다. 이 간극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인공지능 전략 수립을 위해 민주당이 기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을 통한 고성능 칩 확보, 인공지능 확산 지원, 규제 샌드박스와 병역특례 도입 등은 모두 그 방향에 놓여 있는 정책들이다.

2월17일 민주연구원은 ‘성장은 민주당, 미래의 빅테크 기업을 찾는다’라는 제목으로 인공지능 기업들과의 경청 간담회를 개최했다. 민주당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행사는 최근 성장을 강조하는 민주당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며 “이재명 대표의 ‘회복과 성장’ 선언에 이은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당시 패널로는 이영탁 에스케이텔레콤(SKT) 부사장, 홍석환 두다지 대표,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 등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앞서 이 대표는 2024년 11월4일 SKT가 주최한 인공지능 행사에 참석해 “우리 정치가 해야 되는 몫을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충실하게 신속하게 이행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AI 민주주의’, 탄핵 이후에도 큰 과제

시민사회에서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우리를 먹여 살릴 AI’를 희망하는 분위기 속에 ‘인공지능 규제’ 목소리는 갈수록 설 곳이 없어지고 있어서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이사는 “국회나 정당은 물론 이용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개인정보보호위원회까지 기업들을 주로 만나 인공지능 전략을 논의한다”며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의견을 낼 수 있어야 ‘AI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데 탄핵 이후에도 민주주의 침해와 정경유착이 발생했던 개발 시대의 역사를 반복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명성, 책임성, 공정성의 원칙은 기업이나 기술과는 거리가 먼 개념인데 민주당이 인공지능 기술과 관련해 의견을 듣는 대상에서 시민을 배제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며 “정보의 흐름, 여론 형성, 심지어 공공 정책 결정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빅테크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협 문제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두의질문Q 프로젝트를 이끌며 ‘AI강국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한 박태웅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장은 3월11일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을 이들을 정책적으로 돕는 부분이나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율주행, 인공지능 가전 등도 다 중국이 앞서가는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에 남은 시간이 3년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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